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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anca Aug 08. 2020

제3막이  시작하기 전에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득 차 있다.  쏟아내야 할 것 같다.

머리를 웅웅 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리며 나를 두드린다.


소심하고 생각 많은 내가 또 나를 잡는다.   어떻게 시작해?

‘ 언젠가는 나도 글쓰기를 해야지 ‘ 하는 마음이 늘 있었지만 서랍에 고이 접어 둔 소망 리스트 중 하나일 뿐.


너도 반세기를 더 살고 있잖아?!

Oh, Mio dio!!!   Oh, My god!!!


벌써 어느새 난 오십을 훌쩍 넘어 버리고 있네.

그동안 뭘 하며 살았지?  내가 한 일이 뭐지?




3개의 상이한 직업을 가졌고, 국적이 다른 남자와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6년 넘게 한 지붕 아래에서 시어머니와도 부딪치며 살아 봤고.......  이렇게 저렇게 꾸준하고 성실한 시간은 흘러 지금까지 나를 몰고 왔다.

나의 선택으로 주변 상황이 많이 변했고 그 속에서 나는 상처 입고 넘어지고 참아야 했지만 또 회복되고 일어서고 인내할 수 있었다.


유학생 시절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  한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하면 떠났을 때의 그 상황 그 나이 때로만 한국을 알고 있어서 머릿속에는 그만큼의 잣대만 남는다고  -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photo by Karl Köhler on Unsplash



어느덧 20여 년이 넘게 로마에 살다 보니 나도 생활습성이 이들처럼 닮아져 있고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은 한국문화는 빛바랜 신문지의 활자처럼 새겨져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변화된 모습에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난 여전히 옛 신문의 어느 구석 쟁이에 속한 것 같은 느낌은 나의 착각일까?  

한국을 떠나온 지가 20년이 더 넘었으니 두 번이나 강산이 변했을 텐데 더군다나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한국문화를 따라가는 게 쉬운 것은 아닐 테지.....  


어느 때부터 누군가가 Di dove sei?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라고 질문하면,

나는 유머러스하게  Sono Coreana D.O.C.G (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 : 이탈리아 와인 등급에 사용하는 원산지의 품질을 보증한다는 문구)  -  나는 원산지를 보증한 한국인이에요 -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 말은 ‘나는 뼈 속까지 한국인이에요’라는 의미와 상통할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한 현재의 나의 대답은 ‘23년째 로마에 사는 한국인이에요’가 더 맞다는 생각을 해 본다.


 23년이라는 삶의 시간과 이탈리아 로마라는 공간의 축에 나를 세워보니 마치 오페라의 3막이 시작하기  커튼 뒤에 있는 배우 같은 느낌이다.



photo by Roberto Martinez on Unsplash



제1막은 대학 졸업 후 한국의 패션 스쿨에서의 디자인 강사로서 7년 반 동안을 지낸 것.

- 대학을 졸업하고 일찍부터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나름대로 소질이 있었고 패션에 관한 관심이 한창인 때여서 그저 꿈에 젖어 꿈을 좇아 지냈다.  그 여파로 로마까지 무대 의상을 공부하러 왔으니까.


제2막은 결혼 후의 일곱 가지 다양한 컬러로 그려진 드라마 같은 시간들

- 이 시간들은 꿈보다 현실에 충실하게 나를 맞추어 갔던 것 같다.  

 

이제 제3막이 시작하기 전의 intervallo (쉼)에 와 있다.

.

.

.


그리고 50대에 와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 어디까지 왔니? ‘


이제까지 채우려고만 했다면 지금부터는 비우는 작업을 해야겠지.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앞만 보고 달리넘치는 에너지를 혈기 부리는데 소모했다면 이제는 차분해져야겠지.

쓸데없는 교만함과 이기심부터 한 줌 먼지로 날려버리고

그동안 달려온 시간과 감정을 정리하며 제3막의 시작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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