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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Jun 01. 2021

백신을 맞다

노쇼백신당첨

결심을 행동으로

백신을 맞기로 했다고 동네방네 광고했지만 그건 그저 바램일뿐 내게 올 백신은 없었다. 백신확보량이 넉넉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백신부자나라에서 선의로 쾌척해주면 잠깐 접종을 하다가 분량이 소진되면 멈추는 양상이다. 부족한 자원은 동방예의지국답게 나이 순으로 접종되는데 지금 60-64세 구간이니 49세 이하 젊은이까지 내려오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물량도 부족한데 종류를 고르는건 생각도  수 없다. 누구나 맞고 싶어하는 백신계 왕자 화이자는 75세 이상 최고 어르신만 가능하다. 그 아래 젊은이들은 천덕꾸러기 아스트라제네카(이하 아제)백신뿐이다. 그 나마도 60세 이하는 맞을수 없다.  지난주말 얀센백신 백만도즈가 긴급 투입되었지만 30세이상 예비군, 민방위등 군관련자에게만 할당될 예정이다.  좀더 기다리면 화이자, 모더나가 풀린다는 소문도 돌지만 언제올지 기약도 없고 화이자, 모더나 맞는다고 백신사망이 없는 것도 아니백신이상반응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짜피 맞기로 한거니 맘에 쏙들진 않아도 아제백신 맞는것에 전력을 다하기로 맘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전력이란 예약펑크난 백신에  웨이팅 걸어 두는 것. 바로 잔여백신 또는 노쇼(No Show) 백신이라는 틈새접종이다.


백신이 아무래도 과민반응, 알러지반응이 생길 수도 있다보니 접종당일 컨디션이 나쁘면 맞지 말라고 한다. 게다가 백신에 대한 괴소문을 고 맘이 찜찜해지면 당일 이유없이 취소하기도 하는데 막을 수도 없다. 그렇게 당일 펑크가 생기면 다음 순번 어르신으로 넘겨 놔드리면 될거 같지만 그렇게 쉽지 않다.


  백신을 일단 열면 6시간 내 다 소진해야지 남았다고 냉장보관 해서 다음날 쓸 수 없다. 이를 감안해  10인분인 한병 당 10명씩 묶어 미리 예약을 해둔다. 거의 대부분 노쇼가 생길 수 밖에 없고 안그래도 백신이 부족해 꾸어오는 입장에서 잔여 백신을 버리는건 죄악이다. 알뜰한 백신활용을 위해 ,의원에서는 노쇼백신을 맞겠다는 지원자들의 예약을 받고 있다.  


나도 그걸 맞아 보겠다고 손을 들었다. 네이버에 잔여백신예약으로 검색하면 예약방법이 다양하게 나오는데 당일 전화받고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근처 병, 의원에 예약 걸어두는게 접종확률을 높일 수 있다.  


백신 기피자인 내가 백신 옹호자가 되더니 아주 적극적으로 대기자리스트에 이름을 올릴줄은 상상도 못했다. 리스트에 올린다고  뭐 금방 맞겠나 싶어서 여유로운 척 했는데 차례는 생각보다 빨리왔다.  

국민비서께서 예약되었다며 친절하게 안내문자까지 보내주셨다.

님, 노쇼백신 당첨되셨습니다.

병원에 예약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라가 내 백신 예약을  관리하다니...  백신접종자를 한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수 있다.




백신 경험담

친구들에게 이미 백신 접종 후 무용담(주사 맞은데가 뻐근하고 몸이 쑤시다)을 여러번 듣긴 했지만 바로 와닿지 않았다. 코로나 백신을 맞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 뭐랄까 반은 떨리고 반은 큰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귓등으로 흘리며 뭐 건강해서 큰일은 안날거야 하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차 있었다.

소매를 높게 걷어올리느라 주섬주섬 부산스러웠지만 바늘이 삼각근에 박히고 약물이 들어가는 건 순간이었다. 피뽑는 느낌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백신은 낮 12시에 맞았고 바로 기념으로 친구와 점심을 거나하게 먹었다.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친구의 만류에도 맥주 한 모금 정도는 괜찮다며 반주까지 하면서 말이다.

접종증명

그리고 저녁 8시 신이 났다. 남들 다 아파도 나는 안 아플거라며... 준비해둔 타이레놀은 먹을 일 없을 듯 하다며 허세를 부렸다.


평소처럼 9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잠든지 3시간째 눈을 번쩍 뜨였다. 이 느낌.. 코가 막히는 듯하고 머리가 띵한 이건 몸살을 알리는 사인이다. 그때만 해도 그래 몸살기 온다던데 이건가 보다 하고 건성으로 넘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 4시, 5시 시간마다 눈이 떠졌고 뭔가 이상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춥고 쑤셨다, 온몸이. 

 피부의 감각은 예민해져서 옷이 스치는것도 신경이 쓰일 정도. 슬슬 몸에 열이 오르는듯 했지만 으슬거리고 추웠으며 머리는 조이는 듯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 9시... 뭔가 잘못되어 가는것이 분명했다.  증상은 자꾸 더 심해지고 어르신들이 말하는 그 뼈가지가 쑤시는 느낌으로 번졌다. 거대한 몸살이었다. 친구에게 타이레놀은 한알도 먹지 않았다고 허세 인증샸을 보냈는데 사실은 털어 고 싶은 마음을 엄청 참는 중이었다. 쓸데 없는 에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이 몸살기와 싸워야 했다.


