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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Aug 17. 2021

내 말이 벌침처럼 쏜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는 걸까?

나만 힘든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자꾸 퉁퉁 거리는 걸까.


오늘만 해도 그렇다.

저녁식사 후 설거지를 깔끔하게 해 놓은 남편이 다른 때 보다 3배는 깨끗하게 헹궜다며


"설거지 다 해놓으니 개운하지?"

라고 했다.

평소에도 설거지를 자주 하는 편인 남편이 생색을 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난 보통때처럼 유머러스하게 받지 않고, 바로 공격적인 태세로 전환했다.


"나 혼자 저녁 식사했으면 있는 거 간단히 먹었어!"


그러자 남편이 잠깐 당황하다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또 그렇게 말해. 나도 있는 거 먹어도 되는데."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저녁 식탁을 차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내 말이 벌침처럼 날아가 그를 쏜 것이다.


난 저 말속에 '순두부찌개 끓이고 에어프라이어에 삼겹살 굽고 상추와 깻잎을 씻어서 저녁상을 차리느라 나도 내 시간을 썼거든.' 오이무침도 해놓았던 것 꺼내놓고 호박볶음도 아침에 만든 것을 데워서 내놓았으며 쌈장은 어제인가 만들어 놓았던 것을 덜어 먹었으니,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말하자마자 풀 죽은 그의 뒷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스쳤다. 하지만 나는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남편도 대체 휴무라 쉬는 날인데 급한 회의를 주관하라는 연락을 받고 출근을 해야 했다. 모처럼 늦잠 자려고 했다가 아쉽다면서도 긍정적으로 일찍 갔다 오겠다고 회의 시간인 10시 보다 일찍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왔다. 또한 장인어른인 나의 아버지 병원에다 간식으로 빵과 요플레, 바나나와 간병사가 마실 커피와 음료수까지 전해드리고 온 상황이다.

아, 그러고 보니 퇴근길에는 삼겹살과 상추, 순두부, 바나나 등 저녁 찬거리가 없을까 봐 장도 봐왔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 둘만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솔직히 저녁 준비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큰 아이는 학원에서 급식으로 저녁까지 먹고 둘째는 대충 알아서 먹기 때문에 저녁 식탁에는 나와 남편 둘이서 앉아서 식사를 한다. 남편을 위한 반찬을 거하게 준비하는 것도 아니지만 난 굳이 둘이 먹기 위해 이렇게 부엌일에 시간을 써야 할까, 하는 조바심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시간을 알뜰살뜰 유용하게 보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워커홀릭에 가까웠던 나는 지난해 아버지의 투병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번아웃인지 무기력증 인지도 헷갈리는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또 나의 가정과 모든 일에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예측불허의 팬데믹 시기에 사선을 넘나들고 다시 찾아온 아버지의 암 투병 생활은 나에게도 우울감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이 왜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지, 왜 무기력해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코로나의 감염 공포 속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자주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켜보며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 기간이 길어지고 반복되자 내 일상과 건강도 조금씩 흔들리며 체력도 방전 상태가 됐다.


언제부턴가 내 일은 완벽하기 보다 '기본'만 하고
식사 등의 집안일은 '최소한'으로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서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사는 상황에 지쳐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하소연을 듣는 일이 힘들어졌고 누군가의 불평, 불만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어떤 얘기든 듣는 것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해서 가족들의 상담사 같았던 나는 귀가 꽉꽉 막혀 때로 소리가 잘 안들리는 이상한 증상까지 생겼다. 그 후  여유 있고 나름 재치가 반짝거리는 내 말투는 인내심을 잃고 거칠게 변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



 저녁식사 후 친정어머니와의 통화도 친절하게 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어머니께서 힘들까 봐 미리 일정을 조율하면서까지 아버지의 진료와 입원, 퇴원 등을 도맡아 하고 시시때때로 생필품도 온라인 마켓에서 친정집으로 배달해드릴 정도로 늘 마음을 써왔는데 말이다. (물론 동생들도 그들의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역할을 하고 있다.)


 매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지만 늘 조금씩 다른 말들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럴 때 나는 기꺼이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어머니께도 설명하고 아버지께서 말씀드리고 의료진과 간병사에게도 전하고 가족들 톡방에도 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의논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일들이 당연히 내 일들이 되고 오히려 내게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상황이 반복되자, '이건 아닌데!'라는 자각이 뒤늦게 든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올해 암이 재발해서 항암치료를 2차까지 겨우 마친 상태에서 낙상사고로 고관절이 부러져 입원하신 아버지가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그다음은 지난해 암이 발견된 후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해 계시거나 재활치료 때문에 입원해 있는 동안을 제외하고 집에서 투병하시는 아버지를 케어하시는 어머니가 힘드실 것이다.  


 오전과 오후에 3시간씩 총 6시간 정도 요양보호사분이 오셔서 기본적인 식사와 청소, 빨래 등 아버지의 간병을 돕고는 있다. 하지만 나머지 시간들은 아버지와 한 집에서 생활하시는 어머니께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으셨을 것이다. (아버지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요양보호사분에게 하루 종일 간병을 부탁드려도 되는데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니는 그건 싫다고 하신다.)


 그래, 아버지께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고 이겨내고 있으시니 그동안 나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어머니 또한 연세도 많으신데 얼마나 힘들실까, 해서 웬만한 일들을 다 감당하고 지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렇게 내가 예민해진 것은 지난해부터 몇십 년째 평균 이하이던 체중이 6~7kg 가까이 빠지고 난 뒤 심신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암투병 생활 1년 반이 지나가는 기간 동안 나는 '멈춤' 상태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대한 회의감 혹은 원망감도 있을 것이다.

(흡입성 폐렴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중환자실에서 기적적으로 일반병실로 오실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일반식사는 위험해서 코에 흡입기를 달고 경관식 식사를 해야했기에 장기 입원과 연화치료 기간들까지 더하면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거의 4년이 넘은 듯 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일 오전 아버지께서 고관절 수술을 하신다는 불안감이 가장 클지 모른다. 지난 목요일 입원하자마자 수술을 하기로 했으나 폐렴 증상까지 있어서 마취했을 경우 위험하다는 내과 담당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폐렴 치료를 먼저 한 것이다.


 항암치료 때문인지 아버지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낮아져 있는 상태라 내일 수혈을 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는 등의 수술 전 동의 내용들도 겁이 났다. 내일 오전에 혈액공급이 안전하게 확보되어야 수술을 할 수 있으며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에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에서 회복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는 설명도 무서웠다.


 그래, 내 저변에 숨어있던 마음은 바로 이것이다.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힘들었고 지쳤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아버지께서 이런 큰 수술을 앞두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는 것. 내가 뭔가를 더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감이 공격적인 말과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


부디, 내일 모든 상황이 순조롭기를!
나도 속상한 마음을 비겁하게
가시로 세우고 감추지 않기를!


예전처럼 감사한 마음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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