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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Feb 13. 2023

페루(peru), 어서 와! 페루는 처음이지?

주재원 아내가 되다.

tvN '꽃보다 청춘' 페루편을 다시 보았다. 신구 할아버지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행이란 새롭게 보고 느끼고 내 생활을 풍부하게 해 주고,
우리는 그런 경험을 일찍 못했어.
가능하면 젊었을 때 이런 경험을 쌓는 것이 크게 도움이 돼  


 5살, 4살 꼬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4년이 넘는 긴 페루 여행을 끝냈다. 지금 나와 가족은 한국에 2년째 머물러 있다. 언제 또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인생이기에 '머물다'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매일 바쁜 한국의 일상 속에 나의 페루가 더 흐려지기 전에 써야겠다. 어서 흔적을 남겨야겠다.  


 요즘엔 '페루', '페루 여행' 등 검색만 하면 영상과 글이 넘쳐난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기안 84가 페루와 볼리비아로 배낭여행을 갔다. 덕분에 페루가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갈 당시만 해도 페루에 관한 프로그램은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았다. 2014년도에 방영된  '꽃보다 청춘',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페루로  떠나기 전, 그리고 페루에 살면서 참 재미있게 봤다.

 책은 손미나의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100배 즐기기 핵심 중남미'를 골라 읽었다. 여행책자는 남미 여러 나라가 함께 소개되는데 그중 페루가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적었다. 그러다 책 2권을 더 찾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태양의 나라 페루, 신비하고 미스터리 한 나라의 설렘과 감동보다는 '네가 앞으로 살 나라는 한 번 가면 돌아오기 어려운 머나먼 오지란다'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 한 나라, 죽기 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일 수도 있지만 나처럼 자본주의, 현대문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페루는 꼬마 둘 데리고 살기에 너무나 힘든 나라의 이미지로 먼저 다가왔다. 나영석 PD가 유희열에게 이번 여행지는 '페루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자막에 "뤼얼리? 마추픽추가 있는 그곳?"이라고 나온다. 유희열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고 입은 떡 하고 벌어졌다.

내 반응이 정확히 딱 그와 같았다.


  "페루??페~에~루? 거기가 어디야? 뭐가 유명하지?



 남편이 '페루로 갈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다. 이름만 들어도 우리나라와 엄청 먼 나라인 것 같다. 남미 어디쯤에 있는 나라. '브라질 옆인가?' 유럽의 어느 곳도 아니고, 가까운 동남아의 어느 곳도 아닌. 비행기 직항도 없는 나라. 내가 알만한 것을 빨리 말해보라고 했다. 남편은 많이 들어봤을 만한 것은 마추픽추와 잉카라고 말해줬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험 때 5지 선다형 문항 중 한번 정도 잉카문명에 동그라미 친 적은 있던 것 같다고 긴 한숨과 멋쩍은 웃음으로 껄껄댔다. 세계사 속에 나오는 낯선 장소와 읽기도 어려운 이름들이 재미도 없었고 지루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남미에 관해 말 그대로 일자무식이었다. 유명하다는 마추픽추를 검색해 사진으로 봤다.


마추픽추 - 출처:pixabay

 

"우와! 멋있다. 근데 말이야. 설마.... 여기 가서 사는 건 아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남편이 마추픽추로 가서 살자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우리는 수도 리마에 살 거야. 마추픽추는 여행으로 한 두 번 정도 가보겠지!" 다행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대자연이 펼쳐진 자연 친화적인 곳보다는 커다란 빌딩도 좀 있고 멋진 조명아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한 도시적인 느낌이 나는 곳이 좋단 말이다.

  1년 뒤쯤 언니가 조카들을 데리고 페루여행을 왔고 쿠스코- 마추픽추 여행은 그때 함께 했다. 당시 걱정 많던 어른 셋은 11세 한 명, 6세 두 명, 5세 한 명을 데리고 두렵고 힘겨웠지만 마추픽추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 여행 이야기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도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큰 경험이 되었다.    


남미면 위험하지 않아?

 

가족들과 친구들이 걱정을 해준다. 남미는 치안이 좋지 않아 강도와 소매치기가 많다고. 사람들이 총을 들고 다닌다는데 큰일 나는 거 아니냐며. 마약, 범죄, 쿠데타, 시위가 빈번할 텐데 괜찮겠냐며.


  "그렇게 위험해? 밖에도 못 나갈 정도야?"  

