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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anca Feb 02. 2021

하늘을 나는 비빔밥

비행 기내식을 만드는 chef


어느새 나는 korean chef 가 되어 있었다.

벌써 9년 전 - 우연한 기회가 내게 찾아왔고 그 기회는 내 상황의 필요성과 맞물려 자연스레 내 자리를 만들었다.  별생각 없이 약간의 호기심과 함께 로마 - 피우미치노(Fiumicino)  국제공항의 캐터링에서 나는 비행 기내식의 한식을 담당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행히 대학 때 전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물론 졸업 후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음식 하는 데는 자신감도 좀 있던 터라 겁 없이 뛰어든 게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식을 하는 게 구체적으로 감이 오지 않고 더 막막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인과  결혼 후 이탈리아 음식 만드는 것을 취미 삼아 독학으로 연구해 보고 또 시어머니와도 함께 살면서 이수 해주시는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게 되어 한식을 조리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고 더 어색할 정도인 상황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 캐터링에는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이탈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선의 항공회사의 기내식이 마련되고 있었으며 당연히 나는 회사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몇 명의 중국인, 태국인, 인도인, 일본인 등 아시아계의 조리사들이 있었고 이런 외국인들을 구분하는 취지에서  심지어 나를 부를 때도 장난 삼아 ‘코리아’라고 부르는 동료들도 있었다.


내가 ‘코리아’라고!!   600여 명이 넘는 이탈리아인들이 나를 볼 때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보인다면 얼마나 내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겠는가!   사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생각지 않고 살았던 “나 - 한국 사람이지!”의 정체성이 때때로 나를 툭툭 깨웠다.




한식은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는 동양계 음식 모두가 그렇듯이 모든 재료가 잘게 잘려서 조리된다는 것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양식에 비해 크게 다른 점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양식에 비해 재료의 컷팅 과정이 어려운 편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준비과정이 있다.  완성된 결과물은 별거 아닌 단지 한 그릇의 음식일 뿐인데도 말이다..  


비행 기내식으로서의 한식은 평상시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한식과는 다르게 당연히 약간의 제약이 있다.  (참고로 나는 한국 항공사들의 소속 셰프는 아니기 때문에 현지 상황에 맞추어 한식 메뉴를 제안할 수는 있지만 한국 비행사들의 기내식 메뉴를 직접 결정하는 권한은 없다.)    


예를 들어 국물이 많은 찌개나 국 종류는 때때로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먹기에 적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끼에 먹는 메뉴는 보통 2-3가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것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것이어야 적당할 것이다.   또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재료들은 - 물론 승객 본인이 자신의 체질을 알겠지만 - 조심할 필요도 있다.


한식의 많은 대표적인 음식 중 대한민국의 대표음식이 아마도 비빔밥이라는 사실에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비빔밥은 우리의 주식인 밥과 각종 야채, 고기를 한꺼번에 먹는 음식이니 또한 일석다조의 일품 식단이기도 하다.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도 있을까.?!


비행 기내식 비즈니스석에 제공되는 비빔밥



이제 비빔밥은 일품 식단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갖가지의 야채와 고기가 함께 어우러져 영양소가 고르게 갖추어져 있고 모양새도 컬러풀해서 세계인이 좋아하는  건강 음식이 되었다.  내가 일하는 캐터링의 동료들도(이탈리아인들) 비빔밥을 아주 좋아한다.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는 간장으로 양념해 주었더니 흡족해했다.


따라서 비빔밥은 기내식에도 변동이 없는 고정 메뉴이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메뉴이고 앞으로도 오래갈 수 있는 장수 메뉴라는 생각을 한다.  9년간 국제비행의 케터링에서 일하면서 가끔 듣는 동료들의 푸념 같은 소리가 왜 비빔밥은 없어지지 않고 항상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   나의 대답은 “당연히 맛이 있으니까 그렇지!!”이다.


일반적으로 기내식의 메뉴는 짧게는 한 달에서 세 달 정도에 걸쳐 바뀐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계절과 현지 상황을 고려해서 전채 요리에서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바뀐다.  (자주 비행하지 않는 승객들은 잘 모르는 게 당연할 테지만...)   따라서 나의 동료들은 항상 메뉴에서 누락되지 않는 비빔밥이 신기하게 생각되나 보다.   


음식을 얼마나 비주얼이 그럴싸하게 플레이팅 하는가는 음식의 맛과 품위를 몇 배이상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시각적으로 먼저 음식을 스캔하며 보면서 먹기 때문이다.   기내식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기내에서 식사가 제공되기까지 운반과 비행기 이륙으로 아무리 세팅이 잘된 음식이라도 흐트러질 확률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비빔밥은 다양한 야채의 색상이 조화롭게 보이게 배치하고 야채를 담을 때도 눌리지 않게 최대한 입체적으로 자연스럽게  담긴 모습이 먹는 이의 미각을 더 자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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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여행길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정다운 비빔밥 한 그릇이 위로가 되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는 입맛 돋우는 한식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친근해지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비빔밥을 준비했다.  하지만 늘 아쉽다고 느끼는 것은 기내식의 특성상 나는 고객이 즐겁게 음식을 먹고 즐기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또 있을법한 칭찬의 반응도 알 수가 없는 점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만족해하는 상대방을 볼 때 전가되는 기쁨, 충족감 등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기도 한데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행 기내식은 칭찬보다는 조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이 지적되면 즉각 클레임으로 돌아온다.   특히 기내식은 음식점에서 주문해서 먹는 즉석요리가 아니고 비행 출발 시간에 맞추어 미리 준비한 음식들이기 때문에 최상의 신선도를 위해서 지켜야 하는 까다로운 규칙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익힌 음식들을 상하지 않도록 승객이 먹기 직전까지 신선하도록 유지해야 하는 게 적절한 온도조절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한 그릇의 음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위생적인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국제선 여객기에 제공하는 캐터링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비행기 안에서 먹는 한 그릇의 음식이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건에 맞추어 만들어진다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거의 10개월간 한국과 이탈리아의 비행은 없는 상태이고 국제선만 담당하는 내가 속해 있는 캐터링 회사도 당연히 아주 극소수의 항공회사만이 운영되고 있는 상태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작년 3월 중순까지 국제선의 비행이 있었고 나를 비롯한 캐터링의 직원들은  그 이후 휴직 상태에 있다.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 휴식이 주는 시간의 선물을 받고 몸도 정신도 안식을 취할 수 있어서 한편으론 고맙게도 생각되었다.   이제 해가 바뀌면서 안식의 시간이 막연히 길어짐과 함께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자욱이 깔린 안개처럼 침참해진 요즘이다..


날아가는 비행기 내에서 협소한 공간에 작은 개인 식탁을 어린아이처럼 가슴에 품고 먹는 비빔밥.

참기름의 고소한 향기가 비행기 안에 가득함이 한국을 향하고 있다는 보이지 않는 묵언의 암시처럼 생각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한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여행객들의 부푼 마음과 함께 하얀 구름 식탁에 차려질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그 누구보다 더 기다려 본다.










표지 : photo by Blake Guid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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