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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Sep 17. 2021

따뜻한 밥상이 그리운 날에

<나에게 고맙다>를 읽고

 지금 생각해도 그날은 집에서 나서는 발거음이 참으로 가벼웠다. 가을바람이 꽤 상쾌했고 햇살도 적당하게 따스했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까지 수없이 망설였지만 실패하더라도 도전하기로 했던 날, 스스로가 참 기특하게 느껴졌다.

 몇 시간을 꼬박 바쳐서 작품을 써서 제출하고 시상식을 기다리며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나쁜 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어둠이 깔리며 바람도 차가워져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겨우 일으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자꾸 뒤로 처졌다.

 집에 가서 저녁 준비를 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부담도 주지 않았던 가족들의 경쾌했던 응원이 갑자기 돌덩이처럼 내 마음을 눌렀다. 간신히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내게 큰 아이는 "엄마, 축하해요.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했다면서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예상 밖의 축하인사에 뭉클해졌다.

  둘째 아이는 나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며 남편은 주방에서 분주했다. 구수하면서도 따뜻한 냄새가 났다.

수고했어.
따뜻한 거 먹고 싶어 할 거 같아서.


  남편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꽃게탕을 한 그릇 퍼서 식탁에 올려놓았다. 꽃게탕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딱딱했던 내 마음도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나는 갓 지은 밥과 약간은 독특한 맛의 꽃게탕을 먹으며 깊은 곳까지 따스함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차 한 잔을 마신 후 내가 집어 든 책이
바로 <나에게 고맙다>이다.




 사실 이 책은 제목에 이끌려 진작 사놓은 책이긴 하지만 중간쯤 읽다가 밀쳐놓았던 터였다. '나에게 고맙다'라는 제목에서 주는 울림도 정작 내용에서는 깊게 와닿지 않았더랬다.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데, 이날은 이 책이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못 본 척 얼버무린 내 마음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괜찮아, 울어도 돼' 챕터의
"힘들었을 거야, 내가 알아. 어둠은 깔리고, 나아갈 길은 잃고."
라는 대목에서 나는 먹먹해졌다.


 '나에게 하지 못한 말'에서는 "괜찮니? 네 잘못이 아니야. 조금 늦어도 괜찮아. 수고했어. 오늘도. 이미 넌 충분해."라는 대목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누군가에게 자주 해주었던 말,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인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침에 한없이 부풀었던 기대감이 저녁이 되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하고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막막한 기분에 휩싸여있었다.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껏 네가 해왔던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

그 노력은 절대 하찮지 않아.
너는 충분히 힘썼고, 최선을 다했잖아. 그럼 된 거야."
는 구절은 나를 향한 위로처럼 들렸다.


  "우리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라는 나지막한 읊조림이 그래도 될까, 포기할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내게 다시금 용기를 주는 듯했다.


  벌써 꽤 시간이 오래 지난 그날이 생생하다. 그날 나는 분명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었고 몸속 깊이 추위를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날이 따뜻하게 떠오른다. 나를 응원해주었던 두 딸들의 기분 좋은 메시지, 아무 말 없이 뜨끈한 꽃게탕으로 나를 맞이해주었던 남편 그리고 다시금 나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게 해 주었던 책 한 권.

  이제 와 돌이켜보면 홀로,
가을이 오고 있는 그 거리를 걷고 또 걸었던 것조차
아름답게 생각될 정도다.
누군가의 섣부른 위로보다도 따뜻한 누군가의 밥상이 그리운 날,
나는 그날의 저녁 식탁과 함께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곰곰 생각해 보면, 고작 하루가 엉망진창이었던
내 인생 전체가 꼬인 것도 아닌데
하나가 어긋나고 두 개가 어긋나고
점점 하루가 잘못되어 갈 때는 늘 걱정이 앞선다.
대부분의 걱정은 시간이 지나면 실타래거나 이내 잊힐 사건이었다."
아마도 이 대목과 함께 말이다.


  <나에게 고맙다>가 처음 나왔던 2016년, 이 책을 읽은 후 누군가에게 내가 읽은 책이라며 선물을 했더랬다.  

저자인 전승환 님은 SNS의 다양한 채널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로 100만 명이 넘는 독자에게 글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부러울 따름이다.


 이 책은 한 번에 휘리릭, 읽기보다는 야금야금 읽는 것이 좋다.
다른 어느 날 보다 고된 하루를 보낸 날,
문득 쓸쓸한 기분이 드는 날,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날,
그런 하루의 끝에 이 책을 펴 든 다면 토닥토닥 나를 다독이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책 속으로


29. 이미 지나쳐 온 과거에서 낭만을 찾기보다 사소한 일상에서 낭만을 발견하는 연습을 하자.
36. 게으름이 때로는 삶을 윤기 있게 해 준다는 경험.
153. 집 앞 건널목을 잘 건너실 수 있을까. 어르신들이 걷기에는 짧기만 한 신호가 애석하기까지 했다.
나는 잠시 동안 했던 걱정을 어머니는 평생 해오셨을 텐데.
160. 우리가 투명하다면: '진심의 학교'를 세우고 모든 사람들을 만나라.
214. 오늘의 가능성: 지금 시작해보라.
242. 여행의 정의: 무언가 낯선 환경에서 설렘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여행이다.



책 제목: 나에게 고맙다

저자: 전승환

출판: 허밍버드

발매: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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