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이파이(Sci-fi) 드라마들은 정신을 추출해 새 몸에 접속시키는 마인드 트랜스퍼 (혹은 마인드 업로딩) 소재를 즐겨다룬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도 영화 6번째날(the 6th day), 티비시리즈 배틀스타갈락티카의 프리퀄인 카프리카(Caprica), 넷플릭스 드라마인 얼터드카본(altered carbon), 트레블러(travelers) ... 등등 줄줄 튀어나온다.
'트레블러'는 마인드 업로딩을 타임슬립에 접목했는데 미래인류가 역사를 바꾸고자 과거시점 인간의 몸으로 좌표를 찍어 미래인의 마인드를 전송시킨다는 설정이다. 새로운 의식이 업로딩된 과거 인간은 컴퓨터처럼 포멧되어 사라진다. 멀쩡한 과거인간을 죽이는 비윤리적 행위를 피하기 위해 미래인들은 역사 속에 죽는날인 사람에게만 마인드를 옮긴다.
캐나다 TV드라마 '트레블러'
티비드라마 '얼터드 카본'에서는 정신 업로딩 기술과 인간 복제기술이 발달한 2386년의 미래사회를 그린다. 그 곳의 부자들은 육체가 늙어지면 의식저장 장치인 스텍(stack)을 젊고 매력적인 새 육체(슬리브)로 옮겨심으며 끝없는 삶을 영위한다. 새로운 슬리브를 구할 형평이 안되는 가난한 이들은 나이들어 늙고 병들면 인생을 아쉽지만 한번(?) 살고 죽어야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얼터드카본'의 슬리브
마인드 트렌스퍼는 인간의 평생 기억과 사고 체계를 데이터로 집적한 후 그 전체 정보를 새로운 물리적 그릇으로 옮기면 오리지널 의식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원리에 기반을 둔다. AI가 많은 정보를 학습할 수록 인간과 흡사해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게 한 인간의 의식을 통복사해서 다른 인간, 복제인간(clone) 또는 사이보그에 이식시키면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탄생하게 된다. 간혹 의식을 가상현실에 풀어놓을 수 있으면 영화 매트릭스같은 스토리가 나온다.
다른 그릇으로 옮겨진 의식이 비록 오리지널의 기억을 가지며 스스로를 주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전 육신에 남아 있던 원본의식은 육신과 함께 소멸한다. 그에 반해 올드하지만 영혼은 원본의 형태로 이동하기 때문에 다른 인간의 몸에 들어가더라도(빙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
결국 데이터 집적으로 만든 마인드는 복제품일 뿐이라정신을 추출해 다른 육체에 집어 넣는것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원본을 유지하는 영혼개념이 내 취향에 더 어필한다.
바디 체인지
허황되지만 미디어에서 마인드 업로딩 소재를 계속 우려 먹는걸 보면 태어날때부터 좀 부족하거나 오래써서 낡아 버린 몸을 버리고 매력적인 신상 몸으로 갈아탄다는 아이디어가 대중의 흥미를 끄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과학으로 몸 전체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갈아 끼울 수 있다. 기능을 상실한 신장, 간, 심장, 폐를 건강한 장기로 교체하는 이식술이 그것이다. 이미 팔, 다리 심지어 얼굴의 일부도 이식에 성공했다는 보고하는데 언젠가 장기 배양기술 까지 발달한다면 기증자에 의존하지 않고 전체의 장기 혹은 육체 전부를 교체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 올 것이다.
새로운 혹은 젊어진 몸을 바란다면 나라고 생각하는 내 복제품이 신상 몸을 즐기는 마인드 트랜스퍼보다 지금 내가 즐기도록 몸을 바꾸하는 것이 더 마켓 소구력이 있을 거 같다.
