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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Sep 06. 2019

걱정 말아요 현대의학에 맡기세요

질병 해결방법에 대한 고민

흔한 현대의학 이야기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련을 할 때면 멍하니 손을 까딱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의식을 잃으며 쓰러진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깨어나도 한동안은 멍해서 깨어나도 한참 멍해서 말을 걸어도 정상적인 대화는 어렵다고.


"요즘 경련이 빨리 돌아와요."

물어보지 않았는데 아이는 경련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먼저 얘기한다.


어떨 때 더 심해지냐는 질문에

"게임을 많이 할 때요." "햄버거나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은 날이요." 하며 그냥 생각나는 데로 털어놓는다.

"약을 좀 올려 봅시다"라는 맺음 말을 남기며 진료는 끝이 난다.


그리고 몇 번의 외래진료가 더 있었다.

경련에 대한 질문은 이전과 비슷했고 답변도 그때와 유사하게 이어졌다. 마지막 역시 약 용량의 조절로 마무리되었다. 경련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조절되지 않아 그런지 항경련제는 계속 증량되었다.


아이는 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약으로도 제어가 되지 않는 경련을 가지고 타지로 가는 건 떠나는 아이나 보내는 부모 모두에게 불안한 일이다. 경련의 원인을 찾는 뇌의 엠알아이 영상에서 측두엽의 해마 부위에 굳어진 부분(hippocampal sclerosis)이 보였다. 아마도 그 부분이 경련의 시작 부위가 닐까 의심되었지만 우선은 약으로 조절하며 지켜보던 중이었다. 유학이 결정되며 느긋하게 교정할 여유가 없어졌다. 빨리 문제를 수정하고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되자 수술이 신속히 결정되었다.


삼 개월 후 뇌의 이상 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로 측두엽 해마의 경화 부분은 말끔히 잘려나갔다. 놀라운 건지 당연한 건지 모르지만 아이의 경련은 멈추었다. 그렇게 경련에서 해방된 아이는 유학을 떠났다.  


해피엔딩이다.


그런가?



행복한 결론이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현대의학의 시선에서 환자의 질병은 고쳐야 할 문제점이다. 그래서 그 문제를 고친다. 정확히는 딱 그 문제만 치워 버린다가 맞은 표현.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경련을 하게 되고 뭘 할 때 더 심해지는지에 대한 고민은 경련을 없애야 한다는 미션보다 중요하지 않다.    


진료실에서 했던 아이의 말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분명히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고 나서 경련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먹어 경련을 일으켰다고 말하면 의학을 모르는 무지랭이 소리를 들을 각오 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많이 먹는다고 경련하지 않는다.  남들 다 먹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경련이 심해졌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경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치료다. 물론 현대의학은 그 큰 미션을 해내고 만다. 수술로 경련을 일으키는 부분을 싹 도려내니 아이스크림과 게임을 실컷 즐기고도 경련을 안 한다.


아이도 부모도 치료자도 행복해야 할 상황에서

왜  나만 불편한 걸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불편한 자가 가지고 있는 변두리 의견이다.



 눈엣가시를 제거하라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경련과 연관 지을 정도면 슈퍼에서 파는 @@바, %%콘 하나 먹어서 그런 생각 한 것은 아닐 것 같다. 나도 아이스크림 먹어 봐서 안다. 커다란 아이스크림통을 열어서 1회 제공량만 먹고 숟가락 딱 놓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는 스스로 정량 조절이 어려운 초가 공식을 앞에 두고 과하게 먹기를 여러 날 반복했을 것이다. 과량의 정제당, 감미료는 대뇌에서 흥분 자극을 준다. 가공식품이 주는 짜릿한 만족감이 마음속 허기까지 달래주었을지도 모른다.

게임은 또 어떠한가? 게임은  내가 잘은 모르는 영역이지만 심심풀이 게임 한 두 번에 경련이 심해졌을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피곤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게임 속 세상에 몰입하면서 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기적 신호 자극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비록 게임이든 아이스크림이든 경련을 직접 유발한 증거는 없지만 경련 회수가 증가했다는 아이에게는 분명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질병은 식생활, 정서적인 상태, 육체적 활동 모두가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표면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같은 병이라도 증상이나 영향도 다 같지 않다. 측두엽 경련의 원인으로 알려진 해마경화는 영상검사로 보이는 거시적인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런 여러 원인에 대한 고민 없이 해마경화는 경련 그리고 뇌절제는 경련 해소라고 해결해버리는 건 너무 단순한 거 아닌가? 적어도 해마의 경화가 왜 왔는지도 설명을 못하는데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수면 아래 더 크게 존재하는 빙하는 눈에 보이는 것만 깎아 내면 다시 그만큼 물 밑에서 올라온다. 인간의 병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는 부분이 사라진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빙산의 일각

이제 경련이라는 문제점을 도려내었으니 두려움 없이 아이스크림과 게임을 하는 아이는 어떻게 될까?

정확히는 경련을 걷어 낸 게 아니라 뇌의 특정 부분을 제거한 것이다.

모든 뇌는 부위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비록 해마 부위가 병적으로 변화되었지만 원래는 언어 기억력을 담당하는 부위다. 더 큰 범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던 예전보다 부작용은 훨씬 적어졌다. 그럼에도  수술 후 올 수 있는 부작용으로  출혈, 감염의 위험을 감내하는 건 기본이고 추가로 해마부위의 기능과 관련된 부작용인 언어기억이 감소될 위험도 각오해야 한다.


