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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anca Aug 06. 2020

재결합 후의 가족 여행

여행은 설렘이다.

더군다나 여행지가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면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감과 벌어질 일들에 대한 상상으로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벗어나 신선한 흥분에 휩싸여 버린다.  집과 현실을 잠시 떠나는 여행의 일반적 의미에 더해서 우리 가족에게 이번 여름의 가족 여행은 특별했다.


나와 남편은 6년 반의 결코 짧지 않은 별거기간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재결합에 뜻을 모았다.

우리 가족에게 획기적 사건인 재결합을 기념하는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기도 해서 여행지를 선정할 때부터 유난히 설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정말 이번 여행을 해도 될까?  하는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여름철의 바캉스가 하나의 명절을 지내는 문화와 같은 이탈리아에서도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계심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캉스를 주저한다는 소식을 접한 바도 있다.  


‘우리 떠날까?  이번에는 그만둘까?’  

다시 이틀 후 ‘그래도 얼마 만에 함께 하는 여름인데, 떠나자!’  ‘어디로?’

‘어디든지....... ‘  ‘그래도 여름에는 당연히 바다가 볼 만한 곳으로 가야지’  




사실상 마지막 가족여행은 9년 전이었다.  직장의 업무와 엄마의 병환으로 휴가를 사용해서 제대로 된 가족 여행은 못했다가 별거라는 생활로 남편과 나는 각자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번에 주어진 휴가는 이기적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시간으로 사용해도 떳떳하다고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의 며칠을 이탈리아 남쪽 칼라브리아로 떠나기로 했다.   칼라브리아주는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에서 장화의 앞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칼라브리아를 여행지로 삼은 목적은 첫째는 바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고 둘째는 남편(이탈리아인)이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 보고픈 오래된 바람 때문이었다.  또한 남편과 아들은 무엇보다 여름엔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햇볕을 쐬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광합성 못하는 죽은 나무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바다 마을을 휴양지로 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명한 일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내가 숙소를 잡은 곳은 Santa Maria di Ricadi (산타 마리아 리카디)해변이었다..

이 지역은 로마의 집에서 남쪽으로 6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서 먼 거리의 자동차 여행에 대비해 일단 마음부터 단단히 무장을 했다.  우리 가족은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하려고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섰다.  이탈리아의 여름은 건조하긴 하지만 낮시간의 태양은 그야말로 ‘작열한다’라는 표현에 한치의 틀림도 없다.

로마에서 나폴리를 거쳐 유명한 Salerno - Reggio Calabria (살레르노 - 렛조 칼라브리아)의 고속도로를 통과했다.  이 고속도로는 완공하는데 30여 년이 걸렸다고 들었는데 교통체증도 전혀 없었고 산을 통과하는 길들이라 공기도 참 신선했다.


처음 가 보는 칼라브리아주는 우리나라의 강원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산에서 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 때문에 바닷물의 깊이도 우리나라의 동해안처럼 해변에서 급격히 깊어지는 경향이 있고 해안의 도로들은 높은 곳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조금만 바닷가를 벗어나면 굉장히 선선한 산바람이 상쾌함을 선사했다.


우리가 있었던 숙소는 바닷가의 해변을 끼고 위치해 있었고 야외 수영장과 함께 있어서 로케이션으로는 환상적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숙소에 짐을 푼 즉시 맑디 맑은 눈이 부신 푸른 바닷물에 뛰어들며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했다.

모래 해변이 아니라 암석들이 있어서 바닷물은 더더욱 맑디 맑았고 작은 물고기들도 인기척을 피해 헤엄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 있을 때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되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수영하는 재주가 없는 나도 빨간 나의 구명 보드판을 들고 파아란 물속에 첨벙 몸을 담갔다.

금새 키를 넘는 수위라 보드판에 내 몸을 의지하면서 파도의 출렁임과 더불어 무념무상에 젖었다.  지난 시간의 케케 묶은 때들도 깨끗이 씻어내 버리고 앙금처럼 고인 아픔과 눈물들도 수면 위의 눈부신 햇볕에 모두 날려버렸다.  


코 앞에 출렁이는 파도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수평선 너머로 장관을 이루는 일몰을 보면서 하는 저녁 식사는 고픈 배를 채우는 것보다 파도소리에 먼저 취하고 하늘과 바다가 만나 이뤄내는 현란한 색채에 현혹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 ~ !!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연이 주는 안식 속에 숨 쉬어 보는가.!!

그저 머리를 텅 비어 버리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낯선 풍경과 자연에 넋을 잃어버린다.  바짝 말라있던 나무처럼 나의 숨구멍에 모잘랐던 산소를 마구 들이키고 있는 나를 스르로 발견하고 놀라움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저녁 식사 후 남편은 직장 동료가 알려준 정보대로 따끈한 와퍼 위에 아이스크림과 크림을 얹어 먹는 돌체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이 지역의 맛집이라니 당연히 가서 맛을 봐야 하겠지.  엄청난 양의 열량 덩어리!   남편과 아들은 맛있다고 잘도 먹어 치웠다.


아이스크림집 -  CICCIO (치초)에서 먹은 Canoa (카누)


이튿날 아침.   

