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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두소이 Feb 23. 2020

04 용어들의 혼용

비전이 담긴 사명

  우리가 비전, 사명 그리고 사역에 대한 용어들을 흔하게 혼용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어릴 적 누구나 진로에 대해 다음과같은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너의 비전이 뭐야? 너의 꿈이 뭐야?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의사가 될거야, 선생님이 될거야” 등의 직업 중에서도 전문직 직업으로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정의한 개념으로 볼 때 비전과 사명을 혼동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혼용 자체가 문제될 건 없지만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최소한 이 책에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나의 비전과 사명, 그리고 사역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전, 사명 그리고 사역 각 용어의 개념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기존의 출판된 많은 책들 중에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두 책 “목적이 이끄는 삶”(도서출판 디모데)과 “소명”(IVP)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비전이 담긴 사명” vs “목적이 이끄는 삶”


  “목적이 이끄는 삶”과 “비전이 담긴 사명으로 사역하라(이하. 비전이 담긴 사명)”의 제목만 보면 목적은 비전과, 삶은 사명과 대응되어 개념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목적이 이끄는 삶”은 “비전이 담긴 사명”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적 측면에 치우친 부분도 있고 용어도 혼용되는 부분도 있다. 우선 “목적이 이끄는 삶”에 나오는 다섯가지 목적을 간략히 살펴보자


 첫번째 목적 :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두번째 목적 :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세번째 목적 :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네번째 목적 :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받았다.

 다섯째 목적 :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


  첫번째 목적은 “비전이 담긴 사명”의 비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기쁨”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나머지 목적은 첫번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부수적인 목적으로 네 번째 목적은 “비전이 담긴 사명”의 “사역”과 대응되고 다섯째 목적은 “사명”에 대응된다. 주된 목적과 부수적인 목적을 순서대로 나열함으로써 “비전이 담긴 사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각 용어의 관계가 모호해져 버렸다. 비록 각 목적의 관계는 모호해 졌지만 네번째 목적에서 기존의 “사역”을 바라보는 이원론적 관점(예을 들면 목회자를 전임 사역자로 부름)을 탈피하고 모든 크리스천은 사역자로 언급하여 “비전이 담긴 사명”의 “사역”에 부합되게 설명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다섯째 목적에서는 사명과 사역을 다음과 같이 구분함으로써 “비전이 담긴 사명”의 기준에서 볼 때 혼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섬김이고 (골1:25, 고전12:5), 사명은 이 땅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섬김이다.”

“비전이 담긴 사명”은 믿는 사람을 위하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든 하나님의 영광에 부합된 일을 하면 그것이 바로 사명이고 사역이라고 보는데 비해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는 대상에 따라 사역과 사명을 구분한다. 즉 대상만 다를 뿐 “사명”과 “사역”의 개념을 동등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말하는 사명은 복음전파라는 종교적 사명으로 국한하여 설명함으로써 이 세상에서의 문화적 사명이 배제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갖는 직업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이에 반해 “비전이 담긴 사명”은 이러한 문화적, 세속적 영역에서의 우리의 역할에 대한 정당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비전이 담긴 사명” vs “소명”


  “비전이 담긴 사명”을 통합하여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소명”이다. 오스 기니스는 “소명” (IVP)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소명”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 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그리고 소명에 관한 4가지 성경적 개념을 살펴본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르심이다.

둘째, 이름을 붙인다는 것으로 어떤 것을 만들거나 존재하게 한다는 뜻이다.

셋째, 하나님이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도록 그분에게로 부르신다는 의미이다.

넷째, ‘모든 사람, 모든 곳, 모든 것에서’를 내포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자연스럽고도 합당한 반응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의미를 각각 다음과 같이 일차적인 소명과 이차적인 소명으로 정리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의 일차적인 소명은 그분에 의한, 그분을 향한, 그분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이차적인 소명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권적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전적으로 그분을 위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살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소명은 부르는 자와 부르심의 대상이 되는 관계로서 설명을 할 수 있다. 즉 부르시는 자의 부르심이 일차적인 소명이며 그 부르심에 대한 대상의 반응이 이차적인 소명이 된다는 것이다. 일차적인 소명은 이 책에서 말하는 비전이 되고 이차적인 소명은 사명이 된다. “소명”에서는 왜곡된 소명의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소명의 배경이 되는 예배를 회복해야 함”을 말한다. 하지만 “비전이 담긴 사명”에서는 예배를 비전과 동일한 개념으로 설명할 예정으로 일차적인 소명과 동일하게 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다소 혼동이 있을 수 있다.


“소명”에서는 “역사를 통틀어서 소명과 관련하여 정리된 구분들을” 설명한다.


“첫째, 우리는 개별적인(혹은 특정한) 소명과 공동체적(혹은 일반적) 소명을 구별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후발적인 특별한 소명과 본래적인 평범한 소명을 구별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우리의 소명에서 중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을 구별해야 한다.”

“넷째, 우리는 소명의 명료성과 신비성을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구분들을 근거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1787년 윌리엄 윌버포스가 일기장에 적어 둔 ‘두 가지 위대한 목적’ – 노예매매의 폐지와 관습의 개혁 – 은 아마 역사상 가장 단순하고도 놀라운 개인 사명 선언문일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을 위한 모델로 받드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비전이 담긴 사명”에서는 개인 사명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윌리엄 윌버포스의 예가 모든 사람을 위한 모델은 아닐지라도 영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탈피하기 위한 좋은 예로서 소개할 예정이다.


  “소명”에서는 앞서 살펴 본 ‘카톨릭적 왜곡’과 ‘개신교적 왜곡’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소명을 함께 묶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원론은 소명의 힘을 없애지만 총체적인 이해는 소명의 위력을 발휘하게 한다.”고 말한다. 인간인 우리는 언어와 문화로부터 받는 영향을 배제시킬 수 없기 때문에 소명 안에 두가지 개념(일차적인 소명, 이차적인 소명)이 공존함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비전이 담긴 사명”에서는 소명의 두가지 개념에 대응하는 다른 용어인 “비전과 사명”으로 내용을 풀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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