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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Nov 28. 2022

지구 반대편 김장 이야기

비앙카, 너의 김치가 그립다.

 “거의 다 도착했어요. 1층으로 내려와 주세요”

한국 야채 아저씨는 트럭에서 배추가 가득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 두 개와 상자를 끌어내리셨다.


주재하는 동안 김치는 사 먹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1년 동안 열심히 사 먹었다. 아씨마트 김치, 서울마트 김치, 한국 미용실 아줌마 김치, 한국 야채 아저씨 김치, 오복떡집 김치. 카드 돌려막기도 아니고 김치 돌려막기로 끊임없이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때가 되었나 보다.  외국에 오래 살면 결국 하게 되어 있다는 그 김장.

1년 넘게 사 먹었으면 오래 잘 먹었다. 나도 선배 주재원 엄마들처럼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밭에서 막 뽑은 배추들과 흙 묻은 야채들을 보자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이렇게 많이 시켰나 싶을 정도로 배추가 많았다.

쌓여있는 배추를 바라만 봤다.

‘포기할까? 다음에 해?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보지만 이미 꽉 들어찬 냉장고 속 그 어느 자리에도 저 많은 배추와 야채들을 구겨 넣을 공간은 없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걱정스러웠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오늘을 위해 빼곡히 공부해 놓은 레시피 노트를 펼치고 야채부터 씻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야채를 씻어본 적은 처음이다. 한참을 배추 겉잎을 떼어내고 한 장 한 장 씻고 또 씻었다.

한숨도 나고 그냥 사 먹을 걸 후회가 들었는데,

‘어머, 어머. 달팽이!’ 정말 신기했다. 아이들이 보면 너무 좋아할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져 피식 웃었다.

페루 배추에는 달팽이도 나오네.

‘넌 이제 우리 집 식구다.’

그 많던 야채를 다 씻고 다듬고 썰었다. 레시피가 시키는 대로 소금물에 배추를 절이고 12시간을 기다리면 되었다. 벌써 반은 해 놓은 것이다.




 절여놓은 배추를 보며 대학생 때 미국에서 홈스테이를 할 때가 생각났다. 어느 날 아시안마트에서 김치를 사서 먹으려고 뚜껑을 여는데 하우스 맘은 인상을 찌푸리며 창문을 열였다.

“김치를 먹을 때는 창문을 모두 열어야 돼. 그리고 냉장고에 김치를 절대 넣지 마 ”

하우스 맘은 김치 냄새가 너무 싫다고 했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다 났다. 그 뒤로 다시는 김치를 사지 않았다. 김치 앞에 작아지는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그 기억 때문에 혹시나 김장하면서 냄새가 집을 통과해 나가지 않을까?

아파트에서 이게 무슨 냄새냐고 인터폰이 오지 않을까?

페루 사람들도 김치 냄새가 싫다고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김장을 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타국 땅에서 나고 자란 한국 야채들과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고요하게 탄생한 나의 첫 김치.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 노동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보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지구 정반대 편, 반 바퀴를 돌아 한국사람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와 우리 가족에게 김치가 그러했다.  


  그 뒤로 계속 몇 번의 김치를 더 만들었고 주변 지인들에게 꼭 나누어 주었다.  페루 엄마들과 다른 외국인 엄마들에게 나의 김치는 인기가 많았다. 예전 내가 느꼈던 냄새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이 안에는 없었다. 오히려 김치 만드는 레시피를 달라며 진지하게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4년 넘은 주재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고, 가끔 그녀들은 “비앙카, 너의 김치가 그립다”라고 연락해준다. 나와 김치를 그리워해 주는 것이 참 좋다. 

그곳에서 김장을 하지 않았다면 들어 보지 못할 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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