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내게 건네는 말

나태주 시인의 <죽기 전에 시 한 편 쓰고 싶다>를 읽고

by 책벌레 잠잠이

‘죽기 전에 시 한 편 쓰고 싶다’는 너무도 비장한 제목의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순전히 ‘나태주’ 시인이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나태주 시인에 대해 <풀꽃>이라는 시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풀꽃>이라는 시는 읽을 때마다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 시를 그토록 좋아하면서 나태주 시인의 다른 시를 찾아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것은 <풀꽃>을 쓴 시인이 30대쯤의 젊은 감성을 소유한 이라고 지레짐작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태주 시인이 ‘시 인생 50년’을 살아온 노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좀 충격을 받았다. 해서, 70세가 되어서야 그동안 쓴 시에 대한 대중들의 응답을 받은 것 같다는 시인의 고백이 깊게 다가왔다.


비로소 그의 다른 시들도 곱씹어 읽게 되었다.
울컥하게 만드는 시들이 많아서 가슴이 묵직해지고 눈시울은 자꾸 뜨거워졌다.


나태주 시인을 ‘시인’으로 살게 만들었다는 시 <대숲 아래서>는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중략)/ 달님만이 내 차지다’라는 마지막 연이 서늘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실연으로 인한 상실감과 패배의식이 이 시를 낳게 했다고 표현하며 ‘그렇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시인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뒤늦은 깨달음도 아프게 와닿았다. 나태주 시인이 시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열다섯 살 때였고 <대숲 아래서>로 등단한 것이 스물여섯이었으니 근 11년 만에 꿈을 이룬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시’에 빠졌고 또 최근에서야 시 비슷한 것을 끄적거리게 되었으니 나의 시가 익으려면 지금부터 십 년이나 더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책에는 나태주 시인이 ‘시’를 쓰는 비결을 그의 시 인생을 통해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좋은 시란, 길이는 짧아야 하고 내용은 쉬워야 하며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건져 올린 것이어야 한다고 나태주 시인은 정의 내린다. 시인의 말대로 하면 금세 시 한 편이 뚝딱하고 써질 것 같다가도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는 부분에서 탁 막힌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쉽게 읽힌다고 쉽게 쓰인 시는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여자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나는 시인이 되었고// 한 여자로부터/ 용납되는 순간/ 나는 남편이 되었다’는 <두 여자> 같은 시를 보라. 흐르는 듯 읽히지만 시인의 고통과 치유 그리고 단단해지기까지의 온갖 감정들이 담담하게 읽는 이를 휘감아 버린다. 짧고 쉽게 이해되지만 삶의 고갱이가 마음을 건드리는 시다. 해서, ‘모든 시는 자서전이다’ 라거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마음 들여 보기’를 잘해야 된다고 시인의 귀띔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로 시작하는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는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로 맺는 마지막 연까지 깊은 울림을 준다.

시인은 ‘이 시가 아름다워 보이지만 매우 힘겨운 데가 있는 시’라고 덧붙였다. 직장에서도 바쁘고 건강 때문에도 힘들어 ‘숨이 턱턱 닿는 날들’이었노라고 했다. 그런 시인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킬 때 ‘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가 ‘대중들이 좋아하는 최초의 시’가 되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나처럼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하고 있는 이들에게 와닿는 시는 아무래도 ‘시’라는 제목의 시가 아닐까, 한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아아, 시를 그냥 주울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공짜로 시를 줍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따분하거나 지루하게 느끼는 이들은
‘빛나는’ 시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아내 김성예 씨의 <우리 남편>이란 시는 마치 답시처럼 읽힌다.

‘어디 갔냐구요?/ 우리 남편은 아주 바쁜 사람이에요/ 시 주우러 갔어요.’로 시작하는 첫 연부터 ‘꼬치꼬치 물으면 안 돼요’라고 시치미를 떼는 3연 그리고 ‘메고 간 배낭 가득 시를 담아/ 가지고 돌아올 거예요/ 그건 분명해요’라고 맺는 마지막 연까지 시인 남편을 둔 아내로서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런 감정의 결은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배려, 믿음, 함께 쌓아온 시간과 세월 등을 느끼게 한다.


나태주 시인이 병상에 6개월간 있을 때 아내를 생각하며 쓴 시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는 담박하면서도 절절한 기도의 마음이 전해졌다.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라는 시구 등에서 애틋한 감정이 솟아난다. 그 시를 읽고 나태주 시인의 부인 입장에서 답시를 쓴 이정록 시인의 <너무 고마워요>도 감동의 파고를 일으킨다.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 온 남자예요.’로 이어지는 시를 읽노라면, 이 시를 쓴 이는 진짜 나태주 시인의 아내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나태주 시인도 ‘이정록 시인이 쓴 글을 읽어보며 소름이 끼쳐지기도 한다’고 하면서 ‘시인이 시를 쓸 때는 이 정도는 빙의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내 불안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어떤 희망을 발견하는 일,
상처 받지 않은 척 애써 봉합하지 않고
그만큼 단단한 옹이가 생기도록 묵묵히 직시하는 일,
그리하여 어제와 같은 오늘이 아닌
반짝이는 또 다른 하루를 선물 받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달으며 사는 것.


그렇다면 나도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행복)처럼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나 쓸 수는 없는 시를 쓰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시인처럼 깊고 웅숭한 마음속에서 건져 올린 시어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




나태주의 <죽기 전에 시 한편쓰고 싶다>를 읽으며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쓰려고 할 때는 메모를 좀더 많이 하게 된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울림은 크다.

책을 살 때 제목, 작가, 표지와 목차 뿐 아니라 뒷표지까지 확인하고 구입한다.

책제목: 죽기 전에 시 한 편 쓰고 싶다

작가: 나태주

출판사: 리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