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날

우리 반 아이들과의 마지막 날

by 흰머리소녀

교사들은 3월 새 학기에 맞춰 이동한다.

2월 말, 전체 등교일을 정해

떠나는 선생님의 이임식을 했다.

언제부턴가

떠나는 선생님만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고

아이들은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이임 인사 없이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면

유난히 후유증을 많이 겪는 나는

인사도 없이 끝나는 이별이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이임 인사를 하는 날이면

유난히 분주한 사람들이 있다.

그냥은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한때라도 마음을 나눈 사람들의 책상에

작은 선물이라도 살짝 놓아두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우리는 슬쩍슬쩍 마주친다.


그럴 때면 웃게 된다.

당신도 나 같은 사람이군요,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의 첫 헤어짐은

교생실습을 마칠 때였다.


아직 대학생이었으니

마흔다섯 명 아이들 모두에게

선물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아

책갈피와 연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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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지에 시의 한 구절을 적어

코팅한 책갈피였다.


그때 우리 반 아이들은 내게

아주 커다란 하얀 곰인형을 선물해 주었다.


떠나는 교생선생님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예쁘고 고마웠다.






1992년,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을 담임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화가 난 나는

사흘쯤 조회와 종례에 들어가지 않고

차갑게 대했다.


놀란 아이들은

내 화를 풀어줄 방법을 찾느라

여러 차례 회의를 했던 것 같다.


그 결과 내게 전해진 것은

카세트테이프 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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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우리 반 아이들이 함께 부른 노래들,

한 명씩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그 테이프를 들으며

울다 웃다 하는 동안

화는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그때, 결정했다.


아,

우리 반 아이들과 헤어질 때

이 선물을 해야겠구나.




음악 시간이나 학교 행사 때

틈틈이 우리 반 노래와 목소리를 녹음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서로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담았다.


너무 일찍 준비하면

감정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헤어지기 전날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우리 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녹음했다.

그날의 교실은

어김없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반 아이들 수만큼 테이프를 복사했다.


한 시간 분량의 테이프를

마흔 개쯤 복사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되곤 했다.







우리가 만난 첫날부터 함께 쓰기 시작한 일기,

그렇게 일 년 동안 쓴 일기와

많은 글들을 모아

학급문집을 만들었다.

겨울 방학 한 달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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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아이들 사진과 시구를 담은 책갈피,

우리 반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은 테이프,

우리 반의 기록과 글씨를 담은 학급문집,

그리고

장미 한 송이.


이것이 마지막 날

아이들 책상 위에 놓아둔

헤어짐의 선물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은 이른 아침

학교에 나가

아이들 책상에 저 선물을 놓아두고

칠판에는 시 한 편을 적어두었다.


이해인 수녀님의 ’ 아름다운 슬픔‘


「이별보다 더 아름다운 슬픔은 없다.

수없이 망설이며 사랑하는 것들을 떠나보낸 뒤,

하얀 라일락 향기로 피어오른 나의 눈물,

이별은 야속하게 손을 내밀지만

서늘한 눈의 자비를 베풀며 떠나려 한다.

철없는 나를 거울 앞에 세워 새 옷을 입혀놓고 돌아서는 친구.

내가 비로소 유순한 영혼으로 당신께 돌아와 문을 여는 자유.

사무치던 서러움은 새가 되리라.

훨훨 날으고 싶은 기도와 뉘우침의 산실(産室),

이별보다 더 후련한 비애는 없다.」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

최선을 다해 헤어지고 나면

완전 연소한 느낌이 든다.


슬펐지만,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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