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 끝날 때까지 -
슬기로운 재수생활
난 가족끼리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한다는 주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자와 내가 낳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근데 때로는 하고 싶은 말을 잠시 접어 두는 인내가 필요하더라. 그건 용기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다시 작년으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간신히 정신줄 잡고 있던 4월 말, 학원의 '알림'을 받았다. 재수생과 부모의 1차 고비를 감지한 듯 설명회를 한단다. 서로가 서로를 봐줄 생각도 여유도 없다는 걸 알면서 나름 신경 써서 준비하고 갔다.
딱 3년으로 끝내고 싶었던 그 대치동에 다시 왔다. 아이 학교 내신을 봐주는 학원이 주로 대치동에 있어 다녔던 동네(학교는 대치동이 아니다). 애증이 교차한 곳이야~라는 과거회상형을 쓰고 싶었는데... 아직 진행형을 쓸 수밖에 없는 곳이다.
뭐 그렇다고 그리 화가 나거나 우울하진 않다. 은근 재밌는 추억도 있었으니~
주말마다 도시락을 싸서 수업 들어가기 전 우린 차 안에서 피크닉을 즐기곤 했다.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 제육쌈밥 등등. 몇 가지 안 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다했다.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지금 밥 하기 싫은가 라는 생각도 든다) 주차장은 캠핑장이었고 차 안은 텐트였으니 이는 완벽한 피크닉이었다. 다만 하늘을 보며 별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칠판을 보며 작품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만 빼곤.
고3의 추억과 주차장을 뒤로하고 설명회장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많은 부모들, 참으로 많은 직원들, 참으로 많은 교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재수생이 이렇게 많다고?! (또 한 번 느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폐해를) 가운데쯤 자리 잡고 앉아 자료를 뒤적이며 좌우의 엄마들과 동. 병. 상. 련의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않아~그냥 바라보면~ 우~'라는 광고문구가 머리를 스쳤다. 웅성거림의 맥을 끊으려는 듯 원장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백 년 길고 긴 인생 중에 이 일 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니 세월아 네월아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우리 학원은 관리가 철저하다~ 작년의 의대 실적은 타 학원의 추종을 불허한다~ 등등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이 이어졌다 한 시간 동안.
근데! 우리 애는 이제 수능공부를 시작했으며, 날 닮아 뼛속까지 문과인 데다 이 학원 커트라인에 대롱대롱 매달려 들어온 터라 몰입이 그다지 잘 되진 않더라. 게다가 문과 학생들에게 소홀한 듯한 말씀엔 살짝 서운함도 느껴졌다. 심리적인 거리감이 느껴질 즈음 바통을 이어받은 담임선생님 덕에 나의 정신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음~ 역시 문과는 문과끼리 통해 라고 미소 지은 순간. 이런! 담당과목이 수학이네 그려~
"요즘 애들이 집에 와서 말 잘합니까?"
"애들한테 돈 얘기 하세요?"
"술 냄새는 안 납니까?"
현실적인 질문에 나를 포함한 엄마들이 안도의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담임선생님의 조언이다.
달마다 이유 있는 좌절감이 몰려드니 그냥 사랑의 눈으로 지켜봐라.
학원비가 얼만데! 하지 마라.
술은 모의고사 끝나는 날에 마시게 해라. 나도 이 부분은 강조한다.(사실 성인이니 술을 마신다 해도 안 되는 나이는 아니기에)
꼭 운동하게 해라.
공부는 수능 한 달 전이 제일 잘 된다.
그러니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마라.
결국 가장 중요한 요점은!
재수가 벼슬은 아니지만... 수능 끝날 때까진 잠시 입을 다물고 계셔 주세요~였다.
뭐 재수가 그리 대단하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생에서 처음 쓴맛을 본 친구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닌 것 같다. 사회생활 하다 보니 신경 쓸 것도 많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도 아니더라.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기회를 한 번 더 달라 하니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줘야 하는 게 맞지 싶다.
부모이기에~
그날 어두워진 하늘과 함께 마냥 걸었다. 채워진 생각을 비우기 위해.
P.S. 달마다 이유 있는 좌절감이 몰려들고 수능 한 달 전 머리가 가장 잘 회전하는 것 맞더군요. 그냥 강아지처럼 예뻐해 줬습니다. 짖거나 말거나. 답답한 짓은 꽤 합니다.
* 오늘의 단어는 공부 べんきょう(베ㅇ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