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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 시 작 Jun 20. 2023

동태탕사장님의 특단의 조치!

- 내 마음을 사로잡은 메뉴판 -

차곡차곡 일상


고물가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난 '행진'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줄지어 앞으로 나아감'에 '씩씩하게'라는 의미를 부여해 때론 팔을 직각으로 세워 걷는다. 내가 봐도 좀 웃길 때가 있다. 가끔 들국화의 행진도 들으면서. 근데 행진 앞에 고. 물. 가. 가 붙으니 그 기세에 자꾸만 눌리는 것 같다. 같은 단어에 뭐가 붙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뉴스를 봐도 사람들을 만나도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고물가의 벽 앞에서 우린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다들 부정적인 건 아니더라. 

그날 난 답답한 현실 속에서 시원한 세상을 맛봤다. 사장님 덕분에. 




얼마 전 오랜만에 예전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이라며 반갑다며 기가 막힌 곳이 있다며 무작정 나를 인도했다. 생선도 탕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친구들이 데려간 곳은 음~

이 두 가지가 합쳐진 동태탕집이었다.


아무튼 소문대로 맛이 좋았다. 알 추가에 내장 추가, 면 추가까지 친구들의 겹겹이 쌓인 우정을 뜨겁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근데 맛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메뉴판이었다.



요는~ 경기침체로 비상경영에 돌입하긴 하나, 6년 전 가격 그대로 가겠다. 대신 피자와 불고기 서비스는 중단한다 이다.


중요한 건 사장님의 따뜻한 화법이다. 표현법에서 사장님의 남다른 시각과 따스한 마음이 엿보인다.

'피자와 불고기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사장님의 일방적인 통보로 들리지만,

'피자와 불고기를 추억으로 간직하길 바란다'는 사장님의 어려움을 표현함과 동시에 진심으로 고객에 대한 미안함과 이해를 구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동태로 맺어진 사장님과 고객의 인연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특단의 조치라고 하니 이 대목에선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이래 쓰나 저래 쓰나 현실이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요즘같이 모두들 힘들 때 내 사정에 대한 완곡한 표현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 한마디 면 이 여름의 시작점에서 덥고 답답한 우리의 현실이 따뜻한 시원함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땀나도록 시원한 이 동태탕처럼~^^


*오늘의 단어는 사장님 しゃちょう(샤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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