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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Aug 21. 2022

하루 종일 병원 로비에서


오늘은 일요일. 저는 오늘도 아산병원에 '출근'했습니다. 저는 물론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이곳 병원에 입원해 계실 뿐입니다. 저는 보호자가 아니라서 병실에 들어갈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 왔습니다.


1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처음으로 아빠를 모시고 엄마와 함께 아산병원에 찾아왔을 때,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다기에 저는 입구에서 쫓겨나듯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넉살 좋게 로비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네요. 이젠 화장실이 어딨는지도 알고요, 지하 푸드코트에서 점심 저녁도 해결합니다.



어느 주말, 병원 풍경


제 옆에는 어느 노란 원피스를 입은 네다섯 살짜리 어린 여자 아이가 주변을 돌아다닙니다. 분홍색 책상을 펼쳐놓고 학습지를 공부하다가 곧 덮어버리고 엄마를 찾네요. 옆에서 할머니는 빈 휠체어 옆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잔뜩 무언가 가득한 아이스팩 가방을 메고 온 따님이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뵙습니다. 따님은 아빠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딸에게서 가방을 받아 들고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다시 입원실로 들어가십니다. 아마도 엄마가 아프신가 봐요.


트렁크를 들고 온 사람들도 여럿 보입니다. 장기 입원 환자 또는 보호자일 겁니다. 환자에게 줄 성인용 기저귀 팩을 들고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환자의 주위로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헤어지려나 봅니다. 환자보다 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안쓰러운 듯 눈길을 떼지 못하십니다.


오후 5시 30분. 일요일이라 한 군데 불이 켜져 있던 입퇴원 접수창구는 이제 그마저도 불이 꺼집니다. 빈 의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TV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습니다. 선의에 가득 찬 의사와 간호사 이야기, 기적 같은 회복을 하게 된 환자의 이야기... TV 속 홍보영상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빈 병원, 보는 사람이 없는 공허한 화면은 곧 꺼지겠죠.



고모의 족발


오늘 전 여기서 무엇을 했을까요. 오늘은 준비물이 있었습니다. 엄마께서 갈아입으실 옷가지를 챙겨 왔고요, 손톱깎이도요. 그래서 오늘 엄마는 아빠의 손톱을 깎이고 면도를 시키셨습니다. 아빠는 의식이 없으시지만 수염은 계속 자라난다고 해요. 수염이 자라나고 오줌도 누시는데, 눈은 뜨질 못하시니,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낮에는 고모께서 사촌언니와 함께 오셨습니다. 고모는 어제도 병원에 오셨어요. 7월 말, 아빠께서 일주일 간 아산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그땐 의식이 있으셨을 때, 고모는 아빠(동생)에게 먹일 반찬을 매일같이 해 오셨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해 와도 맛있게 먹어줄 동생은 없지만 그래도 엄마(올케)를 위해 반찬을 해 오셔요.


오늘은 심지어 맛있는 족발을 가져오셨습니다. 상추쌈 막장 고추장에, 밥은 물론이거니와 된장국과 떡볶이까지. 김치랑 멸치 반찬 두 종류까지 해 오셨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뒤뜰에 나가서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펼쳐 먹었어요. 잠시 동안이지만 소풍 온 기분이 들더군요.


아빠가 족발 참 좋아하셨는데... 그런데 편찮으시고 나서부터는 그 좋아하시던 족발을 전혀 찾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도 참 오랜만에 먹어보는 족발이었습니다. 족발을 좋아하시던 건강한 모습의 아빠를 떠올리면서요.



아빠를 보고 싶지만


30분마다 엄마는 들어가 보셔야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보호자 1명밖에 출입이 되지 않고 그것도 보호자가 병실을 나간 지 30분마다 휴대폰으로 알람이 오는 이유는 모두 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방지를 위해서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엄마 외에는 아무도 아빠를 볼 수가 없어요.


엄마는 면도한 기념으로 아빠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고모는 아빠 사진을 보자고 하셨어요. 머리를 민 아빠, 며칠 새 얼굴이 부쩍 야위셨네요. 두 눈은 감겨 있었지만 왼쪽 눈은 다래끼가 난 게 보이더군요. 입을 다물지 못해 벌리고 계시는 아빠. 입술이 부르트는 바람에 매일 립밤을 발라주실 텐데도 입술이 많이 상해 보였어요. 몇 번째 사진으로만 보는 아빠의 모습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고모도, 더 이상 아무 말씀을 하지 못하셨어요.


비록 아빠를 볼 순 없지만, 저는 병원을 왠지 떠날 수가 없습니다. 고모가 가신 뒤로도 저는 병원 로비에 앉아있어요. 엄마도 하루 종일 병원에 계시니, 가끔 저 보러 내려오시면 조금이나마 덜 적적하실 것 같고요. 아빠가 의식을 회복하실 수 없을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아빠를 '기다린다'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거든요.

 



저기 아무도 타지 않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이네요. 그래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꼭 아빠 같아 보여요. 끊임없이 호흡을 하고 수염이 자라는데도 아무런 의식이 없는 아빠. 그래도 분명 신체의 기능은 정상적인데 아무런 자극도 듣지 않고 아무런 눈빛도 없으시네요.


마침 경비 아저씨가 에스컬레이터를 꺼버립니다. 아무도 타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는 움직일 필요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정지시켜버리는 모습이 오늘따라 왜 그리도 매정하게 느껴질까요. 조금만 더 켜 두지. 그래도 혹시나 사람이 다닐 수도 있는데... 희망이 없어 보여도, 그래도 혹시나 아빠가 의식을 되찾으실 수도 있는데...



병원 로비의 밤


오후 9시, 고요한 밤입니다. 환자복을 입고 걷기 운동을 하는 환자들이 몇몇 보이고, 퇴근하는 의사들도 보이고, 교대하는 경비 아저씨도 보이네요. 병원의 일상이란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는 것 같으면서도, 고개를 돌려보면 창문 밖으로는 쉴 새 없이 응급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이 전투의 현장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혈압을 재고, 무슨무슨 수치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알람 소리가 울리는 병실의 밤 또한 소강상태의 전투 현장입니다. 한편 병원 로비의 밤이란, 마치 태풍 전야처럼 전방을 주시하는 불침번의 그것입니다.


불쾌한 고요. 기다림이란 미명 하에 그저 시간을 흘러 보낼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나의 무기는 인내심뿐. 결코 안심할 수 없는 평온함을 뒤로하고, 이젠 가야 할 때입니다. 잠실나루를 향해- 일부러 산책길을 택해 걷기를 택하겠지요. 오늘을 반추해 보렵니다. 어제와 같이 하염없이 병원 로비에서 보낸 어느 하루를, 그래도 의미 있었다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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