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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Oct 04. 2021

내가 만난 사람, 깐깐 대마왕 PD

뜬금 생일 축하해요, 라는 메시지가 왔다!

 며칠 전,

카톡으로 오래전 함께 일했던 K피디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랜만이네.

이 작가, 생일 축하해요."


 오랜 기간 프로그램을 같이했던 PD였지만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친한 친구나 지인들에게도 안부를 묻고 연락하는 일에 게으른 편이라 일로 연결된 사람들과는 거의 연락두절 상태로 지낸다. 일하면서 마음도 잘 통하고 존경하는 마음도 갖게 된 사람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친분을 쌓는 건 하지 않았다.



 그런데 K피디는 코로나 직전에도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예전에 H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원년멤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몇 년 동안 새해 안부도 묻지 않고 지냈던 터라 반갑기도 했지만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졌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휴대폰 번호가 바뀌어서 카톡으로 수소문해서 연락하게 됐다는 K피디에게 메시지로 답을 했다.


 "그냥, 그때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이 생각나서 밥 한 끼 사고 싶네요.

이 작가는 무슨 요일, 시간은 언제쯤이 좋아요?"

 "그럼 그때 멤버들한테 직접 다 연락하신 거예요?"

그도 나처럼 굳이 먼저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묻거나 모임을 주최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되물었다.


"네 명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경제코너 진행하셨던 박사님하고 C피디 그리고 이 작가, 나까지 이렇게 만나면 어때요?"

 "아, 네 명만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도 아니었는데 그는 원년멤버 모임이라더니 3명한테만 연락한 것이다.


"이 작가는 혹시 같이 만나고 싶은 사람 있어요?"

"그럼 J작가랑 같이 갈까요?"

나는 나중에 우리 팀에 합류했던 후배 작가 이름을 댔다. 그도 같이 일할 때였으니 잘 아는 작가였다.


"아니, J작가는 바쁘지 않을까?"

"안 바빠요. J작가, 고등학교 선생님 됐거든요. 방학이라 한가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카톡인데도 그가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역시 깐깐하고 까칠했던 K피디의 성정은 세월이 가도 여전히 남아있나 보다.



#K피디를 처음 만난 순간


 K피디를 처음 만난 건 경제 관련 프로그램을 할 때였다. 그 방송을 처음 기획하고 론칭해서 레귤러 프로그램으로 궤도에 올려놓으며 초기에 고생 고생한 P피디가 다른 방송사 대표로 스카우트되어 떠난 후였다.


 P피디는 매주 한 시간씩이나 방송되는 종합구성물 프로그램에 작가가 1명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섭외할 수 있는 인물들은 먼저 연락을 해놓고 미팅 때만 같이 만나서 회의를 하자고 했다. 직접 주식투자도 하고 있었기에 프로그램 홍보용 카피를 뽑을 때도 매번 나에게만 맡기지 않았다.


 그래도 밤새는 날이 많았고 집에 가지 못하고 작가실에서 대본을 써야 하는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팀이 격주로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진행되었어도 하루하루가 바쁠 터였다. 그런데 팀이 매주 1시간 종합구성물을 방송했으니 매일매일이 긴장상태였다.


#어떤 예감이 모락모락


 그런 상황에서 K피디가 우리 프로그램 메인 PD로 온 것이다. 나는 사람을 인상착의로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갖고 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일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가. 그러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긴다.  K피디는 한눈에 보기에도 차가운 귀공자 스타일로 보였다. 나보다 나이는 네 살 정도 위인데, 하는 행동은 대여섯 살은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K피디는 두뇌 회전이 빨랐고 경제 프로그램 전반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런데 너무나, 신중했다. 

이런 점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60분짜리 경제 프로그램을 하는 작가와 조연출 등 제작진에게는 결코 좋은 점이 아니었다.


 월요일에 기획회의 후 각 코너당 어떤 인물들이 나오면 좋을지 등을 의논하면서 바로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섭외를 할 수 있다. 화요일에는 섭외가 된 코너 순서대로 촬영 대본을 쓰면서 나머지 코너들 섭외를 병행해야 한다. 수요일에는 그 나머지 코너들 촬영 대본을 마무리하고 녹화하는 날 출연하는 전문가들에게 그 주에 해당하는 경제동향 등을 인터뷰해야 한다. 목요일에는 혹시라도 늦어진 코너 촬영 대본을 쓰고 다음날 녹화 대본을 써야 한다.


 그래도 금요일 녹화 당일에는 아침부터 바쁘다. 부동산이나 금융 관련 동향이야 하룻밤 사이에 크게 달라지는 경우는 없지만 주식시장은 다르다. 하룻밤 사이에도 요동치는 다우지수니 나스닥지수니 하는 해외지수 동향과 같이 움직이기에 오전에 자료 검색을 새로 한 다음 녹화 당일, 주식시장이 마감되는 시점의 코스피지수까지 확인한 후 대본을 수정하거나 추가로 작업해야 한다.


