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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n 17. 2019

제천 올드타운 거닐기

짧고 굵은 도시 산책

원래 여정은 마산에서 영월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당일치기로 그곳을 다녀오는 건 솔직히 말해 좀 무리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쉴 틈 없는 일정 속에서도 잠깐의 휴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천에서의 시간. 어찌 보면 어중간하게 남는 시간이었지만 모르는 곳에 와서 마냥 앉아만 있을 순 없었다. 딱  두 시간 동안, 짧고 굵게 돌아다닌 제천을 얘기해 본다.



마산역에서 대전역까지

새벽 5시 5분 KTX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해가 긴 여름날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까만 새벽하늘이 시원한 새벽 공기와 함께 맞이한다. 제목을 보고 일부러 가지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나그네의 새벽'이란 제목이 목청을 높여 나를 새벽의 시간으로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대전역 환승

경남 마산에서 강원도 영월까지는 직행 버스는 물론이고 직행 기차도 없다. 일단 앱으로 환승 정보가 곧바로 나오는 기차를 타긴 했지만 환승시간이 40분 정도나 되었다. 뒤늦은 예감으론... 충주나 그쯤에서 버스로 환승을 했더라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영동지방을 잘 모르는 관계로 일단 기차를 탔다.


대전역에서 아침 7시쯤 싸들고 온 감자를 찹찹찹 먹고... 책도 2/3 정도 읽었더랬다. 아 근데 솔직히 이 책은 뭐랄까.. 통속 드라마 삘이 나는 마음에 안 드는(마초적인) 주인공과 줄거리 설정 때문에 살짝 괴로웠다. 최인호 작가의 소설은 드라마 영화화된 것이 많은데 확실히 소설이 드라마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무궁화호의 풍경



드디어 제천역

대전에서 2시간 10분여 만에 제천역에 도착했다. 그때 시각은 아침 10시였다. 제천역은 충북 교통의 요지로 대천에서 출발한 충북선의 종착역(그리고 위로는 태백선, 아래로 중앙선이 만나는 곳)이었는데, 역사가 너무 초라해서 좀 의외였다. 알고 보니 새 역사를 짓느라 한창 공사중었고 이것은 임시 역사라 한다.


영월에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반 정도가 있었다. 제천에서 볼거리는 월악산, 의림지, 청풍호, 청풍랜드 등이 있었지만 도무지 2시간 안에 왕복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 아니었다. 제천역 바로 앞에 있는 한마음시장에서 간단히 요기나 할까 시무룩하게 있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블로그 중에 떡집을 소개하는 곳이 있었다.  떡순이에게 떡이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가자!


이번 제천을 다닐 때 유용하게 참고했던 블로그



떡집 가는 길

제천역에서 떡집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왕복 1시간이라, 아주 적당한 거리.  게다가 직선 도로로 쭉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에 내 빠른 걸음으론 충분히 더 빨리 도착할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남아도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골목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의병의 중심지, 제천

큰 대로가 너무 심심해 약간 왼쪽으로 벗어난 길을 가다가 만난 곳은 의병 교차로였다. 그러고 보니 주요 도로의 이름 중 하나가 의병대로였고 '의병'을 붙인 지명이 꽤 있는 걸 보고 비로소 제천이 의병의 발상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제천 의병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니 감히 이런 곳을 몰라 뵈었구나 하고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제천 시청의 의병사를 요약해 놓은 페이지에는 의병의 역사학적 의의를 말해주고 있었다. 요약해 보자면,


예부터 제천은 유림이 강학에 열중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강행되자 시국을 마냥 두고만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현실을 대처할 방안을 논의하였다. 1) 의병을 일으키기, 2) 망명하기, 3) 자결하기, 이렇게 세 가지 방안 중에 제천의 주요 유림은 을미년 음력 12월 의병을 결성하며 무장봉기의 길을 걷게 된다.

- 전기 의병
유림 의병의 기치를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반개화'와 '반외세'였다. 의병들은 하달된 개화 정책과 단발령을 강행하던 군수들을 처단하고 경제적 압박을 가하던 일본군의 병참을 공략했다. 정부는 끈질기게 의병의 해산을 요구하며 대치하였고 결국 약 육 개월 만에 의병이 해산하게 된다.

- 후기 의병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군대가 해산되면서 제천에서는 다시금 반외세를 외치며 의병이 크게 일어나게 되고, 이때에는 제천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전하였다. 서울로 진격하려는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결국 1908년 의병장이 체포되고 의병은 와해되었다.

- 의의
제천은 의병의 발상지이자 주요 근거지였다. 의병의 진정한 의의는 유림들이 만주로 망명하여 훗날 만주에서 독립운동의 토대가 되었음에 있다. 일제에 항거한 해외 무장투쟁의 시초가 되어 1910년 독립군으로 계승되어 항일투쟁의 역사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다시 떡집 가는 길

다시 떡집 가는 길로 되돌아 가 보자. 여기저기 명동 명동 하길래 왜 그런지 봤더니 로터리 이름이 명동 교차로였다. 오래된 가전제품, 기계 등 중고 매장이 많았다. 시장이라고 하기엔 뭐 하고 시내라고 하기에도 뭐 하고 하지만 길은 꽤 넓은 걸 보면 예전에는 주요 도로였던 모양이다.



