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사람입니다.
“세일라, 세일라! 제 전화번호가 바뀌었어요. 지금 저장해 놓을 수 있어요?”
세일라는 식탁을 닦던 행주를 내려놓고 뒷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힐끔 그녀의 휴대폰을 쳐다봤다.
‘치. 니. 따. chinita(중국인여자)’ 내 눈을 의심했다.
“치니따?”
“처음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당신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그때는 다시 물어보기가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가 기억할 수 있게 저장했던 거예요.” 입가에 부끄러운 미소가 번졌다.
“치니따는 중국 여자라는 뜻이잖아요. 내가 한국 사람인 걸 당신은 알고 있어요”
얼굴은 화끈거리고 바르르 떨리려는 목소리를 이내 참아냈다.
“동양사람은 그냥 다 치노, 치나(중국인 남자/중국인 여자)라고 해요. 작고 귀여울 때는 애칭으로 치니또, 치니따(chinito/chinita)라고 말해요”
“다시 저장해주세요. 그리고 한국사람은 중국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정색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네, 그럴게요”
그날 나는 지나가다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삑삑’
‘삑삑’
마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자동차 키의 잠금 버튼을 여러 번 누른다. 손가방은 크로스로 단단히 여미고, 마트 입구로 종종 걸어갔다.
“Mama, mira! china china (엄마! 저기 봐! 치나야 치나!)”
“Si, ella es chinita (응 그래, 치나네)”
나를 향한 손가락과 치나라는 소리에 검은색 큰 눈동자를 가진 까무잡잡한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애써 고개를 돌려 마트 입구에 세워진 카트를 거칠게 뺐다. 5살도 안돼 보이는 쬐끄만한 꼬마의 한마디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나는 치나가 아니야!
머리 검은 동양인이면 다 치나냐?!
페루에 살고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치노, 치나”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대부분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학교, 클럽, 아파트에서 치나라고 할 때면
꼭 “나는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바로잡고 정정해 주었다.
동양인을 비하하는 느낌을 주는 말이나 행동이 그들에게는 별거 아닌 표현방식이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조롱하고 깔보는 인종차별적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못 알아듣고 계속 치노라고 하는 어린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클럽 놀이터에서 논다던 아들이 씩씩 거리며 달려왔다.
“엄마, 좀 전에 어떤 애가 나보고 하뽀네스(일본사람)냐고 그러는 거야.
진짜 치노라고 하는 것보다 더 기분 나빠”
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한국사람이라고 말해줬어?”
“어, 그럼. 말해줬지!”
“잘했어!”
만화로 된 한국사를 읽으며 역사 속 일본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아들은 자기를 일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니 나에게 치나(china)가 거북한 것도 또 하나의 편협한 생각은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