 그런데 K피디는 기획회의 자체도 늘어지게 할 뿐 아니라 회의가 다 끝나도록 결정하지 않고 생각해보겠다는 것이 많았다. 당장 코너 출연자 섭외를 해야 하는 내 입장이나 장소 섭외 등을 해야 하는 조연출들 입장에서는 똥줄이 타는 시간이다.


 심지어 그는 갑자기, 일반인이 주식상담을 하는 코너에 연예인을 섭외해서 인터뷰하자는 아이디어까지 꺼내놓았다. 다음 주부터 그렇게 하자고 해도 촌각을 다투어 일을 해야 할 마당에 당장 이번 주부터 연예인으로 가자는 것이다.


 물론 좋은 의견이다.

비교해서 그렇지만 지난번 메인 피디였던 P피디라면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면 본인이 책임져서 섭외한다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의 빡셈과 작업 강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K피디는 당연히 작가가 출연자를 섭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주식 코너에 섭외해야 할 연예인은 최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주식투자를 하고 있어야 하며 인지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

 와우, 하룻밤 사이에 유명 연예인인 데다 주식투자를 하고 있고 심지어 그로 인한 고민까지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얼굴이 알려진 인지도 있는 연예인을 섭외했고 촬영도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K피디가 메인으로 바뀐 첫 방송이 나갔다. 당시 주요 코너로 주식과 금융, 부동산 코너가 있었는데 주식 코너는 마니아 시청층이 있었다.


 주식 전문가가 "이 주식에 따라서 투자해보세요."라는 조언과 함께 매주 그 전문가의 이름을 걸고 주식종목을 하나씩 콕 짚어서 추천해주었다. 그 주식에 투자할 것인가, 선택에 대한 책임은 개미투자자들에게 있지만 말이다. 그 코너의 주식 전문가는 경력과 신뢰도면에서도 유명했지만 그 주에 추천했던 주식들이 실제로 오름세를 나타내 시청자들의 반응도 꽤 있었다.


 그러니 꼭 다른 코너에 연예인이 출연하지 않더라도 무관한 경제전문 방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연예인의 출연은 반향을 일으켰고 몇 번만 해보자던 K피디는 아예 연예인 특집을 시리즈로 기획을 해서 한동안 섭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했다.


 물론 그가 신중하고 꼼꼼하면서도 작가 생각을 하지 않고 많은 아이디어를 투척하면서 방송은 매번 더 힘들었지만 반응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내 모든 에너지는 소진되어 갔기에,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버틸 체력이 없었다. 그 전에도 밤샘작업을 하는 날이 많았는데 특집도 아닌 레귤러 프로그램에서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작가 한 명으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 단계부터 했기에 애정이 많아서 힘들어도 견뎌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상태였다.


 K피디에게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때는 K피디가 투입되어 잘 굴러가고 있었던 시점이었으므로 그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는 중간에 프로그램을 그만둔다는 얘기도 잘하지 않거니와 마음을 단호하게 결정한 상태에서만 이런 말을 하기에 K피디가 어떤 말로 회유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통을 이어받을 작가가 오면 구성안과 대본 등 인수인계할 시간까지 충분히 그에게 말했다.


 나는 K피디가 잡지 않을 걸 알았다. 일하면서 들은 몇몇의 일화들에서 그가 얼마나 이성적이며 때로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인지를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다음날인가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K피디가 안내한 음식점은 방송국 근처 횟집이었다. 광어인지 우럭인지 회를 앞에 두고 K피디는 원래 하려던 얘기를 쉽게 꺼내지 않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는 일어날 시간을 체크했다.


 매운탕까지 거의 다 먹은 후 였던가, 그가 말했다. 계속 프로그램을 해주면 좋겠다고.

 다른 피디들처럼 말이라도 이 작가가 없으면 안 된다던가, 꼭 있어야 프로그램이 돌아간다던가, 그런 기분 좋은 농담은 1%도 없는 너무 담백한 부탁이었다.


 나는 그때 일부러 술도 마시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그런 무미건조한 한마디에 당시 '피를 말리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던 그 경제방송을 계속하겠노라, 고 순순히 답했던가. K피디는 모든 상황을 과장하거나 사람을 앞에 두고도 사탕발림조차 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게 오히려 믿음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녹화 당일, 올 스탠바이 상태에서 대본을 다 쓰지 못했던 순간


 다시 K피디와 일하게 된 조건 중 하나는 베테랑 코너 PD와 코너 작가를 투입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오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다시 말하지만, K피디는 정말로 신중한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나는 어떤 싸한 기분에 잠이 깼다.

