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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n 06. 2021

여기서 잠깐 딸의 이야기


아빠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기로 마음먹은 것이 어느덧 이주 째다.


그동안 내 입장에서 아빠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는 건 쉬웠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아빠의 이야기들을 욕심내면서부터, 조금은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현실적으로 정보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한의사로서의 아빠는 내가 알 수 없는 달의 뒤편과도 같은 모습이다.


아빠는 집에 오시면 한의원 얘기는 잘 하시지 않았다.


내가 주로 알게 된 사실들은 엄마를 통해서나, 아빠의 한두 마디 말 정도밖에 되지 않는 단편적인 것들을 통해서다.


예를 들어, 어제 국제한의원으로 이사를 가게 된 이유에 대해서, 혹시나 해서 엄마께 다시 여쭤봤을 때 엄마는 몇 가지 사실을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아빠께 여쭤봤을 때, 아빠는 엄마의 기억도 일부 사실과 다르다는 걸 말해주셨다.


사실의 선후관계, 사건의 연유 등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꽤 많이 달랐다.


어제 쓴 글도 대폭 수정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까지 이르자, 약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신문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고 아빠의 전기를 쓰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을 쓰려는 것도 아니다.


내 생각을 펼치지 않고 어떤 사실을 말하려면, 최소한의 사실관계는 필요하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인 아빠를 인터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 인터뷰를 할 것인가...?


아직 아빠는 내가 아빠의 이야기를 쓴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내게는 아빠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굳이 아빠께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


최대한 미루기로 한다.


일단 보류.




글을 쓰면 쓸수록, 아빠께 궁금한 것들이 쌓여 간다.


아빠를 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아빠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꽤나 오만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떻게 내가 아빠를 안다고 생각했던 걸까.


매일매일 아빠를 떠올린다.


그리고 내 기억 속 아빠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의 기록은 매일의 고군분투.


아빠에 관한 기억을 더듬더듬 이야기하며, 나는 코끼리 만지는 장님이 되었다.


아빠는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던 걸까.


아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내가 생각하는 아빠는 과연 그 존재에 얼마나 근접한 것일까 고민한다.


아빠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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