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의 커피 사랑
잠에서 깨어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아직 몽롱한 상태.....
아침을 준비한다. Caffè 를 준비하는 일.
모카커피를 만드는 팔각형 바닥의 비알레티(BIALETTI , 모카포트의 대표적 상표명) 기구에 물과 커피 가루를 가득 넣고 준비한 다음 가스 불위에 올려놓는다.
커피가 다 올라오면 칙칙 ~ 푸 하며 신호를 알린다.
그윽한 커피 향이 아침을 깨우며 온 집안을 휘감아 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향기다.
이탈리아에서의 커피는 당연히 카페 에스프레소(espresso)를 지칭한다.
에스프레소는 1884년 토리노에서 안젤로 모리온도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했을 때에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요즘은 일반 가정에서도 에스프레소 기계를 이용해서 커피를 만드는 집들이 많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전통적인 모카포트로 만드는 모카커피를 좋아한다. 모카커피가 좀 더 순한 맛이 있고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부터 길들여진 맛이라 나는 에스프레소 기계로 바꿀 의향이 아직까지는 없다.
이 커피 추출 기구는 물을 넣는 하부 포트와 커피가 추출되는 상부 포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커피가루를 넣게 되어있다, 아래쪽 하부 포트에 물을 넣고 열을 가하면 증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커피가루를 통과하여 상부 포트에 커피가 추출되는 방식이다.
드립 커피와는 커피 추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Caffè 의 종류도 다양하다.
카페 아메리카노(Caffè americano)는 여기선 외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카페 스타일이고 시내의 바에서만 판매되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인은 이렇게 마시는 사람은 없다. 그 대신 에스프레소를 천천히 내리고 물을 더 첨가한 커피인 카페 룽고 (Caffè lungo : 룽고는 ‘길다 ‘라는 뜻 )가 있다.
카페 마로키노 (Caffè marocchino )는 거품 우유 크림에 카카오를 넣은 커피이고, 에스프레소에 이탈리아 와인 증류주인 그라빠(Grappa)나 삼부카 (Sambuca) 등을 넣어 만든 남자들이 주로 마시는 카페 코레도 (Caffè corretto : 코레도는 ‘올바른’의 뜻, 알코올을 탄 커피) 도 있다.
주로 아침에는 우유를 탄 카페 즉 카페 마키아토 (macchiato : 얼룩진이란 뜻으로 우유로 커피를 얼룩지게 했다는 의미다.) 나 커피보다 우유의 양이 훨씬 많은 거품이 있는 카푸치노 (cappucino ) 혹은 카페라테 (caffè latte : 커피우유, 카푸치노와 비슷하지만 우유 거품의 양이 적고 보통은 유리잔에 부어 마신다.)를 주로 마신다.
또한 라테 마키아토 (latte macchiato : 얼룩진 우유)는 우유를 커피로 얼룩지게 했다는 의미로 우유가 주성분이고 커피는 얼룩질 정도로만 첨가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아침식사를 의미할 때는 주로 카푸치노에 코르네토(Cornetto, 크로와상과 비슷함)를 대표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 특히 식후에는 우유를 탄 커피는 안 마시는 게 상식적이다.
따라서 시도 때도 없이 카푸치노를 마시는 동양인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마음이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에는 집 앞의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스터드 크림 위에 블루베리와 산딸기가 있는 코르네토와 거품을 뺀 카푸치노를 마시는 게 나의 작은 즐거움이다. 이 카페는 ‘Gambero Rosso (홍새우)”라는 유명한 이탈리아 식음료지에서 선정한 카페 중의 하나로 맛있는 커피와 다양한 종류의 돌체, 디저트, 코르네토들이 정말 맛있다.
바쁜 직장인들은 바( Bar : 카페)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아침식사는 카페와 돌체(Dolce , 설탕을 첨가한 단 음식을 말함)를 먹는 것이 이탈리아인들의 식습관이고 우리처럼 밥과 국에 각종 반찬 등을 모두 먹는 간이 되어 있는 식사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고 하지 세 끼라는 개념조차 없다.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난 로마에 오기 전에 아침에는 주로 국에 밥을 말아 김치를 먹는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로 아침을 먹었다. 그러던 내가 유학생활로 자취를 시작하니 그 바쁜 아침에 매일 한국식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시간 없음의 핑계와 한국 음식의 복잡성 그리고 나의 귀차니즘과 부합하여 자연스레 잊힌 일이 되어 버렸다.
학교로 가는 길에 자주 바에 들려서 카푸치노와 코르네토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등교를 하곤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배고픔, 어딘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은 아침 내내 계속되었고 꽤 오랫동안 나와 함께 공존했다.
아마도 이 증상은 밥고파였던 것 같다.
이 밥고픔의 증상은 점점 시간이 지나고 이탈리아식에 적응하게 되면서 사라져 갔다.
이탈리아인들은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대단하다.
커피의 개념은 당연히 에스프레소이고 아메리카노 커피는 커피라고 쳐 주지도 않는 게 보통이다.
외국여행을 다녀온 이탈리아인들이 하나같이 고충으로 여기는 게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못 마셨다고 대부분은 성토한다. 그들에게 카페 에스프레소는 생활에 빠질 수 없는 필수 충전 음료수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스타벅스가 여기서는 별 의미가 없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커피 체인점들도 이 곳에서는 소용없는 간판으로만 취급받는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커피를 마신다는 의미는 주로 Bar에서 선채로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일이다. 물론 분위기가 좋은 노천카페들은 로마 시내에도 많이 있다.
그리고,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인간관계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의사소통 징검다리이다.
이탈리아인들도 커피를 핑계 삼아 데이트 신청을 하기도 하고 고민이 있는 친구와 커피 한잔 마시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커피 마니아이다.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기분전환을 할 때도 멋진 카페를 찾는다.
혼자 마시는 커피는 고독과 함께 마시고 연인과 함께 나누는 커피에는 찐한 사랑을 녹여 마시고
오랜 친구와 나누는 커피에는 지나간 시간의 추억을 향내에 묻혀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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