이럴 수가, 녹화 당일 아침에 일어난 것이다. 전날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집에서 대본을 쓰려고 왔는데 그냥 잠이 든 것이다. 출연자들도 챙겨야 하니 일단 방송국으로 출발을 해야 했다.


 결국 방송 녹화 시간, 주식 전문가가 분장을 다 마치고 스튜디오에 나타날 때까지 나는 작가실에서 대본을 쓰고 있었다. 생방송이나 다름없이 촬영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차 녹화방송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메인 피디부터 조연출, 촬영감독, CG 디자이너 등 모든 스태프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나는 이런 적이 처음이라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초스피드로 대본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에도 친한 조연출까지 작가실 문을 열고 뭔가 말하려다 하지 못했다. 분명 K피디가 빨리 대본 가져오라고 난리난리 치겠지. 그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바쁜 출연자까지 기다리게 하다니 메인 피디로서도 참기 힘든 고역의 시간일 것이다.


 나는 절망감에 빠져서 엄청난 속도로 노트북 키워드를 두들기며 대본 작업을 했다. 그때 K피디가 무슨 음료수인가를 내 옆에 갖다 주었다. 녹화날은 메인 피디도 챙길 게 많아서 작가실에서는 얼굴 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가 대본을 독촉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응원차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예전에 방송 드라마 프로듀서로 현장에 파견 나갔을 때 유명한 S드라마 작가도 대본을 완성하지 못해서 배우와 수많은 제작진을 야외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는 일화까지 들려주었다.


 그 드라마 작가는 나도 좋아하는 대작가였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깊이 있는 인생 드라마를 쓰는 그 드라마 작가는 성실하고 미리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라 쪽대본을 주는 일도 없었는데, 그날은 대본을 펑크내서 수십 명의 스태프들을 현장에서 기다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그런 일화를 들려준 K피디의 위로가 전해졌다. 어떤 질책도 없이, 어떤 짜증이나 불평도 없이 그는 다시 녹화장으로 가서 현장 분위기를 다독였을 터였다.

나는 대본을 마무리하고 프린트를 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처음 한 실수였지만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절망하고 또 절망했던 순간에 K피디가 준 음료수와 그 드라마 작가의 일화는 내게 잊을 수없는 감동으로 남아있다.


 K피디가 일할 때 깐깐하고 까칠한 만큼 작가로서는 힘이 들었지만 결과는 좋았고 결정적으로 그가 누군가  실수를 할 때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3년 전인가 원년멤버 모임, 식사초대를 했던 자리


 코로나 직전에 K피디의 주최로 만난 경제 프로그램 모임에는 결국 나까지 네 명이 모였다. 금융 관련 코너를 진행했던 S박사님, K피디 이후 인수인계를 하게 된 C피디 그리고 나.

연남동의 분위기 좋은 음식점이었다.

주문을 하고 K피디는 박사님과 우리에게 명함을 주었다.


 그는 영화사와 극장, 방송채널 등을 보유한 한 대기업의 계열사 대표가 되어 있었다.

"오, K 대표!"

S박사님도 장난반 축하인사를 건넸고 나도 자랑하려고 한 턱 내는 거냐는 실없는 농담을 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그는 그즈음 혹은 얼마 뒤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K피디는 그전에 같은 프로그램을 하며 고생했던 사람들과 마음 편할 때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지만 며칠 전에 만난 듯 정겹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를 하고 차 한잔까지 하고 나서 그는 우리 모두에게 선물이라며 영화티켓까지 준비해서 주기도 했다. 차가운 듯하지만 속 깊은 그의 마음이 행동으로도 드러난 순간으로 기억된다.



#다시 며칠 전, 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던 날


 그런 K피디가 오랜만에 내 생일이라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나는 밴드나 카톡 등에 내 생일을 비공개로 했는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공개 설정이 되어 있었나 보다. 한데, 내 진짜 생일은 이미 지났고 그날은 호적상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생일 축하 감사하다는 말과 건강을 기원하는 짧지만 진심 어린 메시지로 답장을 했다.

그러자 그가 "오늘은 당신의 날이기를!"이라는 메시지와 "내가 선물입니다~^^"라는 입체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메시지에 웃음이 나왔다.


 나보다도 네 살 위인 그도 세월을 겪으면서 차가운 이미지 속에 숨어있던 따뜻함과 다정함이 밖으로 표출되는 듯해 흐뭇했다. 어쩌면 지금은 어디 대표가 아닐 수 있고 제작PD도 아니겠지만 어떤 일을 하든 순탄하고 번성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내가 함께 일했던 가장 까칠하고 깐깐한 대마왕 PD였으나 누구보다 속 깊고 허물을 덮어줄 줄 아는 대인배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K피디에게 유머를 담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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