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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주를 함께 한 나의 주치의 선생님

어느 임신 이야기

by 별별


오늘은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한파가 몰아친다고 한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집에 콕 처박혀 있을 테지만, 일찍부터 나가봐야 했다. 오늘은 산부인과에 들러 선생님을 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약 없이 가는 날엔 9시도 되기 전에 도착해야 그나마 대기줄이 덜하다. 10분 늦게 일어났는데 추운 날씨에 옷을 더 껴입느라 몸도 마음도 부산한 아침이었다.


어제부터 뭘 사가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아침 일찍 문을 연 파리바게뜨에 들러 간단히 빵을 사가기로 한다. 선물은 내가 제일 맛있어 보이는 꿀 롤케이크를 샀다. 바로 앞에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아쉽게도 한참 기다려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걸어갔다. 요리조리 햇살이 비치는 곳을 따라 걸어가는 길, 내 모습이 스스로 펭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젠 패딩을 입어도 제법 배가 볼록해서 펭귄처럼 뒤뚱뒤뚱, 종종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마침내 도착한 산부인과는 의외로 한산했다. 아참, 내가 일찍 도착했지. 접수를 하면서, 간호사는 2주 전에 왔는데 오늘 예약도 없이 왜 오셨냐고 묻는다. 나는 진료는 보지 않고 S 선생님을 뵈러 왔다고 말했다.


“오늘 S선생님이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하셔서요,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접수 후 대기자 명단 화면을 보니 평소답지 않게 S선생님의 대기줄은 무척 짧았다. 이 병원엔 여러 의사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유독 S선생님은 인기가 많아 대기 환자가 기가 막히게 늘어서 있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짧은 대기줄에 선생님의 마지막 날임을 실감하게 된다. 선생님께 뭘 물어보지... 일단 감사 인사를 드리고... 새해 인사를 드리고... 또... 그러던 중 어느새 내 이름이 호명됐다. 드디어 만난 S 선생님은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주셨다.


“선생님,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먼저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 마음속으로 생각해 놓곤, 대뜸 원망 섞인 말부터 나왔다. 그러다가 눈물도 찔끔 났다. 어, 이게 아닌데...




S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내가 임신 5주 차였을 때다.


갑작스러운 하혈로 급하게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던 날,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반복된 경험으로 ‘또다시 유산인가 보다.’라며 이미 모든 걸 단정 짓고 난 뒤였다. 임태기를 확인했지만 아직 병원 방문을 하지 않았던 나는, 그래서 첫 진료를 어느 의사 선생님으로 보시겠냐는 물음에 “그냥 아무나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내 상태를 보고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선 우리 병원에서 제일 신중하게 잘 봐주시는 분이라며 S 선생님을 추천했다.


S선생님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계속 울보였다. 아직 유산이 확실한 것도 아닌데 앞으로 영영 유산만 하게 될까 봐, 너무 겁이 났다. 여느 의사 선생님들이 그랬듯 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S선생님은 입원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일 입원 수속을 밟았다.



이틀 연속 유산방지 주사를 맞고 질정제를 넣으니 거짓말같이 하혈이 멈췄다. 물론 입원을 하여 꼼짝 않고 절대적 안정을 취한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울고불고 절박한 심정으로 입원을 했는데 막상 하혈이 멈추게 되니 며칠 만에 슬그머니 꾀를 부리는 마음이 생겼다. S 선생님은 분명 일주일 동안 입원하라고 하셨지만 ‘이제 괜찮은 것 같은데...’라며 심지어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아닌지 의사 선생님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입원 닷새 만에 간호사 선생님을 졸라 퇴원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날 기억으론, S 선생님이 출근하는 날이 아닌데도 응급 환자가 생겨 갑작스레 병원에 오신 날이었는데, 나까지 퇴원을 요청한다는 콜을 받아서 진료를 보러 오시게 했다. 나는 퇴원이 그냥 나갈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S 선생님은 퇴원하기 전 이상이 없는지 확실히 검진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진료실 담당 간호사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급기야 수술방까지 빌려서 마지막으로 진료를 봐주셨다.


그때 비로소 죄송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자신의 의료 조언을 듣지 않고 퇴원한다고 고집부린 환자를 위해 억지로 병원 여건을 조성해주기까지 하셨으니.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나는 쭉 담당 주치의 S 선생님을 못살게 굴었다.


진찰을 받으러 갈 때마다 항상 선생님은 걱정이었다. 나는 초반에 그렇게 위험했음에도, 그 뒤로 아기가 무사하자 좀처럼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내가 어쩜 그렇게 말을 안 듣는지... 제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피고임이 아직 보인다. 되도록 영양분 섭취를 신경 써라, 아기집이 작다. 제발 물 좀 많이 마시시라, 양수가 계속 부족하다. 의사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거였다.

“아직까지 방심하면 안 돼요. 안정 취하셔야 돼요.”


그렇게 나는 S 선생님의 관심환자가 되어 6개월을 부지런히 내원했다. 초기 이슈가 많아 많이 불안했지만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 덕분인지 마의 고비라고 볼 수 있는 (조산해도 태아 생존율이 높아지는) 28주를 넘겨 이젠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젠 통원이 익숙해질 무렵, 내원한 날 갑작스레 S 선생님이 오늘 진료를 못 보신다는 얘기와 곧 퇴사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걸 접수대에서 전해 듣게 되어 더더욱 청천벽력 같았던 소식. 분만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으로 오직 S 선생님을 믿고 있었는데, 이젠 어떻게 하지? 갑자기 출산에 대한 불안감까지 엄습해 오는 것이다.


다른 주치의 선생님으로 변경하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선생님을 꼭 뵈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 언제시냐고 물어봤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냥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 S 선생님은 차트상 이상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초음파 진료를 한번 봐 보자고 하셨다. 마치 옛날에 입원했을 때처럼, 꼭 그렇게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되는 분이셨다. 나도 그게 마음이 편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꼼꼼하게 진료를 봐주셨다. 이제 점점 아기 얼굴이 형체를 잡았다고, 엄마 아빠 반반 닮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어느새 아빠 얼굴도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 옛날에 어쩌다 보니 수술방에서 아기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또다시 심장소리를 들려주셨다. 아기는 그때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힘 있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선생님, 저 입원했을 때 잘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고요...”

“제가 끝까지 봐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하죠.”


아직은 안심을 말라며 8주가 될 때까지 꼭 절대 안정을 취하라던 선생님. 또다시 12주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하시던 선생님. 정말로 안심하려면 28주까지는 잘 지내야 한다던 선생님. 그렇게 항상 지겨울 정도로 나를 조심시키던 주치의 선생님은 우연찮게도 딱 그 28주가 지나자 떠나게 되셨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순산하시고요, 꼭 건강하세요.”


진료실을 떠나기까지 단 두세 걸음밖에 되지 않았지만 참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많이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작별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러운 마음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떠나가지만 앞으로 나는 뱃속에 아기를 데리고 남은 몇 달을 헤쳐 나가야 한다. 아직 임신이란 게 뭐든 하나같이 불안하고 걱정스러워서 더욱더 S 선생님과의 이별이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지. 의사 선생님 말은 안 듣고 마음껏 안심하고 지내던 철없는 모습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이제 정말 시작이다. 어느 끝에 다다르자 새로운 시작이 보이는 느낌이다. 병원을 떠나는 길, 유난히 춥게 느껴졌지만 유난히 더 선명한 하늘이 눈에 띄었다. 다시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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