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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n 04. 2021

아빠의 잔소리

(11)


어두운 방 안에 고요한 스탠드 불빛.


오직 나만을 위한 시공간을 값싼 "똑딱" 한 번이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듯하다.


'불 켜라~~~~!'


아빠의 목소리는 따라다닌다.


불빛과 어둠의 경계를 더욱 대비시켜 놓는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방 안에 불을 켜고야 만다.




건강 건강


언젠가 영화 제목에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란 게 있었다. 아빠는 꼭 홍반장 같은 분이셨다. 내가 어디선가 무슨 짓을 하고 있으면 꼭 등장하셨다. 특히나 아빠가 하지 말란 걸 할 때 말이다.


아빠는 항상 건강을 강조하셨다. 특히 바른 자세,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3살 좋은 버릇 여든까지 건강하게 지낸다는 모토가 있으셨다. 아빠가 강조하신 것들을 꼽아 보자면 대략 이런 것들이다.


(스탠드만 켜지 말고) 방에 불 켜고 책읽기

자리에 앉을 때 허리 펴고 곧게 하기

(밥 굶지 말고) 충분한 양으로 밥 먹기

반찬 골고루 먹기


어찌보면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임에도, 그 사소한 습관들이 나중에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고 하셨다. 참 이상하게 그 당연한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분위기 낸답시고 불 켜지 않고 있으면 아빠는 눈 나빠진다고 부리나케 불을 켜고 가시고,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밥을 안 먹기라도 하면 아빠는 꼭 밥을 먹게 하고 내가 먹어야 할 만큼 반찬을 덜어 놓으셨다. 


때론 아빠의 그런 잔소리와 행동들이 너무 나를 구속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내 자유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나서 보니, 무조건적으로 아빠가 옳았다.



팔 할의 건강


지금도 난 두 눈의 시력이 꽤나 좋은 편이며,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 자세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밥은 꼭 챙겨먹고 반찬은 편식하지 않는다.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게 된 것은 거의가 아빠가 말씀하신 잔소리 덕분이다. 


아빠는 영양제나 약같은 걸 챙겨먹기보다 (심지어 한약을 먹는 것도) 편식하지 않고 반찬을 골고루 먹으면 그게 바로 보약이라고 하셨다. 요지는, 기본적인 것만 잘 지키면 나중에 복잡하고 값비싼 해결책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챙겨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고 이러한 아빠의 말뜻을 이해함으로써, 늦었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아빠의 잔소리가 와닿게 되었다.



지금도 언제나


요즘도 아빠의 잔소리는 귓가에 울려 퍼진다.


'밥 잘 먹어야 한다~~~!'


청개구리처럼 그렇게 말 안 듣던 딸은, 이제 아빠가 보이지 않는데도 꼭 아빠의 말씀을 기억하고자 한다. 툴툴대면서 아빠의 잔소리를 이젠 잘 듣는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함께 해 주셔서 아빠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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