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희일비하지 않는 연습하기 -
슬기로운 재수생활
수능 모의고사 성적 그까짓 게 뭐라고!
괜찮아. 재수기간 시험은 딱 한 번이야. 바로 수능.
그리고 네 인생 최고의 점수는 수능날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마.
~라고 말은 했지만 난 매일 생각보다 버거운 여러 감정을 배우며 잔잔하게 일 년을 보내려 무진장 노력했다.
시간을 거슬러 작년 4월 어느 금요일~
난 집에서든 밖에서든 보통 휴대폰을 진동으로 놓는다. 서로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여. 하지만 혼자 있을 땐 전화벨도 문자수신음도 경쾌한 음으로 설정해 놓는다. 그건 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때때로 걸려오는 전화나 날아오는 문자를 기분 좋게 받기 위한.
그날 아침 수신음의 느낌은 그다지 경쾌하지 않았다. 학원에서 애써 보내준 모의고사 성적표를 위해 나 또한 애써 비밀번호를 눌러 확인했다. 3월 모의고사에 비해 성적이 꽤 내려갔다. 이상과 실상의 차이를 확인한 재수기간의 어정쩡한 첫 경험이었다. 1,2월은 말 그대로 시즌0(제로) 워밍업단계여서 본인도 나도 그리 내색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난 수능날까지 성적에 대해 내색하지 않으려 무진장 애썼다. 최소한 본인 앞에서만은.
3월부턴 정규시즌이 시작됐고 그건 시험의 연속을 의미했다. 3월 모의고사 후에는 재수하길 잘했다 생각했는데 이번엔 '아~쉬운 길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때 알았다. 롤러코스터는 놀이동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바로 내 옆(->아이의 성적), 바로 내 안(->나의 감정)에 있더라.
"엄마 N기출수학 좀 사다 줄 수 있어? 꼭 오늘밤까지."
"응 알았다~"
문자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문제집을 사들고 이따 아이와 무슨 대화를 나눌지 생각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연분홍 벚꽃이 지나간 자리에 진분홍 철쭉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날 철쭉이 내 눈엔 참 부드러우면서도 강해 보였다. 그래서 생각했지. 부드럽고 강한 엄마가 되자고. 그리고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10시 30분 아이와 내가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시간이다. 뭐 경계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잘 살았음을 아니 잘 버티고 왔음을 자축하는 시간이자 장소이기에 나름 의미를 부여한다. 오늘은 밤운동 하는 날이니 헬스장으로 go~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내더라. 모의고사 성적 특히 수학이 안 나와 담임선생님과 상담했다고. 수많은 학생들을 겪어내신 선생님의 무심한 듯한 한마디. "N기출수학 풀어와~다음 주 수요일까지" (풀어 말하자면 닷새동안 문제집 한 권을 풀어오란 얘기다. 다른 과목도 할 게 많은 재. 수. 생. 에게) 그날밤 뭔지 모를 부정적인 감정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 두 모녀는 열심히 뛰었다.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라 가방에는 늘 KF94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근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마스크를 또 샀단다. 시간 없어 울고, 문제가 안 풀려 울고, 그런 본인한테 화가 나서 또 울고... 그래서 마스크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됐었다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울고 나면 한 문제가 풀린다니 계속 울라고 할 수도 없고 참... 겉으론 태연하게 들어주는 나도 마음이 안 좋아 또 동네를 돌았다. 막막하고 힘든 패턴을 반복하면서.
수요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서둘러 나섰다. 이건 개별 숙제라 수업 시작 전 7시에 문제집을 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반응을 궁금해하며 나도 일터로 향했다. 낮에 톡이 왔다. "엄마, 쌤이 할 수 있는데 왜 고3 때 안 했냬~" 나도 아이도 할 말이 없었다. 내신이 빡쎈 학교였다고 항변하고 싶었으나 남들은 그걸 핑계라 말하더라. 아이도 나도 잠시 나간 정신줄을 다시 다잡았다. 무심한 위로 : 뼈 때리는 조언 = 2 : 8 인 선생님의 도움으로.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5월 앞에서 그렇게 그렇게 4월이 지나갔다~
P.S. 재수한다고 성적이 쭈~욱 올라가는 건 아니더라. 하지만 일 년 뒤 후회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이 기간이라 생각한다. 모의고사는 달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4월부턴 현실(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성적이 떨어졌을 때) 일희일비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특히 엄마가. 그래야 흔들리는 아이의 마음을 잡아줄 수 있다. 피그말리온효과는 내 안에서 나타난다. 꼭!
5월의 성적과 심경변화는 다음 편에~
* 오늘의 단어는 재수생 ろうにん(로~니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