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키다리 아저씨」를 원서로 읽었다. 초급 수준의 원서였던 탓에 내용이 많이 압축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 읽었는데도 새로웠다.
이미 예전 책은 온 데 간데없어 서점에서 책을 새로 샀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휘리릭 읽었다.
이번에 다시「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며 느낀 점은 내가 기억하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첫째, 주인공 제루샤 애벗, 그녀가 원하는 이름으로 부르자면 '주디'가 참 독립적이라는 점.
예전에 읽을 때도 주디가 밝고 씩씩하며 긍정적이라 좋았다. 그렇지만 고아 신세로 키다리 아저씨가 주는 후원금으로 대학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독립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읽어보니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받는 등록금과 용돈이 모두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주디는 재학 중 성적 우수장학금을 받게 되어 남은 2년 간의 등록금은 그녀의 힘으로 해결하게 된다.
키다리 아저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디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실력으로 받은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대신한다. 또한 소설을 써서 상금을 받게 되자 키다리 아저씨에게 받은 돈 일부를 먼저 갚겠다며 현금을 보내기도 한다. 어서 자립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여름내 집필에 몰두하는 주디가 나는 더없이 존경스러웠다.
둘째, 키다리 아저씨가 따뜻하고 마음이 넓으며 무조건적으로 다 받아주기만 하는 인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다시 보니!
그는 자신의 도움을 거절하는 주디와 다투기도 하고 친구의 별장에서 방학을 보내고 싶다는 계획을 이유 없이 반대하기도 한다.
사실은 주디가 친구 샐리 오빠와 가까워질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인데 이유를 말하지 않으니 막무가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디가 보내는 편지에 절대 답장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처음의 계약을 키다리 아저씨는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주디가 아파서 외로움에 슬퍼할 때 키다리 아저씨는 꽃과 함께 친필 카드를 보낸 것이다. 이때 주디가 감동받고 엄청 우는데 나도 울고 말았다. 1900년대에 쓰인 작품의 캐릭터가 이렇게 입체적이고 현실감 있다니! 어설프게 '키다리 아저씨'콘셉트로 작동한 드라마 등과도 비교해 볼 일이다.
셋째, 이 책의 저자인 '진 웹스터'가 참 진취적인 인물이라는 사실.
어렸을 때는 「키다리 아저씨」의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읽었다. 이번에 읽으며 작가가 궁금했기에 소개 난을 자세하게 읽었다.
그저 고아 소녀가 돈 많고 배려심 깊은 '키다리 아저씨'가 주는 경제적인 혜택으로 성장하는 로맨스라는 달콤한 소재나 구성만 차용하는 드라마들로 이 작품의 주인공과 키다리 아저씨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나처럼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