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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보름, 크리에이터 배지의 무거움

by 별별


새해가 되면 꾸준히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지만 그 마음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도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자’는 계획이었는데, 하루를 빼먹은 날 ‘그래, 이틀에 한 번씩 쓰자’라며 계획을 변경했다가, 사흘을 빼먹은 날 ‘현실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야겠어’라며 다시 수정했다. 그런데 이렇게 잦은 변경이 있는 게 과연 계획인가?


마음 한편이 무거우면서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했다. 적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쓰겠다는 생각이 변함없음을 위안으로 삼았다. 작심삼일도 백 번을 반복하면 적어도 백 번은 작심하고 행하는 거겠지. 이렇게 정신승리로 무장을 하던 터였다.


그러던 오늘, 갑작스러운 알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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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에 선정됐다는 거지? 뭘 신청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브런치에서 내부적으로 선정하는 ‘스토리 크리에이터’란 이름의 작가 명칭이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전문성, 구독자 수가 많은 영향력, 규칙적으로 업로드하는 활동성, 다양한 활동을 인증한 공신력 등을 고려하여 선정된다는 기준이 있었다. 일단 선정되면 그 혜택으로 작가 프로필에 ‘스토리 크리에이터’ 배지가 노출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가끔 어떤 브런치 작가들 프로필에는 이런 배지가 붙어있는 걸 보았다.


얼떨떨한 기분이다. 크리에이터 배지는 책 한 권쯤은 내는 사람들에게나 달아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 요즘 나도 모르게 조회수가 잘 나가는 글이 있었나?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브런치를 시작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공로상도 아니고) 갑자기 크리에이터 선정 기준이 유연하게 바뀌었나? (그나마 유력한...)


갑자기 나도 모르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선정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조금은 당황스럽고... 그래, 사실 마음이 무겁다. 하필이면 오늘도 ‘글을 써야지, 써야 하는데, 쓰긴 하는데, 내일 쓸까….’라며 글쓰기의 다짐이 흐릿해질 무렵 이런 소식을 접하니 그럴 만도 하다. 저벅저벅 무거운 눈을 헤치는 것처럼 나는 스스로 마음을 훑는다. 글쓰기에 게을렀고 계획을 수정한다는 명목으로 게으름을 합리화시켰던 내가 갑자기 초라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소식에 설레다니, 허영에 가득 찬 마음을 반추하게 된다. 내게 이 크리에이터 배지는 작심삼일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구나.




초심. 초심을 찾자. 어떤 연유로 정초부터 글쓰기를 다짐했는지,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작년에 직장을 힘들게 그만두었을 때, 나는 더 이상 나를 소모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꽉 막힌 일상과 피곤과 우울로 가득 찼던 매일매일, 내가 간절히 바랐던 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를 해방하는 출구는 바로 글쓰기라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혼자 일기를 쓸 때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있었고 글을 쓴다는 그 자체로 자유로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 없고 욕심 없는 글쓰기로 내 본모습을 찾고 싶었다. 또한 내 결정적인 약점인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일단 쓰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외부로부터의 자유로움은 글쓰기로, 내 안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꾸준히 쓰기로 추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더불어 아빠의 말씀도 잊지 않는다. 아빠는 내가 글을 쓰길 바라셨다. 고시에 낙방하고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이 없을 때,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면 아빠는 글을 쓰라고 하셨다. 그땐 글 쓰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말처럼 느껴졌지만 요즘 내 모습을 보면 글쓰기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조언해 주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보다 근본적으로 나를 벼리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말씀해 주셨던 게 분명하다.


그래,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보자. 초심을 찾자. 느슨해진 일상에 갑작스레 찾아온 소식은 또다시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 크리에이터 배지의 무거움을 기억해야겠다. 나에게만큼은 초심을 알리는 주홍글씨처럼 새겨놓고 곱씹을 것임을 다짐하며.


작심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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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보니 오늘 밤도 새해에 보았던 보름달이 떠 있다. 보름 만에 다시 글쓰기를 꾸준히 하자고 작심하는 바, 오늘의 달을 두 눈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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