지금으로선 장기가 망가진 비극적인 상황에서 이식술을 받는 것 말고는 태어난 몸을 바꿀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내가 태어날때 엄마에게 받은 몸은 불과 3키로 남짓 한 뼈와 살에 불과했다. 50키로를 훌쩍 넘긴 지금, 그 초기 3키로가 고대로 몸에 남아 있다 치더라도 3키로를 뺀 나머지 몸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변하지 않은 몸?
말이 나온 김에 모친이 날 낳을때 투자한 지분이 지금 몸에 얼마나 남아있는지 살펴보자. 태어날때 받은 몸이 지금껏 남아 있으려면 세포가 분열이나 재생을 거의 하지 않아야한다. 대표적인것이 바로 안구 속 렌즈이다. 렌즈는 태어날때 이후로 눈 깊숙이 자리잡아 외부 감염에도 보호된 체 투명한 마음의 창으로 존재한다. 재생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만약 렌즈를 심하게 받아 혼탁해지면(백내장) 새 렌즈로 교체하는것 것 외에 치료가 없다. 렌즈 외에 뇌세포 역시 한번 손상받(죽)으면 재생하지 않는다. 혈액을 생산하는 골수속 조혈모세포(줄기세포, stem cell) 도 필요할때 분열하여 자손세포를 만드는것 외에는 소멸하지 않는다. 이렇게 태어났을때 그대로 모습을 보존하는 줄기 세포를 모조리 모으면 과연 몇 키로나 될까? 세포하나의 무게가 3.5 × 10^-9g로 티끌보다도 가볍다. 참고로 골수의 조혈모세포가 최대로 200,000개라고 하니 이들 무게를 다 합친다해도 1그람 넘기기 어려울것 같다.
뇌조직, 렌즈, 조혈모세포 그리고 나머지 줄기세포 모두를 다 더하고 합쳐도 성인이 된 내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를 넘기 어렵다.
분명 엄마가 준 몸은 작고 미약했는데 지금 이 커다란 몸뚱이는 어디서 떨어진 것일까.
우리 몸은 팔, 다리, 몸속 장기의 집합체 지만 이들을 구성하는 가장 하부조직은 세포다. 팔, 다리는 변화없는것 처럼 보이지만 세포단위에서는 다르다. 아침에 이를 닦을때마다 구강 상피 세포가 쓸려나가고 배변 볼때는 먹은 음식 뿐아니라 장의 점막 상피세포도 떨어져나간다. 피부도 역시 수명이 다하면 때밀때 벗겨져 나간다. 매일같이 세포는 커지고 노화하고 죽어 떨어져 나가고 떨어져 나가는 것 만큼 혹은 더 많은 세포가 세포분열과 성장으로 채워지고 있다.
어릴때 3키로 였지만 50키로이상 성장한 것은 세포분열이 더 활발하기 때문이고 성인이 되면 이 소멸과 증식이 비등비등 하다가 30대 후반부터는 소멸비율이 커지며 늙어가게 된다.
이런 외양적 변화를 일으키는 다이나믹한 생체활동의 원동력, 원료는 다름아닌 음식이다.
내 몸은 음식 더미
누가그랬다.(Sadhguru) 바나나를 먹으면 그 바나나가 인간이 된다고. 바나나가 변신술을 쓴다는게 아니다. 바나나를 먹으면 3시간도 안되 소화되어 영양소, 열량, 섬유소로 바뀌고 각각은 세포의에너지원으로 쓰이거나 증식, 재생에 활용된다. 진짜 내 몸의 세포 일부가 되는 것이다.
번식하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
바나나 뿐 아니라 매일 먹는 밥과 반찬, 과일, 간식 모두가 내 몸안에서 놀라운 변신을 거쳐 나의 일부가 된다. 과일을 먹건, 밥을 먹건 고기를 먹건 이들은 결국 내 몸의 일부가 되는데 마치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이 손만 뻣으면 상대를 스미스 요원으로 바꾸는 것 같은 과정이다.
