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새벽에 아버지께서 침대에서 화장실을 가시려다 넘어지셨다. 최근에 암이 재발하고 전이가 돼서 7월 말에 2차 항암치료를 7박 8일간 견뎌내시고 8월 초에 퇴원하신 상황이었다. 토요일 넘어지셨을 때는 다행히 외상도 없고 통증도 없으셔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단다. 그 마음도 이해가 되는 것이 아버지께서는 지난해 코로나 상황에서 암을 발견하고 통증도 심한 터라 3주 간격으로 6차까지 진행되는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음식물이 폐로 바로 넘어가는 연화 문제까지 재발해서 연화 치료와 재활치료를 하느라 거의 두 달 이상을 입원하셨더랬다. 그러다 지난해 항암치료를 받았던 암이 재발했고 전이되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지 한 달도 안돼서 암센터에서 사전검사와 치료방법을 정한 뒤 6월부터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셨다.
지난해만 해도 아버지 연세에 항암치료를 꼭 해야 하냐는 당신의 의견과 가족들의 걱정에 담당의사 선생님은 항암치료를 하면 효과가 있겠지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올해 재발 후에는 아버지 연세를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먼저 거론하시며 이번 항암치료는 많이 힘들 것이고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이라고 우려를 표하신 것이다.
다행히 정년퇴직 후에도 꾸준히 운동하고 일도 하시며 평소에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오신 아버지는 놀라운 의지와 인내심으로 그 힘든 6차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까지 잘 이겨내셨다. 그런데 올해 재발 후에는 1차 항암치료 때도 힘들다며 전화를 걸어서 하소연을 하실 정도였다. 그래도 어머니께는 걱정하실까 봐 늘 괜찮다고 병원에서도 잘 지낸다고 씩씩하게 전화통화를 하셨는데, 이번에 2차 항암치료 때는 많이 힘들다고 속내를 드러내셨다고 한다.
그렇게 고되고 힘든 7박 8일간의 2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오신 주말에 당신의 방에서 낙상사고가 있었으니 상심도 크셨을 것이다. 문제는 일요일 새벽에 또 침대에서 화장실에 가시려고 하셨는지 일어나셨다가 넘어지셨는데 이번에는 갈비뼈와 어깨 등의 통증을 호소하며 일어나지를 못하신 것이다.
바로 119에 요청해서 응급센터로 가셨으면 했는데, 항암치료를 받는 병원이 아닌 재활치료를 받았던 병원으로 가시기를 원하셔서 집에서 멀지만 그 익숙한 병원에 입원하게 되신 것이다. 응급센터로 갔으면 진행이 빨랐을 텐데 진료예약을 하고 간병사 신청을 하고 코로나 검사를 하는 등 소요시간이 필요해서 수요일에 병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원 준비를 한 캐리어 가방을 끌고 통증이 심해서 다리에도 힘을 줄 수 없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모시고 차를 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태풍을 동방한 폭우가 30분 전부터 급작스럽게 쏟아지며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친정집으로 오전, 오후에 몇 시간씩 아버지를 돌봐주시는 요양보호사와 나, 그리고 배웅을 하려는 어머니는 망연자실 폭우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30분 이상 눈앞을 볼 수 없는 집중호우가 계속되어 차로 그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신 어머니께서 진료를 하루 연기하자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도 낙상사고 후 통증도 있지만 열도 올랐다 내린 상태 시라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다 비바람에 젖게 되면 감기몸살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으셨다. 코로나 상황이라 면역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감염 상황에 노출되는 건 아닌지 병원 갈 때마다 불안하고 긴장되긴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 진료를 받으시고 1차 검사 결과, 아버지께서 통증을 느낀 갈비뼈와 어깨보다 고관절이 부러진 것이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입원을 하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받으시고 간병사 분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지만 입원이 연기되면서 다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루 일정이 차질이 생겨서 죄송하다고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감사하다고 인사도 드렸지만, 그래도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입원 후 CT촬영까지 확인한 정형외과 의료진이 어머니와 내게 전화를 해서 당장 내일 오전에 수술을 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재발 후 항암치료 부작용은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는 것인데 아버지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라고 했는데도, 피검사 결과 수치가 낮아서 내일 수술 전에 수혈 가능성도 동의를 구했다. 또한 큰 수술이라 열이 오를 수도 있어 사전에 주사 처치를 하고 통증이 심해서 무통주사를 맞을 수다는 등 동의가 필요한 여러 내용들이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에서 여러 가지 건강상태를 체크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며칠이 될 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 연세에 과연 수술이 괜찮을지 입원 전 진료한 의사 선생님께 한 질문을 또 전화를 한 의료진에게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수술 외에 다른 방법을 없을까요?"