덩실분식

드디어 도착한 곳. (덩실덩실~~) 이곳은 떡집인 듯 아닌 듯 이름이 '분식'이라는 게 특이했다. 예전에는 분식집이었던 걸까? (아주머니 아저씨가 바빠 보이셔서 이름에 대해 물어보지 못한 게 아쉽다.) 기와지붕이 참 정감 있어 보였고 군산에 초원사진관을 떠올리게 하는 간판이었다.

메뉴는 세 종류였는데, 하나는 찹쌀떡, 하나는 설탕 묻은 도너츠, 하나는 단팥 도너츠였다. 낱개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박스째 산다. 찹쌀떡이든 도너츠든 10개입 한 박스의 가격은 7,000원. 한 개에 700원 꼴이다. 나는 찹쌀떡과 도너츠를 섞어서 10개로 한 박스를 달라고 했더니, 찹쌀떡 4개, 설탕도너츠 3개, 단팥 도너츠 3개 이렇게 만들어 주셨다.

덩실분식 앞에는 벤치가 여러 개 있어 앉아서 사람 구경하며 먹기 좋았다. 뜨끈한 금방 나온 도너츠를 먹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정말 보송보송하고 물론 튀긴 거니까 기름지지만 너무 느끼하지 않았다. 작은 기와집 한 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른편에 카페처럼 덩실 카페가 있어 음식을 안에서 먹을 수도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내가 밖에 벤치에 있으니 안에 들어와서 먹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곳은 정말 맛집인 게... 벤치에서 한 30분 정도를 앉아 있었는데 그동안 방문한 자동차들이 한 다섯 대 정도 됐다. 대부분 로컬 분들인 것 같았다. 다들 들어갔다 나오면 두세 박스는 기본으로 사 들고 나오니... 오후 시간 대에는 다 팔리고 재고가 없을 게 분명했다. 아침 시각 이곳을 방문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잠자는 유흥가

오래된 도시를 걷다 보면 재미있는 곳이 잠자고 있는 유흥가다. 물론 나는 유흥에는 관심 없지만 이곳이 한창 영업을 하지 않고 있을 시간, 낮 시간대 유흥가를 보는 건 꽤나 흥미롭다. 서울에서 이런 곳을 꼽아보자면 점심시간의 북창동 거리를 들 수 있겠다.

비즈니스 룸이라니... 도대체 무슨 비즈니스를 하시길래? 오래된 여인숙, 모텔, 유흥주점, 오래방까지... 현찰이 오가고 아가씨들이 있는 이들 유흥가가 성행할 때의 실상을 상상하는 건 무척이나 씁쓸하다. 하지만 이들이 단지 풍경으로만 남아있을 땐, 90년대 영화 속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옛 유흥가 풍경을 거니노라면 초록물고기의 한석규가 떠오르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꽤 복잡한 유흥가를 거닐며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문득 한 무리의 덩치들과 눈이 마주쳤다. 마악 어느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나오는 이들이었다. 한 사람이 두 팔에 가득 문신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딱 봐도 '어깨들'인 것 같았다. 근데 그 사람들,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모를 어떤 여자가 사진을 찍고 다니는 걸 보면서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니겠는가. 순간 겁이 났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들을 지나치는데 어찌나 가슴이 콩닥거리는지. 아무리 낮이라고 해도 어둑하고 음산한 동네를 돌아다니는 건 조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정감 가는 제천 풍경

제천에서 인상 깊었던 건물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바로 이 문구점이다. 정면으로 보았을 때 간판의 녹색이 내가 참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앞에 놓인 우체통 하며 담쟁이덩굴이 드리워진 것 하며 약간 측면에서 볼 땐 이층 철제 계단까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외에도 제천에는 낡고 오래됐지만 매력 있는 가게들이 참 많았다. 시간이 많아서 이곳저곳 재미있는 건물들을 보면 다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제천은 의술의 숲?

내가 알기로 제천의 지역 특산물 중 약초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특히 황기는 전국 유통량의 80%가 지역 약초시장을 통해 유통된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천시내를 관통하는 의림대로의 뜻이 의술의 숲이란 뜻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제천 의림지

찾아보니, 의림지(義林池)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이라고 한다.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충청도를 호서(湖西) 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의림 서쪽에 있다는 뜻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奈堤, 큰 제방)도 큰 제방 있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때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다시 쌓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www.dapsa.kr/blog/?p=45021)
(출처: 제천시 관광안내페이지 http://tour.jecheon.go.kr)


제천, 하면 떠오르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내가 제천을 언제 들어본 적이 있던가 떠올려 보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허 생원이 한 처녀를 만나 하룻밤을 지새우고 제천으로 가는 바람에 그 처녀와 이별했으며, 나중에 동이와 만나 그의 친모가 있다는 제천장에 가는 대목이 나온다. 허생원은 동이를 자기의 아들로 짐작하고 제천장에 가면 어쩌면 허생원과 동이의 부자 관계가 밝혀질 수도 있을 것 같단 희망이 들면서, 제천이란 지명은 뇌리에 박혔다.


물론 메밀꽃 핀 풍경의 주된 배경은 봉평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제천도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천을 거닐면서, 다시금 이 작품을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제천


이날 난 천천히 제천 구경을 실컷 하고12시 30분에 있던 영월행 셔틀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떡집 덕분에 거닐게 된 제천 시내. 기껏해야 내가 다닌 길은 왕복 4~5km 밖에 되지 않는 길이었지만, 옛날 장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북적였던 제천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의병대로나 의림대로 등을 거닐면서 몰랐던 제천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 있게 제천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이 올까나? 만약 기차여행을 하게 된다면 제천역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들러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돌아오는 길엔 비가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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