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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l 08. 2019

당신은 사주를 믿습니까


그는 사주를 믿었습니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코웃음 쳤더랍니다. 그는 심지어 사주를 볼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나에게 태어난 날과 시를 물어보았고 알고 보니 나와 궁합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궁합은 아주 좋았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고요. 내가 그에게 주는 것이 더 많으니 우리가 만나면 그에겐 득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재밌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왜 종로나 대학로에 가면 사주쟁이들이 앉아 있질 않습니까. 


스무 살 때, 길거리 점집에 사주를 보러 갔습니다. 연애사업이 신통치 않아 연애운을 물었더니 사주쟁이는 나에게 앞으로도 근 십 년 동안 연애운이 없을 거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나에게 악담을 퍼부은 사주쟁이를 누가 믿겠습니까. 나는 사주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사주를 보고 오셨습니다. 나에겐 말도 없이 다녀온 것입니다. 사주쟁이는 내 생년월일시만 듣곤 “주변에 남자가 있네.”라고 말했답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나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 줄 알았답니다. 나는 단박에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실토했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다고 말이지요. 그를 몇 년 동안이나 마음에 품고 생각하고 또 좋아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사주쟁이가 또 무슨 말을 했느냐고 엄마를 다그쳤습니다. 어떤 남자가 주위를 빙빙 맴돌긴 하는데 결국 맺어지기는 힘들 거라고 합니다. 나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마음이 쑤욱 꺼져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눈물이 주룩 흐를 정도로 무척 실망했습니다. 이런 사주쟁이 같으니라고… 속으로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마음이 나에겐 줄 것이 없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알았습니다. 내 마음 한켠에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차마 기다리고 있다고 스스로에게조차 납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와 잘될 거라는 걸, 그와 만날 수 있을 거란 걸, 아니 그의 흔적을 정말정말 마지막으로 보고 덮어두는 것조차, 도저히 가능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사주쟁이가 덧붙이기를, 그 남자와 인연이 안 되어도 그게 내게는 좋을 거라고 말했답니다.



곱씹고 곱씹어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낍니다.

나는 이제 사주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그를 떠나보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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