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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l 05. 2024

흐린 날엔 김치볶음밥

우당탕탕 집밥 일기


애증의 볶음밥


식당 메뉴 중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볶음밥. 잡채밥, 김치볶음밥을 비롯해 등 각종 볶음밥을 사 먹는 건 돈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건 내가 '한 그릇 음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취생 때는 야채 섭취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외식을 한다면 반찬 있는 식당을 선호했고, 차라리 구내식당이 최고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볶음밥이면 아주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볶음밥 러버'라는 사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이 없는 날, 혼잣말처럼 "볶음밥 먹을까?"라고 말했다가, "어우 너무 좋죠!"라는 말이 들려왔다.


덕분에 종종 볶음밥을 해 먹게 되었다. 하지만 매번 볶음밥을 만들 때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라는 일말의 죄책감(?)에 휩싸이곤 한다. 기름을 많이 둘러야만 맛있어지는 볶음밥의 특성상 떨리는 손으로 기름을 두를 수밖에 없었고, 미세먼지를 극혐 하는 나로서는 볶을 때 나오는 보이지 않는 연기가 너무너무 거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난 볶음밥을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왠지 그냥.. 맛있다. 요리를 시작하고 나서는 반찬 없는 날, 자투리 야채 털어서 간단히 해 먹기엔 볶음밥 만한 음식이 없다. 남편 식성 따라간다더니... 언젠가 내가 볶음밥을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있다.



나만의 레시피로


나의 모든 첫 요리의 시작은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에서 비롯되었다. 막 결혼했을 때, 요리를 잘하는 나의 친구가 추천해 준 것으로, 기초부터 차근차근해보라고 이 책을 선물해 줬다. 현재로선 나의 유일무이한 요리책이다.


그런데 요리를 다양하게 따라 해 보니, 처음에는 레시피의 g 수까지 정확하게 계량하고 시도해 봤으나, 점점 내 입맛에 안 맞는 것들을 찾게 됐다. 특히나 김치볶음밥은 여기 나오는 레시피로 했다가 그 맛이 조금 별로였다는 대표적인 메뉴 중에 하나다. 이유는 아마 간장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춧가루도 여기 나온 대로 넣었다가 너무 매워서 호들갑을 떨었다. 너무 짜고 텁텁하고 맵고... 우리 집 고춧가루가 맵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도 김치볶음밥을 먹기로 하고 해당 페이지를 펼쳤다가 고민에 빠졌다. 지난번과 똑같이 그런 맛의 요리를 먹을 순 없다. '그래, 볶음밥은 나도 혼자서 만들 수 있어!' 용기를 내 본다. 이번에는 내 식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김치볶음밥 만들기


1. 먼저 고기. 냉동실에 얼린 칼집 삼겹살을 급히 해동한다. 한 줄을 5분이나 돌렸다가 삼겹살이 조금 익어버리긴 했지만, 가위로 열심히 잘라 준다. (사실 해동을 하고 자르니 물렁물렁해서 너무 자르기 힘들다. 언 상태에서 먼저 잘라야 할까? 다음에는 살짝 얼었을 때 잘라봐야지.)


2. 그다음 야채. 당근 1/4과 양파 1/2을 다져 준다. 우리 집 상비군들이다. 아직까지 다지는 게 서툴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께서 선물해 주신 야채 다짐 기구를 사용하고 나서부터 훨씬 다지는 게 편해졌다. 대략 이렇게 생긴 기계다. (아래 링크 참고, 광고 아님.) 초보 주부는 이거 쓰고 나서 완전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후문이다!


3. 고기를 볶는다. 삼겹살에 기름이 많지만 그래도 기름을 살짝 둘러본다. 눈 질끈 타임이다. 그러고 나서 당근과 양파를 투하한다. 양파가 살짝 익을 때쯤 김치 한 국자를 넣어 준다. 백종원 책에 따르면, 김치를 너무 오래 볶으면 너무 익어 씹는 맛이 사라진다고 하여 2/3만 볶는 게 좋다고 한다.


4. (간장과 고춧가루 대신) 김치 국물을 넣어 준다. 다행히 신김치가 끝물이라 국물이 자작하게 남아 있었다. 너무 신 맛이 날까 봐 스테비아 1t 넣어 줬다. 살짝 감칠맛을 돋우기 위해 밑반찬으로 남아 있던 멸치볶음을 더했다. 평소에 신랑이 멸치볶음을 잘 먹지 않으니, 이럴 때 먹여야지. 그러고 나서 마무리로 참기름을 둘러 준다.


5. 아참, 그러고 보니 사실 볶음밥을 만들기 전에 먼저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뒀다. 프라이팬을 두  쓰면 설거지가 많아지니까... 요즘 요령이 늘었다. 하지만 계란 뒤집기 요령은 아직도 멀었다. 이번에는 안 터뜨리고 잘 뒤집나 했는데, 역시나 한 개는 실패.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터진 건 내 거, 안 터진 건 남편 걸로 아껴두자.



국 대신 물?


김치볶음밥은 만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국물이 없다는 게 문제. 만들어 둔 오이냉국이 있긴 하지만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집에 어묵도 없고... 그러다가 번뜩 생각난 것이 물만두다. '물'이 많은 거니까! ㅎㅎ


물만두는 그냥 끓는 물에 양껏 넣고 3분 30초를 더 끓여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 찬 물에 헹궈주는 것이다. 정수기 물로 헹구느라 찬 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헹구고 나면 겉이 코팅한 듯 매끈매끈해지면서 서로 달라붙지 않는다. 다 알고 있는 거였지만 나만 몰랐던 포인트일 수도 있겠다.  


최근에 산 홈플러스 PB상품 물만두인데, 생각보다 통통하고 맛이 괜찮았다. (광고 아님.) 한동안 각종 만두 상품들에 홀려서 김치만두새우만두얇은피만두감자만두 이것저것 종류별로 많이도 먹어보기도 했지. 근데 다시 물만두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을 때 유일하게 동생이랑 같이 해 먹던 요리, 물만두. 그 맛이 생각나는 것 같아 요즘 너무 물만두가 맛있다.


 



나) 물만두 좋아~
신랑) 간장 직접 만든 거예요?
나) 그럼요~ 근데 식초가 좀 많나?
신랑) 아니 괜찮아요.ㅎㅎ


신랑) 어, 이건 뭐지? 멸치?
나) 멸치 맞아요. 간 좀 하려고 넣었어요.
신랑) 으응?음... 근데...
나) 너무 맛있다고요? 김치볶음밥 맛있죠?
신랑) 네 맛있어요... (울먹)


20240703 저녁 집밥: 김치볶음밥 & 물만두
-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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