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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Dec 24. 2019

마산

<첫 번째 이야기>

3년 전, 그가 마산 사람이란 걸 알았을 때 여자는 운명적인 사랑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여자는 그에게 마산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여자가 처음 말을 걸었을 때 그는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여자에게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3년 뒤, 그는 마산행 KTX를 탔다.     




기차가 도착했다는 동그라미 표시가 전광판에 떴다. 여자는 읽던 책을 그대로 펼쳐놓고 있을까 아니면 덮을까 살짝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냥 가방에 집어넣기로 했다. 서 있을까 앉아서 기다릴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만 그를 발견했다. 여자는 발딱 일어났다. 


그는 말쑥한 차림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조금은 피곤해 보였고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자는 미어져 나오는 반가움을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책을 너무 성급하게 넣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내리셨네요. 안 지나치시고.”

“네. 마산역... 오랜만이네요.”

“고향이 마산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은 어머니가 창원에 사시죠. 마산에는 대학 때 친구들 보러 와 보고 거의 처음이에요.”


그의 말이 좀 의외였지만 일단 여자는 더 급한 생각부터 했다. 택시를 타야 할지 버스를 타야 할지가 문제였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는 게 좋겠어요. 시내 구경을 하려면 택시보다 좋을 거예요.”

“네, 갑시다.” 


그는 가다 말고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마산역’이라고 쓰인 글씨는 까만 하늘 아래 역사 가장자리에 빛나고 있었다. 여자는 사진을 찍는 걸 마냥 여유롭게 기다릴 순 없었지만 그가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심 그가 들뜬 모습이 여자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버스를 타는 건 두 번째였다. 여자는 그와 버스를 타는 게 좋았다. 버스에서라면 그와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여자가 그의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면 오직 버스에서 뿐이었다. 그 기분을 말해줄까 하다가 여자는 단념했다. 그는 바깥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다녔던 길을 기억해내는 것 같았다. 여자는 잘 알지 못하는 길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마산은 여자가 기억하는 마산과 달랐다. 그가 지낸 시간, 그가 보낸 공간은 여자가 보낸 시간, 여자가 보낸 공간과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서로 한 공간을 지나치고 있었지만 기억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여자에게 평생 마산에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마산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서울에 살았지만 마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여자는 지방에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서울이 싫다면 싫었다. 복잡하고 공기도 안 좋고 서울 사람들 정 없고...  하지만 그는 그런 여자를 신기해했다. 그는 인생의 반을 마산에서 지냈고 나머지 반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는 여자에게 고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 여자가 말끝을 흐리자 그는 자기의 고향은 이제 서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서울에서 살 거라고 말했다. 그에게 마산은 어린 시절에 살던 곳일 뿐인 것도 같았다.  


‘나는 당신이 기대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여자에게는 그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마산에 놀러 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부모님이 마산에ㅡ아니 알고 보니 창원에ㅡ 살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휴에 당연히 내려와야만 할 것이다, 마산에 오는 것은 여자의 경우처럼 별 일 아니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부모님을 뵈러 내려온 적은 손에 꼽는다고 했다. 


설날 추석에도 안 내려오신다고요? 

그는 단정하게 “네.”라고 답했다. 

“어머니께서 한 번씩 올라오세요.” 

여자의 놀라움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그는 덧붙였다. 

다른 형제분들은 없으세요? 

두 형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머니랑 거의 붙어서 살죠. 평생 올라온 적이 없어요.” 


분명 ‘그들’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지 못한 채 삼켜지고 있었다. 여자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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