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은 도시 산책
원래 여정은 마산에서 영월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당일치기로 그곳을 다녀오는 건 솔직히 말해 좀 무리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쉴 틈 없는 일정 속에서도 잠깐의 휴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천에서의 시간. 어찌 보면 어중간하게 남는 시간이었지만 모르는 곳에 와서 마냥 앉아만 있을 순 없었다. 딱 두 시간 동안, 짧고 굵게 돌아다닌 제천을 얘기해 본다.
마산역에서 대전역까지
대전역 환승
드디어 제천역
이번 제천을 다닐 때 유용하게 참고했던 블로그
떡집 가는 길
의병의 중심지, 제천
예부터 제천은 유림이 강학에 열중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강행되자 시국을 마냥 두고만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현실을 대처할 방안을 논의하였다. 1) 의병을 일으키기, 2) 망명하기, 3) 자결하기, 이렇게 세 가지 방안 중에 제천의 주요 유림은 을미년 음력 12월 의병을 결성하며 무장봉기의 길을 걷게 된다.
- 전기 의병
유림 의병의 기치를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반개화'와 '반외세'였다. 의병들은 하달된 개화 정책과 단발령을 강행하던 군수들을 처단하고 경제적 압박을 가하던 일본군의 병참을 공략했다. 정부는 끈질기게 의병의 해산을 요구하며 대치하였고 결국 약 육 개월 만에 의병이 해산하게 된다.
- 후기 의병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군대가 해산되면서 제천에서는 다시금 반외세를 외치며 의병이 크게 일어나게 되고, 이때에는 제천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전하였다. 서울로 진격하려는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결국 1908년 의병장이 체포되고 의병은 와해되었다.
- 의의
제천은 의병의 발상지이자 주요 근거지였다. 의병의 진정한 의의는 유림들이 만주로 망명하여 훗날 만주에서 독립운동의 토대가 되었음에 있다. 일제에 항거한 해외 무장투쟁의 시초가 되어 1910년 독립군으로 계승되어 항일투쟁의 역사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다시 떡집 가는 길
덩실분식
잠자는 유흥가
정감 가는 제천 풍경
제천은 의술의 숲?
제천 의림지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충청도를 호서(湖西) 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의림 서쪽에 있다는 뜻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奈堤, 큰 제방)도 큰 제방 있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때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다시 쌓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www.dapsa.kr/blog/?p=45021)
제천, 하면 떠오르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안녕, 제천
돌아오는 길엔 비가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