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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설마 했는데 감사합니다

by 별별


땅근!


오랜만에 익숙한 알림이 울렸다. 한동안 당근을 잊고 살았는데 말이야. 맞다, 아직도 판매 중인 물건들이 있었지.


[안녕하세요? 혹시 거래 가능할까요?]


‘닭발’ 님이 물어보신 물건을 확인해 본 나는 갸우뚱했다. 그것은 팝콘통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올렸지만 팔릴 것이라곤 생각을 하지 못한 물건, 팝콘통. 아니나 다를까 처음 게시물을 올린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말을 걸어온 적 없던 물건이었다. ‘이걸 사신다고요?’ 반가운 마음도 마음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실 더 이해하기 힘든 건 그게 우리 집에 있었다는 사실부터다. 나는 팝콘을 잘 먹지 않는다. 술집에서 나오는 서비스 팝콘 정도는 먹겠지만, 영화관에서 돈 주고 사 먹는 팝콘은 아무리 캐러멜 팝콘 향기가 나를 유혹하더라도 그 가격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러니 팝콘통이 쓸모 있을 리가.

게다가 이 팝콘통은 얌전한 모양새가 아니라 몬스터주식회사라는 무슨무슨 캐릭터가 그려진 요란한(?) 것이었다. 처음에 이 통을 보고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라며 미궁으로 빠져들었던 게 생각난다.



팝콘통은 남편의 물건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의 누나, 형님이 사서 주신 것이었다고 한다. 형님은 캐릭터를 무척 좋아하신다. 여러모로 존경할 만한 점이 많은 형님이지만 온갖 캐릭터(미피, 키티, 미키마우스 등)를 사랑해 마지않는 형님의 취향은 아직까지 적응하기 힘들다. 형님은 심지어 이 팝콘통을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사셨다고 하는데, 적어도 3000엔 정도의 가격으로 사신 것으로 추정된다. 오 마이 갓.


아무튼 내가 처음 집 안에서 굴러다니던 팝콘통을 발견했을 때 느낌이란 이런 물건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을 뿐이다. 남편이 이걸 당근에 올려서 팔자고 할 땐 도대체 이런 걸 누가 사가냐며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고, 심지어 남편이 가격을 1만 원으로 책정하자고 말했을 때 나는 그냥 나눔으로 주자고 우겼다. 결국 타협해서 최종적으로 5천 원으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네 거래가능합니다.]]

[저 그럼 구매하고 싶습니다! 어디서 거래하시는 게 편하세요?]


떨리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을 때, 닭발 님은 다른 분들과 다르게 가격을 전혀 네고하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놀랐다. 이걸 정말 순순히 5천 원에 사 가신다고요? 팝콘통을 올린 지 어언 3개월이 지난 상태였다. 좋아요는 많이 받았지만 채팅으로 구매의사를 밝힌 분은 이분이 처음이다. 판매하냐고 물어봐 준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가격도 깎지 않는 쿨거래 매너라니. 갬동...


[[앗 네~ 제가 써놓은 곳이 있긴 한데 역이 더 편하시겠죠? 가까운 역 어디가 편하실까요?]]

[아...! 00역에서 거래해 주실 수 있다면 거기서 거래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장소, 시간은 모두 일사천리로 약속이 잡혔다. 오랜만에 잡힌 당근 약속에 설레는 마음으로 거래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감격스러운 마음에 소정의 선물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가끔 너무 거래가 기분 좋을 땐 작은 과자 같은 걸 끼워 드리는 편이다. 요번에는 팝콘통을 팝콘으로 채워주면 나 좀 센스 있겠지? 닭발 님이 내게 주신 감동을 똑같이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새삼 당근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누군가에겐 쓸모없다 생각되는 물건도 누군가에게는 기꺼이 가치 있는 물건이 되는 세상을 실감할 수 있다. 사실 내가 당근 앱을 시작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었는데, 그동안 이 앱을 사용하지 않았던 게 후회될 정도로 요즘은 많이 반성하고 있다.


우리는 예전부터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 운동’이나 ‘4R(Refuse, Reduce, Reuse, Recycle) 캠페인’에 동참하며 노력해 왔다. 하지만 대량소비와 폐기물발생이 나날이 정점을 찍으면서 최근 들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써 자원순환 경제를 만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보기에 당근 애플리케이션은 기술력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등에 힘입어 자원순환 사회를 이끄는 최고의 플랫폼인 것 같다. 아무튼.




“저... 당근이세요?”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수줍게 말을 걸어오신 분, 닭발 님. 알고 보니 꽤 젊은 여성 분이셨다. 그는 두 손 가득 빵을 들고 있었는데, 팝콘통을 보더니 다시 빵을 보더니 또 팝콘통과 빵을 번갈아 보더니, 멀뚱멀뚱 내게 물었다.

“빵이 여기 들어갈까요?”

“아, 그게...”


내가 팝콘통 뚜껑을 열어 안에 있는 팝콘을 보여줬더니 화들짝 놀란다.


“여기 팝콘이 들어 있어서요. 안 되겠는데요.”

“네? 팝콘이요? 어머 너무 감사해요.”


집에 돌아가 뚜껑을 딱 열면 서프라이즈~하는 선물이길 바랐는데. 어째 보여주게 된 건 아쉽지만, 반응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손 가득 빵이라서 팝콘통을 들고 갈 수가 없겠다는 것. 나는 팝콘통을 스윽 목에 걸어 드렸다. 줄이 짧아 크로스백처럼 하긴 힘들 것 같았다. 둘 다 이 상황이 좀 웃긴 듯 보였지만 웃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


닭발 님은 두 팔에 빵을 안고 목에는 팝콘통을 걸고 겨우 한 손으로 무사히 송금을 완료해 주셨다. 그리고 우린 얼른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도 원래 닭발 님과 같은 방향으로 떠나야 했지만 같이 걸으면 조금 민망할 것 같아 조금 기다리기로 한다.


곰곰이 오늘을 반추해 본다. 기분이 좋다. 그 이유는 5천 원을 벌었기 때문이고, 기분 좋게 거래한 닭발 님을 만나 메달처럼 팝콘통을 걸어드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늘도 내 나름 자원순환사회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맘이 참 뿌듯한 것 같다.


오늘도 당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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