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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니표 약과, 세상에 단 하나!

- 진작 배워둘 걸 -

by 일 시 작 Feb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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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일상


1933, 92

우리 시엄니와 관련 있는 숫자다.




엄니는 1933년생 올해로 아흔두 살이시다.

이젠 아파트 단지 산책하시는 것 빼곤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하지만 우리 집안의 가장 큰 기둥인 건 확실하다.


시댁식구들에 대해 잠시 얘기하자면~

엄니는 167cm의 큰 키에 좀 마른 몸(이제는 배가 좀 나오셨다. 하지만 난 이게 뱃살이 아닌 연륜이라 생각한다), 웃을 땐 눈이 반달로 바뀌는 귀여운 표정의 소유자다. 보통 키에 동글동글한 형체를 하고 있는 친정식구들과 대조적으로 시댁은 다들 길고 마른 편이다. 아버님도 180cm였었고 유전자 덕분에 나보다 많은 시누이도 170, 남편도 180이다. 성격은 다들 조용하고 평소보다 조금 많이 이야기하고 나면 집에서 재충전해야 한다. MBTI로 설명하자면(이게 다는 아니지만) 시댁은 I 나는 E다.  '수다 총량의 법칙'에 입각해 난 늘 얘기를 쏟아내고 남편과 엄니는 늘 옆에서 듣는다.


엄니를 처음 만난 날 "넌 참 아담하고 귀엽구나"라고 말씀하셨지만 내 귀엔 '넌 참 쪼그맣구나'로 들렸다 ㅎㅎ. 25년 동안 내 키가 평균이라 믿었건만 고개 들어 마주한 시댁식구들을 보며 평균의 범위를 애써 재조정했다. 그래도 내가 더 큰 것도 있다. 바로 눈. 딸아이가 내 눈크기를 닮았다고 엄니는 엄청 좋아하신다.


키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재충전하는 방식도 다른 울 엄니와 부모자식의 인연이 된 지도 어언 30년이다. 십 년이 지나면 김치도 담가드리고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리겠다고 큰소리친 난 지금도 때때로 구순 노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받아먹는다. 결혼하고 3년쯤 되었을까?

"아가 넌 예쁜 그릇에 관심 없니?"  "예 없어요 어머니~"

그 후로 엄니는 막내며느리가 요리에 큰 관심도 솜씨도 없다는 걸 느끼신 것 같다.  사람마다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르니 좋아하는 거 하면 된다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와서 보니 그때의 내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다. 남편이 옆에서 한마디 한다. "괜찮아 30년 동안 변한 게 없으니 (큰 기대 안 하실 걸)" 욕인지 칭찬인지.


https://brunch.co.kr/@bhs8923/24

결혼하고 나서 누리대라는 채소도 알게 됐고 전통과자의 깊은 맛도 알게 되었다. 엄니는 설과 추석에 한과를 만들어 주셨다. 7년 전까지. 밀가루를 반죽해 튀김기름 속에서 사각형의 과자를 만들어 겉에 꿀을 바르고 쌀튀밥이나 깨를 묻혀 과즐을 만들고, 밀가루와 설탕 소주를 배합한 기가 막힌 반죽덩어리를 약불에 은은하게 튀겨내 꿀을 바르고 그 위에 잣가루를 얹어 세상에서 가장 기품 있는 꽃약과를 탄생시켰다.


그 귀한 전통 과자들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추억의 음식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좀 배워놓는 건데...


근데! 이번 설에 드디어 그 약과를 조우했다.

양력설을 쇠는 우리 집안은 음력설에 특별히 음식을 하지 않는데 음식에 관심이 많은 조카가 배우고 싶다고 할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배우려면 며느리들이 배웠어야 했는데 손녀딸이 왔구나" 엄니 웃으며 한말씀 하신다.

살짝 뜨끔했으나 그것도 잠시. 난 맛있는 꽃약과의 달콤함에 빠졌다.  실컷 먹고 나머진 가져왔다.


지금 난 맛있는 갈색으로 잘 튀겨진 꽃약과를 보며 글을 쓰고 있다.

그 안에 삼십 년을 함께 한 엄니의 얼굴이 비친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약과와 둘도 없는 울 엄니의 미소가 느껴진다.

주름진 엄니의 환하고 따뜻한 미소 생각만 해도 좋다.

그냥 그저 마냥 좋다.


*오늘의 단어는

시어머니 しゅうとめ(슈~토메)

설날 おしょうがつ(오쇼~가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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