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던 그제, 아침 단상

- 버스가 안 다녀 역까지 걸어가다 든 생각 -

by 일 시 작

10시에 집을 나섰다. 한 시간 후에 후배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 파업이라는 뉴스를 듣고도 별생각 없이 나왔다가 거리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것을 보고 그제야 실감했다. 게다가 날씨 탓인지 교통수단의 부재 탓인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진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산책으론 훌륭한 코스이지만 날씨의 혜택을 못 받은 날은 좀 망설여지는 그런 거리이자 시간이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버스 탈 때가 꽤 있는데... 하물며 그제같이 추운 날은 버스 탈 명분이 더 뚜렷했다. 하지만 이를 받쳐줄 수단이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맛있는 커피 마시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군데군데 얼어붙어 도로엔 블랙아이스가 인도엔 투명한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주먹을 꽉 쥐고 한 발짝씩 옮겼다. 정신 바짝 차리고 걷는 와중에 길가의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닭발집이 오락실로 바뀌었고 옆의 비빔밥집이 없어졌다. 이 집은 비빔밥 단일메뉴라 지나다니며 은근 걱정했었는데 결국 장사를 접었나 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비빔밥집 사장님이지만 또 다른 건투를 빌며 한 블록을 지나갔다. 이십대로 보이는 두 명이 노란 커피집에서 아이스커피를 들고 나오며 환하게 웃었다. 이 추운 날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라~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나로선 그네들의 위장이 참 부러웠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든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든 젊은 친구들이 지금처럼 여유 있게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맞은편 새로 생긴 거대한 빌딩의 대형 통창에선 밝은 기운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이리 큰 회사가 들어올 줄이야~내 건물도 내 회사도 아니거늘 이 뿌듯함은 뭔지. 조금 더 지나자 일 년 내내 밤 11시까지 영업하는 ㅇㅇ약국이 보였다. 급할 때 도움이 되는 곳이라 왠지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은 이유는 또 있었다. 몇 미터 앞에 나의 목적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살얼음판을 피해 요리조리 발걸음을 옮겨 다니다 상점들의 변화도 느껴보고 사람들의 표정도 살피고~ 예상 보다 10분이 더 걸렸지만 바뀌어가는 동네의 정경을 한껏 느낀 시간이었다.

이사 온 지 만 4년. 동네도 나도 성장을 위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느낀다.


어젯밤 시내버스 협상타결 소식을 접했다. 개인이든 사회든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변화를 거쳐 성장해 간다지만 때론 서로 한 발씩 물러나는 아량을 베풀었으면 한다. 지금은 그리고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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