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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데 시어머니 골탕 먹이는 며느리

우당탕탕 며느리 일기 (1)

by 별별


도대체 몇 번째인가. 어림잡아 한 세 번은 되는 것 같다. 매번 시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며느리가 되어 버렸다. 어머님은 이제 포기하신 듯하다. 남편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는다. 웃어...? 웃을 일이 아닌데...


첫 번째 이야기




사건의 발단은 작년 설이었다. 시댁에 처음으로 명절 선물을 준비하면서 어머님께는 화장품을 드리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너무너무 고민했다. 어머님은 우리 결혼식 때도 바지를 입고 오실 정도로 패션센스가 남다르신 분이라서 뷰티 용품을 고르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멋쟁이 어머님께 화장품 선물이라면 적어도 평타는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설날에 어울리는 화장품, 설화수 선물세트를 샀다. 친정 엄마도 사드린 적 없던 비싼 브랜드였다. (이참에 우리 엄마도 사드려야겠다 싶었다.) 부담스러운 가격에 몇 주 전부터 라이브 방송에 알림 설정까지 하고 참여하면서 무사히 구매완료! 도착한 선물의 어여쁜 주황빛 선물용 포장 보자기를 보니 어찌나 곱고 예쁘던지, 이런 선물을 받으시면 어머님께서 좋아하시겠지? 스스로 기특해했다.


사실 아버님께는 겨우 들기름 정도 드렸는데 어머님께만은 고급 선물을 드리는 건 그만큼 어머님을 타깃으로 하는 계산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집안의 실세(?) 셨기 때문에, 어머님 환심을 산다면 앞으로 시집살이가 편할 것이란 나의 뻔한 계획이었다.


선물을 드릴 때 어머님은 은근히 좋아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형님(시누이)께서 거들어주셨다. “아유, 엄마, 설화수 비싼 화장품 써 보네.” 나도 신이 나서 고오급스러운 포장이 예쁘지 않냐며 어머님 꼭 써보시라고 샀다며 수다스럽게 선물을 자랑했다. 어머님도 비싼 화장품은 써본 적 없으시다며 “잘 쓸게. 고맙다.” 이 한 마디를 해주셨는데, 그것만으로도 명절선물 대작전이 성공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고 나서 한 달쯤 지났나? 이번엔 내가 필요한 화장품을 사면서 어머님도 사 드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거 어머님께도 사 드릴까요?” 남편한테 말했을 때 이상하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사지 마요, 사지 마.” 남편의 만류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마침 세일도 하고 엄마도 사 드릴 건데 어머님도 사 드리고 그럼 얼마나 좋냐며, 오히려 그를 타박했다. 나는 막무가내로 구매할 기색이었다.


“아니 아니, 사지 마요 제발. 엄마 사실 지난번에 화장품 드린 것 때문에 피부과 가셨어요. 그러니까... 아, 이거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남편의 말에 정말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그 비싸다고 자랑자랑했던 화장품이 어머님 피부에 트러블을 일으켰던 모양이었다. 내가 드린 화장품 덕분에 난생처음 피부과를 가셨고 한동안 내원하시느라 20만 원 넘게 썼다고……. 화장품 가격이랑 맞먹는 치료비도 그렇고, 하필이면 어머님 피부가 그렇게 순하고 약할 줄 몰랐고, 어머님이 내가 미안해할까 봐 그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으셨던 게 하나같이 모두 다 충격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명절 선물 잘 드렸다며 다음에 또 화장품 드릴 생각에 신이 나 있었는데 말이다.

어머님께 너무 죄송했지만 차마 죄송하다고 말씀드릴 수조차 없었다. 어머님께서 비밀로 부치신 것이었기에, 나도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전전긍긍하며 풀이 죽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어머님께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일까. 결혼 후 첫 선물이라 많이 걱정했지만 선물을 고민하는 게 힘들어서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효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센스 있는 선물이 되길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대폭망...


사실 어머님께서 바란 건 비싸고 고급스러운 선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님은 비싼 화장품을 쓰지도 않으신다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사드리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설날 화장품을 선물 받으실 때 나는 어머님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어머님께선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내 앞선 마음에 어머님께서 좋아하셨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아니, 그 정도 선물이면 어머님께서 좋아하셔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마음속으로 지나치게 오버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을 위한 선물이었다기보다 며느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선물이었다는 걸.



그렇게 나의 ‘어머님께 잘 보이기’는 대략 난감하게도 ‘작전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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