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생은 가출한 학생을 학교로 데리고 가지 않았나

연극 <철가방 추적작전> 리뷰

by 별별


연극의 중반부, 어두운 배경 아래 조명은 뛰어가는 봉순자 선생님을 홀로 비춘다. 앞서 배달통을 들고 가던 가출 청소년들이 있었지만 어느새 다 사라지고 선생님은 홀로 뛰고 있다. 선생님은 뛰고 또 뛰며 서서히 지쳐간다. 중년 여교사가 가출 학생들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연극 <철가방 추적 작전>은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묻는 듯하다. 선생님은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일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것은 가출한 학생인 것인가 막막한 현실인 것일까?


[공연사진]철가방추적작전_두산인문극장2019_아파트_두산아트센터  (4).jpg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철가방 추적작전>은 두산아트센터에서 기획한 ‘두산인문극장 2019: 아파트’ 중 첫 번째 연극이다. 김윤영의 단편소설을 박찬규가 각색하고 신명민이 연출했다. 원작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여 주인공 봉순자 선생님을 그려냈고 각본가가 1년 동안 소설의 배경이 된 수서동에서 직접 거주하며 조사한 덕에 연극은 무척 사실적인 느낌이다.


연극의 배경은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과 주변 고급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한 중학교다. 아파트가 곧 계급이 되어 아이들 간의 반목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그러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들을 비롯한 어른들은 애써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선입견이 있음을 묘사해 낸다.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소재지만 그래피티 영상을 활용하여 빠르게 장면을 전환하고 곳곳의 추격씬들은 음악과 더불어 경쾌한 분위기로 연출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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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사진]철가방추적작전_두산인문극장2019_아파트_두산아트센터  (7).jpg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극 중 주요 인물은 가출한 학생 ‘정훈’이와 그를 쫓는 ‘봉순자’ 선생님이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봉순자 선생은 어떻게든 정훈이를 데려와 졸업을 시키고 대학교에 보내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열혈 교사다. 하지만 그의 열정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동료 교사는 도난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훈이가 의심받았던 상황에서 그 또한 침묵함으로써 동조한 것이 아니냐고 이중성을 캐묻고, 정훈이 아버지는 정훈이를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쓸데없이 부추기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순자 선생은 정훈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지만 정훈이는 학교를 졸업해봤자 바뀔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울부짖는다. 그런 정훈이를 바라보는 봉순자 선생은 비로소 가출한 학생들을 학교로 데리고 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현실의 벽을 체감한다.


[공연사진]철가방추적작전_두산인문극장2019_아파트_두산아트센터  (3).jpg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연극 속에서 아파트는 각각 공고한 계급의 벽을 암시한다. 어떻게 보면 더 이상 학교라는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그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것이 가출한 아이들이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기성세대의 꿈은 이미 그 가난을 같은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은근한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견디고 있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먼 환상이었다.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소득을 발생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 아이패드나 에어조던 운동화가 더 갖고 싶은 아이들은 현실에 더 이른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훈이는 끝까지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봉순자 선생 또한 정훈이를 끌고 학교로 데리고 가지 않고 정훈이가 일하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킬 뿐이다. 관객들은 그러한 정훈이와 봉순자 선생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극의 마지막에서 천천히 짜장면을 먹는 선생을 비추며 페이드 아웃되는 조명은 또다시 긴 침묵을 내놓으며 관객들에게 묻는다. 정훈이의 선택은 비행청소년의 일탈일 뿐일까? 다시 학교로 데리고 와도 또다시 가출하고 결석하는 학생들에게 과연 봉순자 선생은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었을까? 과연 한 사람의 피나는 노력으로 현실의 부조리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더 이상 수많은 질문들을 감당하기 힘겨워질 때쯤 연극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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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다행스럽게도 연극은 막을 내렸지만 슬프게도 현실 속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있다면, 가출 청소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 또한 선뜻 아무것도 해주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연극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관객들에게 <철가방 추적작전>은 우리 삶 속에서 정훈이와 같은, 봉순자 선생과 같은 인물들을 마주하며 종종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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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한 이창동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아파트 건설 공사장 바닥에 질펀하게 깔려 있는 똥처럼 평온한 삶에 감춰져 있는 우리의 민낯을 현실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DAC Artist 윤성호가 각색을 맡아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생긴 평범한 소시민의 빈곤, 상실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간: 2019.05.14 ~ 2019.06.08

일시: 화수목금 8시/토일 3시

예매: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 예매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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