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대 대학원생이다

첫 번째 이야기

by 별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글을 써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에서 따온 제목만 써 놓고 나는 과연 글을 쓸 준비가 되었는지 반문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때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알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큰 것 같다. 연구실에서 '연구'를 한답시고 앉아있지만 실상 주어진 과제를 해치우기에 급급한 나는, 잠깐 멈춰 서서 진지하게 현재 나의 현재를 탐구해야 할 게 급선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보잘것없고 부끄럽지만 이래 봬도 엄청난 용기가 없으면 시작할 수 없었다.


비겁하지 않고 싶었으나 비겁한


예전에 어떤 선배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너는 대학원 생각 없어?"


그때 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네. 전 대학원을 도피처로 삼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선배는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를 정당화시키려고 했던 나의 말이 그에게는 마치 '선배는 대학원으로 도피하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분위기 자체도 꽤 무거웠지만, 내 말을 들은 선배의 표정은 유독 심각해진 것 같았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왜 대학원 들어간 거예요?"


처음부터 난 미소를 깔고, 한 마디 깔고 들어간다.


"많은 사연이 있는데..."


뜸을 들이다가,


"지금 아니면 대학원 못 갈 것 같아서예요. 제가 00에 가서 ###를 느꼈는데요, @@ 공부를 해야겠다, 좀 더 전문적인 @@ 공부를 하자, 뒤늦게 그 필요성을 느꼈거든요."라고 남들이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긴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물론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수많은 이유들 중 몇 가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땐 굳이 그렇게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 아주 친한 사람들에겐 훨씬 더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학원이요?... 도피성이죠."


어느 순간 나는 과거의 나를 깡그리 잊어버린 게 분명하다.



백만 년 만에 대학 캠퍼스


대학원 면접을 보러 가던 날은 일 년 전 이맘때, 기가 막힌 초여름 날씨였다. 집에 프린터가 없어 고용센터에서 눈칫밥 먹어가며 출력한 수험표를 꼭 챙겨갔다. 인터넷으로 대학원 면접 질문으로 나왔다던 몇 가지 질문들을 써서 외우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던 COD, BOD 같은 것들을.


처음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그 도시에 내렸는데, 정말 오랜만에 밟아보는 대학 캠퍼스였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캠퍼스를 거닐 여유가 생겼다. 일단 정문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아름드리 큰 나무가 많았고 6월의 신록으로 푸르게 우거져 있어 기분이 무척 산뜻해졌다. 어느새 난 '우리 학과 건물은 과연 어떤 건물일까'하고 살그머니 기대를 했다. 하지만 지도의 끝에 다다른 우리 과 건물을 본 순간, 아이고.


한눈에 봐도 꽤 낡아 보였다. 휑하니 넓은 1층 로비는 2층까지 천장이 뚫려있어 더 휑하게 보였다. 가득 벽면을 채우고 있는 거울은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던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화장실을 찾아 위층으로 향했다.


복도, 화장실, 그리고 면접대기실에서조차 아무도 없었다. 일찍 온 것이려니 하고 앉아있던 나는 수험표를 꺼내 놓고 갖고 온 면접용 구두를 꺼내 갈아 신고, 계속해서 별 볼 일 없는 '면접 예상답안'을 끄적대고 있었다. 남학생 몇 명이 대기실에 들어왔고 곧이어 조교님은 나만 빼고 다 면접장으로 들여보냈다. 마침내 호명되기까지, 유독 그 대기시간이 길게만 느껴진 것 같았다.



그 당시 내가 대기했던 텅 빈 강의실. 지금은 새 책상과 새 의자로 바뀌었다.


원래 면접이 이런 건가요


면접장에는 총 세 분의 면접관이 앉아계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백발의 교수님 한 분과 중년의 어떤 교수님,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너무 젊어 보여서 그땐 대학원생인 줄 착각했는데, 입학하고 보니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젊은 교수님이셨다. 아무튼 맞은편에 자리에 앉아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었다. 질문을 주시길 기다렸지만, 그렇게 기다렸지만,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 영어는 좀 해요?"


첫 질문이 영어를 좀 하냐니. 그때는 몰랐다. 영어가 대학원 과정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는 지를. 대충 영어공부는 항상 현재 진행형이고 꾸준히 하고 있다는 식으로 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후로도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 질문이 없다는 게 더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질문하지도 않았지만 대학원에 들어오려고 마음먹은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이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아, 직장 다녔어요? 뭐가 아무것도 없어가지고......"


알고 보니, 교수님들은 나의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만 가지고 계셨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대학원 지원 필수서류에서는 이력서를 요구하지 않았기에 나는 따로 제출하지 않았고, 교수님들은 졸업 후 7년 동안의 공백 기간에 내가 뭘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던 것이다. 졸업한 학과랑 전혀 다른 전혀 뜬금없는 과에, 고향도 이곳이 아니요 연고도 없는 이 도시에 이 학교에, 대체 이 친구는 이곳에 왜 왔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어 그래서 그저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으셨던 걸까.


순간 당황했지만 계속해서 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학업에 뜻을 품고......


"어 그래, 좋은데..."


백발의 교수님은 중간에 내 말을 살짝 끊어내셨다. 그리고 교수님은 많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아주 유익했던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뒤늦게 공부하려고 하니 어려움도 많겠지만 아무튼 공부하려고 한 건 잘한 일이다'라고 격려의 말씀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열심히 해 봐요."

"아, 네."


입을 앙다물고 결심을 보여드리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을 닫고 나서는데 무언가 주머니에서 쑥 빠져버린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잠시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앞이 다 가려진 책상 앞에 앉느라 애써 갈아 신은 구두는 소용이 없었다. 영어실력 외에 화학 공식 따위, 예상 면접 답안 같은 것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열심히 해라니...... 그냥 합격이라는 말인가?


어서 오십시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교수님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별문제 없이 입학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그렇게 별문제 없이 입학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대학원이 그런 건 아니다. 입학 정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학생들이 지원하는, 특히나 학생들이 아쉬운 지방 대학교가 그렇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대학원이란 곳이 이렇게 들어가기 쉬운 곳이었는 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입학 원서를 낼 때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노심초사했고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를 받고 무척 긴장해서 면접을 준비했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원에서 지원한 학과는 학부 전공과는 전혀 다른 과였기 때문이고 또 졸업한 뒤로 너무 시간이 흘러버려서 내가 과연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방대 대학원에 가는 것이 괜찮겠냐는 주변의 우려,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방대' 보다는 그저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건지, 과연 올바른 선택인 건지, 지독하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뿐이다. 당시에 나는 취업을 희망하면서 많은 곳들로부터 서류 탈락, 면접 탈락을 거친 때였다. 대학원 또한 그때는 들어가기만 해도 감지덕지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방이건 서울이건 상관없었다.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한 곳 앞에서는 어느 곳이나 그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만 보였다.




그때는 알지 못한 채, 그날 나의 면접은 그렇게 알쏭달쏭하고 허무하게 끝이 났다. 열심히 해라는 말만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상하게 천근만근이었다. 그날의 생경한 첫 발걸음은 일 년이 지난 지금 그 건물 로비를 매일같이 드나드는 발걸음이 되었고, 그날 목이 타서 마셨던 정수기의 물은 매일 수시로 떠다 마시는 물이 되었다. 면접날 멀뚱멀뚱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백발의 교수님의 수업은 매주 돌아오고, 바로 당장 내일도 그 교수님 수업을 듣는다. 아무튼 간에 여전히 내게 맴도는 말은 "아무튼, 열심히".


그렇게 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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