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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y 06. 2020

그를 애도할 수 있다면


어제 또 그의 꿈을 꿨다.

지긋지긋... 하다고나 할까.

그의 꿈을 꾸는 건 이제 지겹다.



막차를 놓치고 택시를 탔다.
막차를 언제 놓쳤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막차를 놓치고.
막차는 나를 기다리지 않는데도 막차를 놓치고...
택시를 탔는데 막차가 그리웠다.


에전에 어느 날, 소개팅을 하고 오던 길이었다.

새로 만난 이의 감상을 떠올릴 새도 없이, 나는 그를 또 회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려고 할 때마다,

그는 양면 색종이의 반대편 색깔처럼 팔랑팔랑 나타나버리고 만다.


다른 이의 음악이 그를 떠올리게 하고

다른 이의 한 마디가 그를 떠올리게 하고

다른 이와의 산책길이 그가 옆에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하고

그가 옆에 있었으면, 

그때 나란히 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뚝뚝 떨구게 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혀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아니ㅡ

기억은 사라지지 않나 봅니다.


그를 심하게 앓은 날은 꼭 그의 꿈을 꾸고야 마는 것이다.




그를 애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캄캄한 거리를 헤매다 유난히 불을 밝히고 있는 낡은 슈퍼마켓을 보며 안도한 적이 있었다.

그는 분명 저 멀리 어느 한켠에서 그렇게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어쩌지 못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원망스러운 것이다.

그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고 나는 언젠가 다가갈 수 있다는,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하는 내가, 참으로 바보 같다 생각하길 반복하는 것이다.

스스로 억장을 무너뜨리길 수백 번.

아직 수백 번으로는 모자란가 보다.

몇 번을 얼마나 더 그를 떠올리며 순식간에 왈칵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차디차고 무거운 슬픔으로 또다시 가라앉혀야 할까.


급기야 그는 나에게 망령이 되었다.




환영이여,

정녕 그렇게 사악한 마음으로 나를 지배하시려거든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소서.

나를 위해 그보다 더한 고통을 주소서.

내 안에 뿌리 깊게 각인시켜 주소서.

당신이 내게 죽은 기억이었음을

후벼 파는 아픔으로 처절히 통감하게 하소서.


그의 꿈을 꾸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내 안에서 지워지게끔 해 주신다면

기꺼이 나를 떼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정말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까지도

몽땅 다 그렇게,


환영이여,

진심으로 내가 당신을 애도하게 하소서.



넬-기억을 걷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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