 남편은 브라질, 멕시코,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보다 괜찮은 편이라고 말해줬다. 우리는 리마에서 안전하다는 곳에서 살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부모님들은 떠나기 전 가지 말라는 곳은 절대 가지 말고,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수차례 말씀하셨다. 나는 과연 페루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위험천만하지만 그곳이 진짜 페루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      


  쿠바 배경의 영화 '더티댄싱:하바나 나이트'. 뜨거운 해변에서 주인공 남녀가 자유롭게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나온다. 내 인생 영화 중 하나다. 영화 속 음악과 춤이 너무 좋아서, 수십번 반복해 보고  들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음악 하나에 몸을 맡기며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짓는 그들이 궁금해서. 그 영화를 본 뒤로 쿠바는 너무나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그럼 우리 쿠바여행도 갈 수도 있겠다. 라틴 댄스도 배우고! 탱고, 살사, 삼바! 이건 정말 신난다!"

"애기들 데리고 쿠바에? 거기야 말로 호텔 말고는 아무 곳도 돌아다닐 수 없을 텐데? 그리고 페루는 마리네라"

"마리... 마리 뭐?"


 

라틴음악과 라틴댄스는 나의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해주네.


그럼 나 이제 스페인어 해야 돼?


 남편의 주재 발령은 떠나기 두 달 전에 급하게 났다. 그 때문에 남편은 스페인어를 준비할 틈 없이 우리보다 먼저 떠났다. 언어가 시급했다. 마트, 병원, 식당에 가고 아이들 학교에 가려면 말은 할 줄 알아야 했다. 시원스쿨 온라인 강의를 들을까 고민했지만 역시 수업은 가서 듣는 맛이 제맛이다. 강남역에 있는 펠리스 어학원에 등록했다. 육아로 지친 삶에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기대와 설렘이 좋았다. 스페인어는 평생 나와 상관없는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이렇게 한 치 앞을 모른다.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언어를 배우게 될 줄이야. 출국 전까지 4개월 정도 발음부터 기초과정을 배웠다. a(아), b(베), c(세), d(데), 1(우노),2 (도스), 3(뜨레스)..부터 그때 배운 스페인어가 페루 정착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언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스페인어도 참 재밌게 배웠다.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한국어까지 4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여자가 되었다.   




주재원의 아내란..?


 남편이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하니 다들 부러워하는 눈빛이다. 집안일해 주는 사람을 쓸 수도 있고, 골프와 테니스를 배우고, 사교모임 나가서 차 마시고 실컷 놀다 올 거라고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국제학교 다니며 영어는 저절로 배우는 거 아니냐며. 스페인어까지 3개 국어를 하는 거라며. '개꿀' '부럽다' '좋겠다' '한번 놀러 가겠다' '사진 찍어 올려라'등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주변에서 그렇다니 나는 정말 주재원 아내는 꿀인 줄만 알고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비행기를 탔다.   

 남자들 세계에서는 "다시 태어나면 주재원 마누라로 태어나고 싶다"라는 말도 있다. 주재원 남편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어디 한 군데는 아파서 돌아온다는데... 와이프는 갈 땐 가기 싫다고 울고, 돌아올 땐 돌아가기 싫어 운다고 한다고 한다. 그렇게 좋다는 주재원 아내가 됐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처럼 24시간 내내, 내 옆에 있어야 할 남자가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 놓고 새벽같이 현지 회사로 출근을 한다. 이역만리 이 남자 따라 남미까지 왔는데 남편은 도통 집에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생전 처음 살아보는 이 나라에서 미취학 아동 둘과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크고 좋은 집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첫날밤.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쪼그려 앉아 "uno, dos, tres.."를 외치며 숫자가 '7'에서 멈추고 문이 열려 아빠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오매불망 아빠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첫 일주일이 지나고 알았다.

 

주재원의 아내는 어떤 모습인 건지.  




 9박 10일 여행이 아니었다. 리마 한달살이도 아니었다. 35살 새댁이 남편 따라 연년생 아들 둘을 데리고 지구 반대편 남미 페루로 4년 아니면 더 길어질 5년을 살기 위해 길고 긴 여행을 시작했다. 20대 혼자 훌훌 떠나던 배낭여행이 아니었기에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내조 잘하라고 보내준 주재원 아내의 신분이었고, 어린아이 둘의 동양인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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