이날은 지인과 점심을 먹기로 약속이 잡혀있었다. 내가 약속을 잡은게 아니라면 백번 약속을 취소했을 텐데,  과거의 나를 욕하며 결국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날 비가 오긴했지만 길에 겨울코트와 목도리까지 두른건 나혼자 였다. 얘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는 동안은 정신이 분산되어 몸살기는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니 본격적으로 몸의 감각이 100% 전달됬고 이젠 누가뭐래도 타이레놀이 필요한 순간이 었다. 허나  여기서 해열 진통제를 먹으면 백신에 무릎 꿇는거다라는 치기가 생기니 더욱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바닥을 뒹굴뒹굴하며 근육통과 두통과 씨름했고 TV보는것, 잠자는것 그리고 그냥 눈깜빡이는 것만 하며 시간 견디기를 했다. 잠을 자며 견디는 것도 어렵게 2~3시간 마다 깨기를 반복하며 백신 이틀째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때 머리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맻히고 몸살기운은 확 날아가 있었다. 더이상 춥지 않고 뼈도 근육도 쑤시지 않았고 두통도 거의 다  사라졌다. 뭔가 큰 전투를 마치고 혼자 살아돌아온 느낌이었다.

 


 

백신 솔직 후기

"감기 앓아본지 2년도 더된듯하다"  이 말을 적어도 3년이상 우려먹었은 걸로 보아 적어도 4년동안은 몸살을 앓은 기억은 없다. 건강하게 먹으면 감기 걱정 안해도 된다며 은근 자랑해왔는데.. 결국 몸살을 앓게 되었고 그렇게 만든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꼬박 하루 반을 폭풍같은 백신 몸살에 시달릴 줄은 상상도 안해봤다. 내가 엄살이 좀 심한 편인데 나에게는 백신몸살이 감기몸살보다 더 힘들었다. 두번째 밤에는 몸은 쑤시는데 잠이 안오니 그냥 평생 마스크 쓰고 살걸 하는 후회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약오르게도 같은날 맞은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정식 백신 접종) 고생은 나만 한걸로 보아 젊은 층에서 면역반응이 더 크게 온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피검사를 해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호되게 온몸으로 시달린걸 보면 항체가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진거 같으니 두번째 안맞아도 될거같다고 우기고 싶다. (물론 두번째도 무조건 맞아야한다)


 몸살기운에 무릎꿇어서 자존심은 살짝 스크레치났지만 몸은 평소로 돌아왔고 컨디션은 모두 정상이다. 백신접종 후 단기 반응은 짧고 굵은 몸살기였고 5일이 지난 지금까지 다른 중대한 이상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백신을 맞고 보니 맞으라고 남에게 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백신 맞지 말라고 만류하지는 안겠지만 맞아서 안아프면 다행이고 운나쁘면 나처럼 심한 몸살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내가 뭐라고 강요 하겠는가.


남 좋은 일 시키는 백신접종

마스크에 효과성은 나를 보호하는 목적보다도 상대를 보호하는 효과가 더 크다.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다. 백신을 접종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거의 실감하기 어려운데 반해 주사로 인한 통증은 직접적이고 고통스러울수 있으며 중증 이상 반응의 위험도 계속 따라다닌다. 하지만 남의 이득은 분명해 보인다. 임상 시험 결과에서도  일부 돌파감염(breakthrough infection)을 제외하고는 바이러스전달이나 감염후 중증도를 확실하게 경감시켰으며 변이형에도 예방효과가 다. 따라서 백신을 맞고 나면 나로인한 코로나전파가능성은 줄어들어 내가 속한 집단이 코로나에 감염될 위험이 낮아질 수 있다.  


내가 백신을 맞고 나서 백신을 권하지 못한것은 백신권유는 기본적으로 이타심(altruism)에 호소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당신의 건강을 위해 백신을 맞으라고 하면 합리적으로 설득시키기가 어렵다.

우리는 아직 접종율이 10%정도라 백신이 모자라면 모자랐지 백신회피가 이슈가 되지않는다. 하지만 전국민의 40%이상이 접종한 미국에서는 백신에 대한 공포심 혹은 아직 검증 받지 못한 약제에 대한 불신으로 백신이 충분해도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을 여론몰이를 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 강제로 접종하도록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와 백신으로 인한 공공의 이익 문제를 시간을 가지고 대화로 풀수 밖에 없다.


물론 다분히 남 좋은일 시키는 백신을 모두가 맞게 하려면 분명한 동기유발은 있어야 한다. 백신후유증을 고려해 별도의 단기 휴가를 보장해 줘야하고 백신을 완료했을때 마스크를 벗거나 집단모임에 참가할 수 있는 통행증을 주는 것도 적절해 보인다. 이런 보상은 있어야 백신경험이 두려움 고통, 후회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개인성이 강한 나는 백신몸살을 앓는동안 괜히 맞았나하며  잠시 접종한걸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몸살은 하루 반정도면 끝나지만 코로나상황은 일년이될지 이년이 될지 기약을 할 수 없다. 백신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걸 알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똑같이 백신을 맞는다는 결정을 할 것이다.



강한척하고 있지만  3개월 후 2차접종이 지금부터 걱정스럽다.

그땐 금요일에 휴가내고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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