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두 번째 이야기

by 별별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 날,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미련하게도 다 풀지 못한 문제에 미련이 남아 계속해서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이런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뒤에 어떤 말이 따라올는지, 차마 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이번 학기 시험은 모두 take-home exam이었다.

그중 한 과목은 시험 문제를 미리 공지해 주셨고 중간고사 대체 과제를 비롯, 총 3가지 과제를 자정까지 제출하는 형식이었다.

그 과제라 함은,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수업시간에 배운 논문 중 몇 가지 논문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총 9일의 주어진 시간. 총 3개의 논문을 팔로잉하는 과제.

시간도 많고 꿀이네?라고 생각하기에는...

나는 겨우 1가지 과제만 정상적으로 다 푼 채로 제출했을 뿐이다.

나머지 2개는... 풀다 만 채로 지저분한 연습장 같은 파일을 그대로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다.


메일을 보내드리면서

"교수님, 지난 학기 동안 감사했습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교수님,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학기에도, 지지난 학기에도 이 말을 썼던 것 같은데.


정말 구차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심보였다.

이해하지 못한 걸 자랑스러워할 수도 없으니, 부끄러워라도 해야 교수님, 또는 지식에 대한 예의려나.



내가 들었던 이 과목의 교수님은 '빡세다'고 소문난 분이다.

바야흐로 무척 오래 전인 것 같은 그때 그 시절, 첫 학기로 돌아가 볼까.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대학원.

당연히 이 교수님이 그런 교수님이란 걸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대강 과목 이름부터 오싹한 분위기를 풍기길래 처음엔 그 교수님 수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과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의무적으로 그 교수님 수업을 하나 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전공학부 교수님 중 한 분이 안식년을 보내고 계셔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몇 개 없었던 게 바탕에 깔린 이유였다.

결국 첫 학기에 그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안 그래도 오랜만에 대학원이라는 곳에 들어와 공부를 하게 됐는데,

잔뜩 쫄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이 과목은 초행길의 만학도에게 자비가 없는 과목이었다.


영어 원서로밖에 읽을 수 없는 전공 서적,

거의 매주 떨어지는 리포트 수준의 연습문제 풀이 과제,

학부 때도 할 기회가 없었던, 난생처음 해보는 영어 발표,

무엇보다도... 생물+화학+공학 쓰리 콤보는 문과 전공자에겐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제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박사과정 학생조차 아무도 없었다.

다들 많은 양, 내용의 난해함에 수업이 끝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나는 점점 말을 잃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매일같이 이해할 수 없는 책과 씨름하느라 머리가 지끈지끈한 것도 모자라,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듣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서 수업 시작 전에 갑자기 울음이 쏟아져,

그래서 수업 시간에 한참 늦은 적도 있었다.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나에게 그 교수님은 용기를 북돋아주시기는커녕,

내게 대놓고 말씀하셨다.


"왜 이걸 할려고 그래? 만용이지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용감하게 전과해서 대학원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만용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과목이었다.




결국 나는 첫 학기 시험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야 말았다.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 다니는 나를 걱정한 친구들은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오래된 족보를 구해다주며,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나마 족보라도 있었기에 책상 앞에 앉을 힘이 생겼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며칠 동안은 정말 족보만 달달 외우는 공부를 했다.


하지만 애초에 과목에 대한 아무런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시험을 잘 칠 리 만무했다.

그해는 웬일인지 시험 문제도 족보에서 나온 문제가 한 문제도 없었다.

결국 난 지금까지 쳤던 무수한 시험들 중에서 가히 '최악'의 답안지를 제출했던 것 같다.

답을 몰라서 못 적은 게 아니라, 시험 문제를 이해하기도 힘들었으니까.

시험지를 제출하면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넋이 빠져 있는데

그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과제를 내주셨다.

기말고사 문제지를 거둬가지 않을 테니 못 푼 문제들을 다시 풀이해 오라는 것이다.

결코 호락호락하신 분이 아니었다.


그 후로 일주일 간 다 끝난 기말고사 문제지를 가지고 씨름했다.

한 학기 동안 그 수업을 듣는 건 거대한 산을 오르는 같아서

도대체 얼마나 더 올라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막막했다면,

그래도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아는 상태로 궁리하는 건 그래도 할 만했다, 해야만 했다.

점수에도 반영되지 않는 마지막 숙제를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건

그동안 온갖 자괴감으로 무너져버릴 대로 무너져버린 내 자존심에 대한 보상이었다.