호텔에서의 아침은 보통 뷔페로 자유로이 맘껏 즐길 수 있는데 이번엔 사정이 좀 달랐다.

코로나로 인해 일단 뷔페가 허락되지 않아 일일이 테이블의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호텔 종업원들의 일손도 모자랐고 고객들도 늦은 서비스가 못마땅해도 어쩔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여러 번 먹을 수 있는 예전의 뷔페와 달리 고객들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터라 많은 양으로 거하게 배를 채우기에는 체면상 조금 눈치가 보였다.


어쨌든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우리는 시어머니의 고향인  Cetraro (체트라로)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있던 호텔에서 130킬로 미터를 달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마을인 체트라로에 주소 하나를 들고 갔다.

지금은 그 지역에 남편 쪽의 그 어떤 친척도 연고도 없다.  그리고 이미 나의 시어머니는 로마에서 60여 년 이상을 사시다가 이미 9년 전에 돌아가셨다.  단지 남편은 어머니의 고향을 꼭 한번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남편은 유튜브에서 찾은 1937년 자기 외할아버지의 약국 개업식 장면의 흑백 사진을 들고 마치 자신의 한쪽 뿌리를 찾아 나서는 사람처럼 흥분되어서 차를 몰았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마침 인적이 거의 없는 점심시간이었고 따가운 햇살만이 작은 바다 마을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재건축을 잘 하지 않아서 그런지 사진 속 작은 이층 집 하나가 덧문이 닫힌 채로 있을 뿐이었다.  남편은 근처의 Bar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을 때도 자신의 외할아버지에 관한 실오라기 같은 인폼이라도 듣고 싶어 그 동네의 주민들에게 말을 건넸다.   당연히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기념으로 마치 다큐멘터리 찍듯이  우리가 찾아간 시어머니가 사셨던 집 앞에서 집 주변의 모습을 간단한 동영상으로 만들어 막내 두 이모님들에게 전송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트리에스테에 사시는 테레사 이모님이 전화하셔서 울먹거리며 좋아하셨다.  

‘ 조르조,  네가 지금 어디 있다고?  칼라브리아의 체트라로라니!!   믿을 수가 없구나!! ‘

남편도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며 거의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태어나고 자라난 곳에 대한 향수는 누구에게나 깊은 감정의 뿌리를 흔드는 마력이 있다.


세쩻날,  우리는 달콤하고 길쭉한 자줏빛 양파로 유명한 Tropea (트로페아)에 방문하기로 했다.

트로페아의 해변은 작지만 정말 진주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Santa Maria dell’Isola di Tropea (트로페아의 성 마리아 섬) 성지에서 보이는 시원한 에메랄드빛 맑은 바다와 자유로이 해변에 꽂혀있는 파라솔들이 보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세계에서 15개의 아름다운 해변 중의 하나라는 이곳은 코로나와는 무관한 듯이 알려진 유명세만큼이나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트로페아의 해변



넷째 날,  아침에는  한가로이 호텔의 수영장에서 즐기다가 오후 늦게 일몰이 멋있다고 소문난 Pizzo Calabro (피쪼 칼라브로)에 가기로 하였다.  Pizzo Calabro의 레푸블리카 광장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수평선과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하였다.    ‘바다의 일몰은 다 멋있는데 뭐 별다르겠어?’ 하며 속으로 생각했는데  광장의 적당한 높이가 일몰을 바라보는데 한층 더 돋보이게 했고 찬란한 모습을 연출했다.  느지막한 시간에 황금색으로 수면 위로 투영되는지는 햇빛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감탄하는 순간들이었다.  해는 매일 뜨고 지는데 마치 낯선 모습을 발견한 사람처럼  평소 나는 얼마나 현실에 절어  고개 한 번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해가 지고는 광장에서  Pizzo의 놓칠 수 없는 맛 - Tartufo (타르투포- 디저트 일종으로 아이스크림)를  맛보았다.


Pizzo (피쪼)에서 바라본 일몰

마지막 날,  우리는 피쪼의 맑은 바닷가에서 청정한 햇빛과 함께 하루 종일 해수욕을 즐기고 오후 늦게 로마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트로페아의 자줏빛 양파를 지나칠 수는 없지 하고 생각하는데 별 관심이 없는 남편은 어느새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반면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서는 모습에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고,  나는 고속 도로 휴게소라도 들러보자고 제안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짚에 엮어 달아 놓은 양파 한 묶음을 보고 반가워하며 나는 즉시 구입했다.  그리고 매운 음식을 즐겨먹는 칼라브리아의 명산품인 매운 햄인  ‘Nduja (얀듀야) 도 호기심으로 샀다.  나를 바라보는 아들이 빙긋이 웃으며 좋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피곤했지만 자연의 풍성한 향기와 빛깔에 흠뻑 도취된 나는 천천히 깨기를 기대하며 창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름다운 시간 속에 가족이 함께 있었음을 기억했다.


자동차 여행의 잔재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흔들리는 머리로 잠에서 깬 다음날 아침.

나는 창문을 열면서 아직도 내 눈앞에 시원한 바다 바람과 함께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가 보일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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