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센터장 일기 #11
내 사춘기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따뜻한 편지를 써주시던 감성적인 분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필요해 아버지를 설득해야 할 때면, 아버지는 유독 '명확한 근거'를 물어보셨다.
"이유가 구체적으로 뭐니? 그걸 통해 얻는 게 어떤 거야?"
당시 나는 그 논리적인 벽이 너무 답답해서 "지금 여기가 회사예요?"라고 대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40대가 되고, 10년 넘는 직장 생활을 거치고 있는 지금, 나는 소름 돋게도 그때의 아버지와 닮아 있다.
회사에서는 효율화, 최적화가 필수요소다.
모든 나의 업무에는 명확한 KPI(핵심성과지표)가 뒤따른다. "왜 이것이 필요한가?"와 "명확한 근거가 있는가?"는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본 마인드 셋이다. 10년 넘는 시간 이 패턴에 익숙해지다보니, 나도 어느새 세상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직업적 관성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불쑥 튀어나온다.
사실 나는 문과생에 MBTI 중 'F(감정형)' 성향이 90% 이상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내와 어떤 의사결정이 필요할때면 나도 모르게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아내의 고민에 "그래서 해결책이 뭔데?" 혹은 "그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야?"라고 묻는 순간, 대화는 급격히 차가워진다.
결국 효율을 따지던 나는 아내에게 혼나며 뒤늦게 깨닫는다.
아내가 내게 바란 것은 최적화된 솔루션이 아니라, 그저 지지하고 믿어주는 따스한 동반자였을 것이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내가 가진 모든 업무적 역량은 무의미해 진다. 회사에서는 센터장으로 수십명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고 분석하지만, 집에서는 아들의 숙제 짜증 하나 조차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육아는 효율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 그 자체다.
하지만 어릴적 아버지에게 답답해했던 나의 마음 처럼, 가족에게는 회사의 마인드와 효율성의 잣대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한 생명을 키우는 일은 '효율'이 아니라 '지구력'의 문제다.
표현이 서툰 아이가 명확한 근거를 가져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아이에게 "왜 그랬니? 이유가 뭐야?"라며 예전 아버지가 내게 세웠던 그 논리 잣대를 똑같이 들이대곤 한다.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이제는 내 몸에 밴 '직업적 관성'을 어렵지만 계속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한다.
아이의 관점에서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는 비효율적인 기다림.
어쩌면 아빠의 진짜 역량은 1분 1초를 아끼는 기민함이 아니라, 아이의 서툰 발걸음을 위해 기꺼이 한 시간을 낭비해줄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여전히 회사와 집 사이의 변신 모드는 버벅거리고 어렵지만…
화려한 수식어보다 담백한 진심을,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마음을 기록합니다. 오늘도 어제보다 한 뼘 더 단단해지는 삶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