 아이의 BMI는 30에 육박했다. 스스로 음식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햄버거 아이스크림 같은 가공식의 공세에 맥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아이의 식생활은 경련뿐 아니라 다른 신체 기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차피 교정이 필요하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폭식하고 게임에 몰두하게 된 상황이 무엇인지 어떤 음식과 어떤 취미생활로 바꿔줄지를 고민하는 것은 바로 경련을 딱 멈춰 주지는 못하지만 틀어져 버린 몸과 마음을 서서히 교정해주진 않았을까? 다른 문제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눈앞의 골칫거리인 경련만 없애버린 채 아이는 아주 낯선 타지로 가버렸다. 가족 의료진 모두 경련이 사라진 이후 아이의 삶에 너무 무관심하다.

경련만 없어지고 나머진 그대로인 그 아이의 건강과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행복이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경련이 더 심해진다고 했을 때 게임 대신 다른 놀이를 찾아보자, 아이스크림 대신 다른 간식으로 바꿔보자라고 강하게 말해주었다면.  아이가 게임이나 아이스크림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정신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얻도록 시도하고 고민을 함께 해보았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대체 게임이 뭐라고 그놈의 아이스크림이 뭐라고 경련을 각오해야 하고  수술을 각오하고, 내 머릿속 뇌 조직과 맞바꿔야 한단 말인가.



놀라운 현대의학의 힘


 현대의학의 첨단 치료기법은 경련을 없애는 뇌 절제술뿐 아니라 비만 치료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위소매절제술이나 위밴드 결찰술이 고도비만의 치료에서 완치도 바랄 수 있다고 소문났다.

비만을 질병으로 해석하면 위장관이 칼로리를 과도하게 흡수하거나 음식 앞에서 절제력이 망가지는 병이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 그 과도하고 망가진 것들을 새 걸로 갈아 주는 것이 현대의학의 접근법이다.


음식을 많이 먹어도 흡수하지 못하게 위를 80% 절제해 버리는 위절제술은 얼마나 깔끔한 해결인가. 그렇게 절제된 위를 가지고  6개월 만에 50킬로 이상을 빼는 건 일도 아니다.

  

애초에 왜 많이 먹게 되었는지 왜 몸이 스스로 절제를 하지 못하고 식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저 비만은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일단 눈에 보기 불편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고 떠나 버리면 평생 영양실조와 싸우며 살게 되거나 다시 남은 위가 늘어날 때까지 폭식하는 인생은 오롯이 자기 몫이다.


요즘에 한층 더한 약도 나왔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의지력을 시험에 들지 않도록 중추신경을 꽉 잡아주는 약이 바로 그것이다.  이전에 블로그에서 삭센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참 삭센다 열풍이 몰아칠 때 블로그에 삭센다라고 치면 은혜로운 약의 효과를 간증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모두들 주사를 맞고 파스타, 피자 치킨을 눈앞에 두고 처연하게 수저를 탁 놓았다며 음식과의 전투에서 승전보를 전했다.  


전투를 해야만 하는 음식이라면 그 음식을  다른 건강한 음식으로 바꾸는 게 순리인 거 같은데 음식을 그대로 눈앞에 두고 내 정신에 약을 쳐버리는 시도가  과연 장기간 성공할 수 있을까?  결국 연구 결과는 체중의 5% 정도 감량이다. 엄청난 승리 같지는 않다.

삭센다의 승률이 몇 프로인지와 상관없이 그 놀라운 효과는 나에게는 무서운 기능이다. 건강한 식욕이 삶의 원동력인 나에게 식욕 스위치를 끄면 과연 있을까?


각각의 문제는 너무나도 깔끔한 해결을 할 수 있는 의술이 한데 모아지면 참 기괴해진다.  

수술로 해마를 절제하고 경련이 없어진 아이는 더욱 식탐을 조절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비만이었고 초고도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련을 해결한 것처럼 고도 비만도 다시 위를 절제해서 아니면 매일 삭센다를 맞으며 해결해버리면 되니 걱정할 것 없다.


하지만 하나를 해결하면 안보이던 두 개 세 개가 더  튀어나오는 거 같은데...




내 몸에서 현대의학의 기적을 보고 싶지 않아


여기서 잠깐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게임을 하면 아이들이 경기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혀둔다.

또한 경련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을 끊고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를 안 먹으며 지켜보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뇌 절제술은 과격한 치료이기 때문에 받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눈앞에 보기 싫은 결과를 싹 밀어내는데 탁월한 현대의학의 서슬 퍼런 칼날을 우선순위 어디에 둘 것이냐를 묻고 있다.

 

난 현대의학의 불신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놀랄만한 업적에 감탄하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많은 만성병들은 의학의 놀라운 기적까지 갈 필요가 없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과 살아가는 환경, 몸의 움직임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처럼 매일 일상의 건강한 선택으로 조금씩 바뀔 수 있다. 다만 조금 느릴 뿐이지만 근원적인 변화는 차근차근 이루어져야 한다.  

약하나 수술 하나로 질병이 싹 없어지고 인생이 바뀌는 그런 기적은 없다. 기적처럼 보이는 미봉책일 뿐이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그 단추를 틋어내는게 아니라 다 풀고 하나하나 다시 맞춰가야 한다. 느리지만 지속가능한 온전한 방법이

  

경련이 애초에 왜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초가공 식품(아이스크림, 햄버거)을 과도하게 섭취하고 하루 종일 게임 화면에서 쏟아지는 전기적 신호를 응시하면서 아이는 경련에 더 민감해졌다. 이런 악화 요인을 조절하며 느리지만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한 다음 그럼에도 호전이 없을 때 놀라운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보는 것이 다음 순서가 아었을까.  

  

무엇보다도 난 자랑스러운 현대 의학기술의 기적을 내 몸을 빌어 확인하고 싶지 않다.

그건 누구나에게나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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