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며느리 일기 (2)
옛날에 엄마는 그릇을 돌려줄 때 빈 그릇으로 주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본가에 살 때 옆집 아주머니께서 맛있는 음식을 주실 때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나 동지 때면 팥죽을 쑤어 우리 집에도 나눠주셨다.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의 친절에 무척 고마워하시면서도 그릇을 돌려주실 때 매번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받으셨다. 아주머니의 요리솜씨가 뛰어나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에 상응하는 음식을 드리지 못해 미안하셨다. 대신 엄마는 주로 귀한 과일 같은 걸로 빈 그릇을 채워 돌려드렸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의 가르침을 따라 나도 어느 누군가 음식을 통에 담아 나눠 주면 꼭 그 통을 채워 주는 게 습관이 되었다. 요즘 세상에 음식을 집에 있는 그릇에 담아주는 정성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그 누군가에게 정성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하다못해 과자라도 채워서 돌려주곤 했다. 음식으로 가득 찬 통을 돌려받으면 상대방이 허전한 마음을 느끼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나 또한 마음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 같았다.
문제는 시어머니께 반찬통을 받았을 때다.
어머님은 여느 어머님들과 같이 우리 두 사람의 끼니 걱정을 하시는 분이다. 그러면서도 밑반찬은 일일이 만들기 힘들다며 해 먹지 말고 반찬을 사 먹으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말씀하셨지, 반찬은 사 먹으라고) 가끔씩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주셔서 감사히 잘 먹기만 했던 나. 하루는 요즘도 반찬 잘 사 먹고 지내냐고 물어보셔서 기다렸다는 듯이 전날 마트에 갔던 얘기를 했다.
“요즘 물가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어제 마트에서 보니까 명태회무침인가 엄청 비싸더라고요? 어휴 한 팩에 만 원이나 하길래 못 샀어요.”
“그래~ 그거 비싸. 근데 보니까 코스트코는 싸더라. 맞다, 우리 집에 그거 있는데. 좀 들고 가라.”
내 딴에는 고물가 시대의 모험담(?)처럼 들려드린 이야기였는데, 결론은 ‘반찬을 못 샀다’라는 것이지. 말씀 드려놓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 손에는 반찬통이 들려 있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 하나도 못 사주는 며느리에게 어머님은 대신 반찬을 사 주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어머님께서 손수 하신 반찬은 아니라서 나의 죄송함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야곰야곰 어머님이 주신 비싼 명태회무침을 꺼내먹길 어언 일주일째. 마침내 반찬통 바닥이 드러났다. 그릇을 설거지하면서 그제야 이 빈 통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줄곧 어머님이 반찬을 사다 주셔서 빈 그릇을 받아볼 일이 없었는데, 이제 어머님의 그릇을 돌려드려야 하는 순간이 왔구나. 여태까지와 다르게 빈 통을 채워 드려야 하는 게 적잖이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그냥 빈 그릇을 돌려드릴까 하다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반찬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내 머리 뒤로 왠지 우리 (친정) 엄마가 ‘가정교육 못 받은 티 내면 안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친구들한테 받은 그릇마냥 과자를 담아드릴 수도 없고. 어떡하지? 며칠 동안 빈 그릇을 뭘로 채워드릴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했던 반찬이 기억났다. 쑥갓두부무침이라고, 비교적 만들기 간단하고 맵고 짠 음식이 아니어서 어머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았다.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한 반찬을 떠올린 것 같아 꽤나 기뻤다. 이번 기회에 요리 못하는 며느리 이미지를 만회하리라 생각했다.
지난번 만들었을 때와 달리 온갖 정성을 다해 반찬을 만들었다. 쑥갓 데칠 땐 초 단위로 타이머를 재고 쑥갓 줄기는 더 잘게 자른 데다가 두부도 물기를 쏙 뺐다. 저번에는 깨소금이 없어 그냥 통깨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숟가락으로나마 깨를 열심히 갈아 넣었다. 들기름도 풍성하게 넣고 조물조물, 적당히 포슬하게, 마지막 통깨로 마무리. 먹어보니 고소하고 아삭하고 싱겁고 내 입맛에는 딱 맞게 맛있는 반찬이 완성됐다. 이제 화룡점정은 정성스레 만든 이 반찬을 어머님이 주신 반찬통에 담는 것이다. 아주 그럴듯하군. 완벽해!