결국 마지막 숙제로 두꺼운 문제풀이집을 완성했다.

물론 그것도 정답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려고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기말고사 답안지는 B4용지 1장도 못 적었는데, 과제로 해낸 건 자그마치 A4용지 10장이 넘었다.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나서 우연히 정수기 앞에서 교수님을 마주친 적 있었다.

자신 없는 과목이라서 그런지 한 학기 내내 교수님 앞에서 당당한 적이 없던 나.

그냥 인사만 하고 물을 뜨려는데, 교수님께서 한 마디 지나가듯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번 학기, 애 많이 썼네요? 열심히 해 봐요."


정말 깜짝 놀랐다.

만용을 부린다며 독한 말씀 하실 땐 언제고 방금 그 따뜻한 말씀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애 많이 썼네요.'


이 말은 정말 나에겐 최고의 칭찬.

교수님의 그 한 마디를 작은 새싹같이 모셔와 내 마음속에 옮겨 심으며 바라보고 곱씹으며 뿌듯해했다. 그동안 마음고생했던 온갖 설움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인가, 그 교수님의 지도학생인 어떤 친구랑 마주쳤다.


"언니... 방금 언니 숙제 스캔하고 왔어요. 과제 왜 이렇게 잘하셨어요? 교수님이 언니 과제해 온 거 보관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날 난 오랜만에 엄마께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엄마, 정말 매일같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 안 한 게 뿌듯하다고요.

별 거 아니지만 교수님께 칭찬받았다고요. 참 별 거 아니지만 정말 정말 기뻤다고요.


결국 난 그 수업에서 남들은 '대학원에서 받을 수 있는 최하 점수'라던 B+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게 나에겐 최선의 점수였다는 걸 안다.

아니, 솔직히 C를 받았더라도 기꺼이 수긍했을 거다.

무엇보다 나를 절레절레 고깝게 바라보시던 교수님이 '애 많이 썼다'라고 인정해주신 것,

마지막 과제라도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은 것, 그걸로 충분했다.

그게 바로 대학원 첫 학기,

내 최고의 해피엔딩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오늘, 기말고사가 끝나고 난 다음 날,

그 교수님의 수업은 벌써 몇 번째 시험을 치렀지만

그게 현장 시험이든 take-home exam 이든지 간에,

막막한 건 예나 지금이나 어찌나 똑같은지 모르겠다.


논문을 따라 하라는데, 논문은 교과서와 달라서 자세한 설명이 없고

논문에 나와있는 최종 결과물인 표와 그림을 그대로 도출하라는데,

그것을 도출하기까지 과정을 제대로 알려면 혼자 별도로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 기말 과제가 주어진 뒤로부터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찾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내일은 이해가 되겠지,

오늘은 이해할 거야,

이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 결국 기말고사 시한을 넘겼고,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ㅡ라는 넘지 못하는 벽을 마주하고 말았다.


기말고사는 끝났지만 여전히 논문을 붙잡고 있는 나는,

아마 오늘도 이해하지 못할 듯,

내일도 결국 이해하지 못할 듯...

지난 학기에 배웠던 자료들까지 뒤져 가며 내가 미처 채워 넣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가버린 구멍을 찾아 조금씩 매꿔넣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 번 두 번 보는 걸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말자, 싶어 계속 보고는 있지만 이게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문득 시험이 끝나고 과제를 하던 옛날 생각까지 우르르 나면서

언제나 시험이 끝나고 나서 이렇게 뒷북을 치고 있는 내가 참 처량하고 우스워지는 것이다.


'해피엔딩은 무슨....... '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아직 덜 궁한 건가.

어떤 과학자는 꿈속에서 문제를 풀었다는데,

나도 그런 꿈 좀 꿔봤으면 하고 요행을 바라는 건 잘못된 심보인 걸까.






< 다시 마음을 잡으며 >


이제는 애쓴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좀 더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고 탄탄해지고 싶다.

갈수록 욕심나는데 그 욕심을 부릴 만큼 머리가 한결 부지런해졌으면 좋겠다.


시험은 끝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계속된다.

내가 나를 매일같이 의심하고

내가 나에게 매일같이 증명해 보이는

나만의 문제와 답안지를 매일같이 써 나가는 진짜 시험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게을렀기에,

이제부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스스로 '애썼다'라고 칭찬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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