"네. 걸으시려면 수술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입원 전 담당 선생님한테 들었던 답변이 똑같이 돌아왔다.
통증이 심해서 3차 항암치료 전까지는 집에서 쉬고 싶으셨을 아버지께서 먼저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시긴 했어도 이런 큰 수술까지는 생각도 못하셨을 터라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병원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아버지께서 드실 바나나와 요플레 그리고 간병사분께 드릴 커피와 물티슈 등 추가 물품 등을 구입해서 안내데스크에 맡겨놓고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돌렸다. 아버지께 전화드렸더니 담담하게 "내일 수술해야 한대'"하고 말씀하신다.
울컥, 하는 감정을 추스르고 나도 담백하고 씩씩하게 평소처럼 식사 잘하시고 마음 편히 밤에 잠 주무시고 수술하시면 더 좋아지실 거라고 했다.
어머니께 전화로 상황을 의논하고 동생들에게 가족 톡 방에 아버지께서 수술받는 중의 위험요인에 대해 올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로 심란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을 걸 그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입원 전에 간병사와 아버지 잘 부탁드린다고 이런저런 얘기할 시간에 아버지와 더 유쾌한 주제로 대화를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들이 밀려왔다.
아버지께서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도 연화 문제나 진료 등으로 병원에 모시고 갈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외식도 같이 했다. 시간 여유가 될 때 어머니와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더 자주 하긴 했지만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실만한 영화는 같이 관람하고 드시고 싶다는 음식도 사드렸다.
하지만 지난해는 코로나 감염 우려와 항암치료가 겹치며 외식은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아버지께서 아프시니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온다고 해도 어머니와 외출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중단하게 되었다. 친정집으로 온라인으로 장을 봐서 식재료를 배달해 드리거나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일요일에 드실 음식을 배달해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는 일정을 쪼개서 아버지 입원, 퇴원과 진료 등을 맡아서 하며 잠이 부족해지면서 몸무게가 4~5kg 정도 빠졌다. 막냇동생도 시간이 되는 대로 투병기간을 함께 했으니 내색은 안 해도 체력적으로 힘들었으리라.
올해 아버지께서 재발 후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나는 또 2kg이 빠져서 43kg이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취업준비로 가장 고민이 많았을 때도 44.5kg이었다. 그때는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됐는데도 내 키에 그 정도 체중이 나가니 빈혈도 심했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에 그때보다도 적은 체중으로 살이 빠지자 어지럼증이 자주 오고 귀가 꽉 막혀서 잘 들리지 않는 일이 반복됐다. 나도 지친 것이다. 똑같은 말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친절하지 않게 나갔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괜한 불똥이 튀기도 했다.
아버지 병원 갈 때마다 시사잡지를 샀던 홍익회 주인이나 오랜만에 마주치는 주민이나 동네 약국 약사마저 왜 그렇게 살이 빠지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도 건강에 이상신호를 느끼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다치고 수술을 앞두게 된 것이다.
잘해드린 일보다 더 잘해드릴 걸 했던 바보 같은 후회와 알 수 없는 불안과 슬픔에 쉽게 잠들 수 없는 밤,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브런치 작가' 축하 메일을 받았다.
사실 지난해부터 책을 읽기보다는 유튜브나 감각적인 영상을 찾아보며 고단함을 마시멜로를 먹듯 달랬다. 글쓰기도 사치라고 생각하고 잠정 휴업 상태였다. 그러다 최근 내 체중의 변화와 건강상태 적신호, 여유 없어진 태도를 보고 '나를 챙기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브런치 작가' 도전이었는데 기쁘게도 좋은 소식을 전해받은 것이다.
슬픔과 불안이 꽉 찬 밤도 아닌 새벽, 기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