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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아이디를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

by 별별


“어? 너 브런치 해? 아이디 알려줘.”


친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당황했지만 에둘러 말했다.


“근데 나 주변에 브런치 하는 거 말 안 해서 아는 사람들 거의 없어.”


이 정도로 말하면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졌고 문자로 ‘안녕, 또 보자.’라며 일상적인 작별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말미에 덧붙인 말.


[브런치 아이디 알려주시오 ㅋㅋ]


아잇, 진짜. 나는 애써 마지막 문자를 읽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그녀는 콘서트 티켓이 생겼다며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뭐? 그걸 나보고 같이 가자고? 정말 그래도 돼? 남편은?”

“응~ 남편은 콘서트 안 좋아해서 너랑 둘이 가래. 괜찮아.”

“헉, 너무 고맙다야. 임윤찬 좋아해서 유튜브로 자주 들었는데 드디어 실황으로 보다니!”

“좋아해서 다행이다. 너 근데 브런치 아이디 진짜 안 알려줄 거야?”


녀석, 집요하구나. 아무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다 싶었다.


“근데 나 솔직히 말해서 아이디 안 가르쳐주고 싶다. 내 글을 지인들이 보는 게 너무 부끄러워.”

“그게 뭐가 부끄러워~! 너 자꾸 그러면 콘서트 티켓이랑 브런치 아이디랑 바꿔야겠다.”

“야...... (치사빵꾸네 완전.)”




나를 아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브런치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제나 글쓰기는 부끄러운 것이었고, 그래서 남들 몰래 글을 쓰고 싶었다.


왜 몰래 글을 쓰는 걸까.


우선 나는 글을 쓸 때 지나치게 솔직해진다. 나도 놀랄 만큼, 글을 쓰면서 술술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걸 글로 포장하기는커녕, 내 글은 쓰면 쓸수록 모든 걸 까발리려는 속도감이 붙어 나는 가끔씩 급류와 같이 밀어닥치는 고백의 언어에 휩쓸릴 때가 많다. 그래서 글을 다 쓰고 나면 마음은 후련해지지만, 남들이 보는 내가 물에 젖은 생쥐처럼 초라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할 때도 있다.

특히 내 지나간 연애이야기를 썼을 때는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엄마가 아시면 놀랄 만한 비밀 이야기들이었고, 투병하시는 아빠를 바라보던 심정을 고백할 땐 그 깊은 슬픔을 남들에겐 들키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었다. 글을 쓸 때 솔직했던 건 어쩌면 힘들고 무너질 것 같은 내면을 부여잡기 위해, 내가 겉으로나마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내가 글을 몰래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타인이 시선은 내게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과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남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을 텐데도, 내가 글을 쓰든 안 쓰든 우리 모두의 일상에 아무련 변화가 없을 텐데도, 나는 참 걱정이 많다.


‘언젠가는 네가 책을 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친구의 말. ‘언니는 글을 잘 쓰잖아요.’라던 어느 후배의 칭찬. 어쩌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급 피로감이 들면서 더욱더 말을 아끼게 된다. 나는 게을러서 책 같은 건 평생 못 낼 것 같은데 어쩌지? 내 글은 보잘것없는 것 같은데 왜 잘 썼다고 말하는 거지? 이 소소한 칭찬에도 나는 과한 부담감을 느낀다. 그들은 그저 좋은 뜻으로, 지나가면서 해준 말들일 텐데도, 나는 훗날 책을 써야만 하고 글을 더 잘 써야만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솔직한 고민상담은 익명 게시판에 술술 하는 것처럼, 나는 그래서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담아 글을 발행한다. 내 이야기가 읽히는 게 상관없고 부담 없었으면 좋겠다는 오직 이기적인 마음이다. 여태껏 그래왔으면서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는데, 글쎄, 이게 바람직한 마음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번은 큰아버지가 내 글을 보았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다. 아버지에 관한 글이 우연히 큰아버지에게 흘러들어 갔던 것이다. 그때 난, 너무 놀랐다. 어느 글에는 큰아버지와 아빠의 갈등도 써 놓았을 텐데 그것까지 다 보셨겠지 아마. 하지만 그땐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던 터라 그냥 넘기고 말았다.

가끔 지인들이 어떻게 알고 브런치에서 날 찾아냈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애써 괜찮은 척 하지만 괜찮지 않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기억에서 떨쳐 버린다. 그것이 내가 브런치를 유지하며 글을 쓰는 방법이다.


어쩌면 지금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솔직하게 부담 없이 글을 쓰기 위해선 이상한 마음을 먹는 수밖에 없다. ‘지인들이 내 글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허공에 대고 글을 쓰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독야청청 글을 쓰는 것이다.


이번에 이 끈질긴 친구에게는 브런치 아이디를 알려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큰 맘을 먹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론 친구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낸다면 그것은 곧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된다. 이렇게까지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지내려고 하는 건... 아직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미생이기 때문이겠지.




세상에 나를 위한 비밀 하나 쯤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비밀을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게 문제. 내게 글을 쓴다는 건 대나무밭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지금은 글을 쓰는 나와 일상적인 내가 분리돼 있지만, 언젠가는 글쓴이와 내가 동일한 사람으로 포개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날은 아마도 내가 좀 더 성숙하게 솔직함을 적당히 누르며 글을 쓰는 때일 것이고, 그날은 아마도 지인들에게 내가 어떤 식으로 비치는지 신경 쓰지 않으며 타인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때일 것이다.


내 친구는 이 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부탁하건대, 친구야. 절대 댓글은 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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