부모가 주신 몸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상은 부모가 물려준 몸보다 내가 음식을 먹어 만든 몸이 압도적으로 많다. 달리 말해 지금 몸은 이때껏 내가 먹어온 음식 더미에 불과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체가 유전자라는 설계도에 맞춰 주기적으로 문을 갈아 끼우고 벽지를 바르며, 창틀을 바꾸면서 끊임 없이 개보수를 하는 건물이라 한다면 음식은 이 개보수에 반드시 필요한 인테리어 자재다.
이 개보수의 주기는 조직마다 다르다. 피부는 3주 간격, 장의 안쪽 상피세포는 4일마다, 혈액은 6개월, 간은 2년, 뼈는 좀 느려서 7~10년을 주기로 새로 교체 된다. 물론 한 부위 세포들이 한꺼번에 죽고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갑각류 처럼 주기에 따라 허물을 벗거나 하지는 않는다. 비록 매일 매일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개보수를 해 티가 나지않더라도 어느 순간은 전체가 새 재료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신체에서 교체주기가 가장 긴 뼈를 기준으로 보면 7년이 바로 그때다. 7년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세포들이 현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7년전의 나는 지금과 아주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7년의 마법
몸을 건물, 그리고 음식을 내부 자재에 비유했다. 좋은 자재로 리모델링 한 집은 계속 깨끗하고 튼튼하며 사람들이 살고 싶어한다. 그럼 건물이 낡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원래 건물 구조와 위치가 열악했다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좋은 내부자재로 유지 보수를 하지 않았다는걸 부인할 수 없다. 건물이 원래 별로라고 포기하는건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은 필요없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하게 우리는 자꾸 이런 잘난 유전자와 스스로를 비교한다. 내가 아는 누구는 평생 담배 피웠는데 80까지 폐암 안걸리고 살았다는 둥, 누구는 매일 정크푸드로 폭식을 하는데 조각같은 몸매를 유지하는데.. 이런식이다. 마치 저 건물은 원래부터 비싼 땅, 좋은 입지에 멋진 디자인으로 지어졌다며 부러워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난 이렇게 대꾸한다. "그 분은 담배 안피우셨으면 100세도 넘기셨을텐데.. 또 누구씨는 정크푸드 없으면 몸매도 건강도 더 좋아졌을텐데" 하고 말이다. 남이 담배를 피우고 정크푸드를 먹고 멀쩡한게 나와 무슨상관인가. 중요한건 내 몸이 담배나 정크푸드와 접촉을 줄일때 훨씬 건강하고 활력을 가질수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유전은 분명 매우 중요하고 인간이 날때 부터 불평등하다는 것은 받아 들여야 한다. 날 때부터 건강하고 이상적인 신체조건을 타고난걸 인력으로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입에 아무 수저도 물지 않고 태어난 인간에게도 가장 큰 아군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간이다.
Time is our side.
매일의 먹거리를 비가공 채식(whole food plant based)으로 바꾼지 5년 지났고 앞서 말한 7년 법칙에 가까워지고 있다. 주위에서는 채식의 우월성을 잘 모르겠다며 관성화된 식습관을 들이 밀며 챌린지 했지만 난 조급하지 않았다. 내가 능가해야할 대상은 과거의 '나'이며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내편이기 때문이었다.
매일 느낀다. 세수를 하면서 화장실을 가면서 머리를 빗으면서 옷을 입으면서 난 7년전의 나와 다름을 말이다. 지금의 몸은 그간 내가 선택한 음식을 바탕으로 차곡차곡 쌓은 결과물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동시에 더욱 입에 아무거나 함부로 넣으면 않되는구나 느낀다. 함부로 집어넣은 음식이 결국 오래지 않아 내 모습으로 나타날테니 말이다.
매년 건강검진 결과를 상담하는 동료들, 만날때마다 피부트러블을 호소하는 지인. 이들에게 항상 난 먹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고 그들은 늘 그렇듯 의료인의 흔한 멘트라고 흘려 들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이들은 나에게 스스로 선택한 해결책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