아이스팩에 반찬그릇을 담아 내 단골가방 에코백에 넣고 시댁에 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빨리 어머님께 그릇을 돌려 드릴 생각에 신이 날 지경이었다. 마음이 급해 호들갑을 떨며 준비를 했다. 가방이 식탁에서 툭 떨어져서 에구머니 놀랐지만 툭툭 털고, 어서 빨리 가자고 남편을 재촉했다. 시댁에 가는 차 안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들기름을 듬뿍 넣길 잘했다며 스스로 만족스러워해마지않았다.
“어머님, 지난번에 주신 반찬그릇, 여기 돌려드리려고 다시 가져왔,,, 뜨아! 이게 뭐야!”
아이스팩 안에는 뚜껑이 분리되어 반찬이 다 널브러져 있었다. 사기그릇 반찬통이 와장창 깨져 버렸던 것이다. 쑥갓두부무침도 물론 반찬통이니 반찬이니 둘 다 정신없이 망가진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얼음처럼 정지한 채로 말을 잇지 못하고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어머님이 깜짝 놀라서 달려오셨고 남편도 달려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까 식탁에서 가방이 떨어졌을 때 반찬그릇이 깨진 모양이었다. 그래 이상하게 들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더라니…….
반찬그릇을 더 빛나게 해 드리려고 반찬을 해 온 건데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어머님께 깨진 그릇을 드리게 되어 면목이 없었다. 게다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것도 너무 속상했다.
“나도 설거지하면서 그릇 많이 깬다. 걱정 마라.”
“…….”
“근데 그걸 왜 그러고 있니. 그걸 왜 손대~!”
그 순간 나는 내가 만든 반찬이 너무 아까워 조금만이라도 건져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쑥갓두부무침 사이로 이미 그릇은 너무 조각조각 나 버려 도저히 분리할 수가 없었다. 그걸 보고 어머님은 깨진 그릇 만지지 말라시며 아이스팩 째로 뺐어 가셨던 것이다. 바보 같이 울상을 짓고 있는 내가 더 바보 같은 느낌이지만 정말 표정관리를 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어머님도 깨진 그릇을 만지시는 게 위험해 보여 나는 그냥 아이스팩에 담겨 있는 채로 버리자고 말씀드렸다. 뭉탱이로 버려지는 그걸 보며 마음이 와르르 주저앉는 것 같았다.
만회를 하기는커녕, 사고만 치고 말았던 그날. 어머님은 반찬그릇 똑같은 거 많으시다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심지어 그날도 먹거리를 싸주셨는데, 똑같은 반찬통에 담아서 “이건 돌려주지 말고 그냥 너 해라”라고 안겨 주셨다. 또 반찬통 돌려줄까 봐, 며느리의 오지랖을 원천봉쇄하신 우리 현명하신 어머님.
남편은 이 일도 웃기다며 옆에서 염장을 질렀다. 약 올랐지만 나도 씁쓸하게 웃긴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게 끝이었으면 좋았겠지.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을까. 설날 방문하는 걸 두고 남편이 형님(누나)이랑 연락을 하면서 문득 내게 말했다.
“근데 엄마가 과태료 10만 원 나왔대요. 그 예전에 반찬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알고 보니 일반 쓰레기(깨진 반찬그릇)에 음식물 쓰레기(쑥갓두부무침)를 혼합해서 버렸다고 그게 과태료가 부과된 것이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그걸 웃으면서 말하는 남편에게 확 부아가 치밀었다. 내면의 소리가 밖으로까지 튀어나왔다. “아니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요~!”
수화기 너머로 어머님은 그걸 말한 형님께 왜 말했냐고 뭐라 하셨다고 한다. 그걸 또 고자질한 우리 남편이 제일 밉네 그냥. 온통 다 짜증이 났지만 제일 짜증이 난 건 나다. 나는 왜 쓸데없이 반찬을 만들어가지고 왜 또 그걸 깨뜨려가지고 왜 또 그게 쓰레기 단속에 걸려가지고 어머님을 힘들게 할까.
아무래도 어머님이랑 나랑 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내린 결론이다. 뭔가 어머님께 잘해 드리려 할 때마다 더 이상하고 안 좋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어머님이랑 나는 안 맞는 게 틀림없어. 그거 말고는 이유가 없어. 분명히 그런 거란 말이지. 아니면 말이 안 된단 말이지.
씁쓸하다, 그렇다. 오늘따라 유난히 추운 것 같다. 햇살이 눈부신 것 같기도 하고.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