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센터장 일기 #9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가장이 되어보니 돈은 가족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참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남들 하는 대로 스펙을 쌓고 대기업만 바라보며 달려왔던 나의 젊음이 가끔은 참 아쉽다.
사실 학창시절, 난 주변에서 내가 하고싶은게 너무 명확해서 부럽단 얘기를 되려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건 단편적인 것들이였을 뿐, 정작 커리어와 진로에 있어서 나는 회사원의 의미와 무게를 전혀 몰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직장인이 되었던 20대 후반의 나는, 당시 열정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질 줄 알았다. 열심히만 하면 성취할 수 있었던 여러 결과물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한 채로, 사회에 발을 내딛었었다.
하지만 30대 초반 결혼을 하고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내가 이 직업에 모든 걸 쏟아부어도 서울에 집 한 채 사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좌절감을 잊지 못한다.
오랜 기간 자취하며 정들었던 강남과 논현이, 부동산과 돈의 생리를 알고 나니 전혀 달리 보였다.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성벽처럼 느껴졌을 때의 그 싫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직장인은 아무리 미친 듯이 일해서 높은 인사고과를 받아도 뻔한 임금 상승률이라는 한계에 갇힌다. 나는 솔직히 회사 사내 우수사원 선정, 개선활동 장려상 수상은 물론 인사고과 S, A 등급을 여러번 받아봤었다. 하지만 그리 열심히 해서 고과를 아무리 잘 받아도, B 등급 받은 동기 대비 월 10-20만원도 더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구나 업무적 성과가 조직의 정치나 인간관계에 가려질 때 느껴지는 허무함은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 커리어를 위해 미국 인증 전문 자격증을 따려고 결제까지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문득 멈추게 되더라. 이걸 딴다고 해서 내 승진과 회사 생활이 드라마틱하게 바뀔까? 결국 다른 이해관계들로 돌아갈 뿐이라는 사실에 지독한 '현타'가 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게.
지금 내가 쓰는 이 공간의 글들도 결국 그 고민의 기록이다.
설령 내가 찾는 이 길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괜찮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 아빠가 세상에서 자리 잡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는지 이 기록으로나마 전해지길 바란다.
6월에 태어날 동생과 오빠가 될 채돌이가, 아빠의 이 서툰 진심을 언젠가 한 번쯤은 돌아봐 주길 희망하며 오늘도 글을 남긴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담백한 진심을,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마음을 기록합니다. 오늘도 어제보다 한 뼘 더 단단해지는 삶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