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앙카 Jan 09. 2023

페루에서 친구가 왔습니다

와줘서 고마워요.

페루 라이프에 관한 글을 써 보겠다고

브런치에게 활동 계획을 목차 1부터 10까지, 아니  더 넘치게도 쓸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브런치가 '그래, 한번 들려줘봐' 하고 내 손을 잡아주었는데 어쩐지 나는 페루에 관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쓰기가 어려울까. 거기서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는데.  할 말이 끝도 없을 줄 알았는데. 나만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서랍장은 쓰다 멈춘 글 위로 먼지만 차곡차곡 쌓여 갔다.




"해미. 우리 한국 왔어요. 만나요"


페루에서 친구가 방학을 이용해 한국여행을 왔다. 페루에서 헤어질 때는 영영 못 볼 것처럼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게 된다니 꿈만 같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부터 너무 설레어 긴장이 될 정도였다.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곳. 그런데 너무 붐비지 않았으면 좋겠다. 식사는 시끄럽지 않고 특별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낯설면  모두가 헤매게 되니  자신 있게 데리고 다닐만한 곳. 엄마들의 수다도 편했으면 좋겠다. 며칠 전부터 카페에 앉아 수많은 장소를 검색했다. 서울 어디도 탈락. 박물관 어디도 탈락. 공연장도 탈락. 어느 호텔 호캉스도 탈락.

결국 명동 숙소에서 동탄까지만 와 달라고 말했다.

제발 모두가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기다린다. 버스에서 내리기 두 정거장 전이란다. 왜 이렇게 떨리지. 아이들은 얼마나 반가울까.

사실 아이들 보다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페루에서 만난 인연이라 내게 너무 특별하다. 그 인연을 다시 만나면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 날 것만 같다. 굳이 추억을 들춰내지 않아도 보고만 있어도 충분히 설렌다.

사실 그녀의 많은 친구들 중 나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가까워졌을 텐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와 아이들이 차 미러에 보인다.

 문을 열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내 눈에 가까워진 아이들과 그녀를 버럭 안았다. 믿기지 않는다. 페루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너무 보고 싶었던 그녀와 아이들.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얼마만이에요.  오느라 힘들었죠."


2년 만에 만난 아이들은 까만 눈만 보이는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확인한다. 오랜만에 봤으니 너희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이들은 기억 속 모습보다 훌쩍 큰 상대를 보고 어색해한다.


동탄 디스커버리 네이처스케이프가 나의 계획이었다.

함께 모험을 떠나고 미션을 수행하며 포인트를 획득할 것.

아이들은 포인트 얻는 재미가 있으니 마구 뛰어다닐 것이다.

아이들만 놀게 하고 엄마들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함께하는 즐거움이 없으니 어른들도 함께 모험을 떠나본다.

아이들이 미션을 끝내고 애니멀 배지를 얻고 언젠가 그 배지를 다시 볼 때는 오늘의 만남을 떠올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함께 떠나는 모험이 처음 잠깐의 어색함을 깨 주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2년 전 함께 뛰놀던 모습으로 돌아갔다.

까르르 웃음소리.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이리저리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근심걱정 없던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디스커버리 네이처스케이프가 깔아준 멍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꽉꽉 채워 한국에서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본다. 장소 선택이 탁월했다며 그녀는 한국은 좋은 곳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 해준다. 동탄은 모든 것이 새것 같다고 놀란다.


캠핑 분위기가 나는 메리그라운드에서 식사를 하며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별거 아닌 말로 신나 하고 재밌어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고 자라도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고 웃는다. 이건 세계 공통인 것 같다.

그녀는 아직 페루에 살고 있는 친구들 소식과 그동안 어떤 것이 변했는지 말해준다. 대통령 탄핵, 시위, 루스벨트 학교 이야기,  새로 온 사람들, 내가 살 던 동네에 새로 생긴 한식당 그리고 아이친구들 엄마 이야기까지.


한국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맛도 보라고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녀와 난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축구공을 들고 놀이터로 나갔다. 아이의 친구는 학교 콘돌 축구팀에 들어갔다고 한다.  남미 축구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신이 났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야속하다.

부산으로 갈 거라는 친구의 srt시간이 다가왔다.

기차를 놓치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말은 진심이었다.

언제 또 그녀와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배웅하는 길은 그녀의 한국 여정이 편안하길.

우리의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랐다.

아이들은 다시 찾아온 헤어짐이 싫어 엄마 품에 고개를 숙인다.



2016년 어느 날 남편이 페루에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많고 많은 나라 중에 들어본 적도 없는 페루?

남미 어디에 붙어있는 곳인지 지도를 찾아봤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도 아닌 페루.

페루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나라인지 페루에 관한 책은 다 주문해 읽어봤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페루편을 여러 번 반복해 봤다. 페루에 관한 방송은 보고 또 봤다.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로 살아가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연을 맺는다.

나에게 페루가 그러했다.

친구가 한국에 와서 나를 찾아준 덕분에

오늘 페루가 많이 그립다.


Hola! perú. Como esta? Te extraño mucho.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치나(china)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