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신 조금씩만요 -
차곡차곡 추억
아부지~!
참 희한하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엄마인데, 아빠~ 하기엔 좀 아이 같고, 아버지~하니 너무 딱딱하고. 그래서 선택한 게 아부지다!
오늘은 울 아부지 얘기를 해 보련다.
우리 아부지로 말할 것 같으면~
화투와 조기축구를 즐겨하셨다.
어렸을 적 평일엔 친구분들과 심심풀이 화투로, 주말엔 아침부터 축구로 은근 자유로운 활동을 하러 다니셨다. 그 덕에 엄마 눈치를 보던 우리 삼 남매는 자유보단 눈치가 먼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었던 것 같다. 또한 술을 엄청 사랑하신다. 특히 소주. 이는 지금도 즐기시기에 과거형을 쓰기가 좀 애매하다. 난 그때 엄마가 술을 배우면 아부지와 좀 덜 싸울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콩나물국은 꼭꼭 끓여주셨다. 그래서 나도 콩나물국을 잘 끓이나~(하하)
아무튼
내가 스무 살이 됐을 때 아부지가 주신 첫 선물도 밥상에서의 소주였다. 안주는 밥이 최고라며! 그래야 위도 보호할 수 있다고. 그 유전자를 내가 자~알 받은 것 같다. 술이 술술 넘어가더라. 소주 2병은 일도 아니었다. 이젠 소주와 적정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마이크 하나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밝음과 긍정의 아이콘이다.
아부지는 집안 행사 때마다 주연과 조연을 넘나드셨다. 지금도 인사 말씀은 아부지 차지다.
아이가 없었던 8년 동안 아부지는 나에게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애써 태연한 척 아무 일 없는 척. 시험관 시술 전날에도 "잘 되는 방향으로 생각해라"라는 단 한 마디만 하셨다. 숨겨진 미소와 함께.
평생 힘든 노동만 하신 분이다. 근데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인쇄소에 새벽같이 나가신다. 군기반장하러! 독수리 오형제가 지구를 지키듯 아부진 인쇄소를 지킨다 이렇게 매일매일.
30년 전 5월 어느 날 큰 교통사고가 있었다. 그 안에 울 아부지가 계셨고..
..~ 낯설었던 병원 생활에 점점 익숙해질 즈음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해 가고 있었다.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넘나들며. 그날도 학교 갔다 병원으로 향했다. 먼발치서 나와 눈이 마주친 아부지가 옆의 환자분과 말씀을 나누시다 급하게 나를 부르셨다.
"얘가 우리 막낸데 얘까지 결혼시키는 게 내 할 일이야!" (그때 난 겨우 대학교 4학년이었다)
"아 네~"
"그러니 *씨(옆의 환자분)도 힘 내고 버텨."
이날 알았다. 아부지가 수많은 수술을 거치며 싸워 이겨낸 이유를. 지금 아부지의 머리 속에는 쇠가 들어가 있고 왼손은 형태만 남아있다... 오른손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기분 좋게 또 한 잔 하신다.
지금도 기억한다. 지독하게 화창했던 그날을. 난 그 화창함이 사무치게 야속했었다.
하지만 오늘의 화창함은 다르다. 진정으로!~ 고맙다.
우리 엄마, 아부지를 환하게 비춰주니~^^
* 오늘의 단어는 아버지 おとうさん(오토-사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