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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Dec 17. 2016

의미있는 삶을 고민하는 그 자체로도  충분해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책하는 나에게

연말이 되니 좋은 소식들이 솔솔 풍겨져 나온다.


고향 친구가 결혼 소식을 알리고
사촌 동생이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고
어떤 친구는 대학원 논문을 끝냈고
또 한 친구는 책 집필을 끝냈다고 하며
누군가는 아이를 갖고 매일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으며
어떤 이는 직장생활을 거두고 새 출발을 준비한다.


그에 비해 나는 뚜렷한 기쁜 소식이 없다. 결혼, 대학, 아이, 직장 등, 부모님께 내 나이 또래 반가울 만한 소식들을 전해드리기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그게 좀 아쉽다.


물론 좋은 소식이 들릴 땐 정말 정말 기분이 좋다. 축하한다며 정성껏 기쁜 마음을 전한다. 멀리 서라면 그 소식을 꼭 붙잡고 지긋이 잘됐다는 생각으로 한참 동안 기뻐한다. 그러고 나서, 조금은 차분해진다. 그 시간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완벽한 이타적인 축하란 없다. 타인에 대한 감동을 살그머니 물들이는 이기적인 내 모습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된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거둔 결실을 보면서, 그들이 힘든 시간을 거쳐 응당한 기쁨을 누리는 것인데도, 지금 이맘때 내가 해야만 하는데 놓친 것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모님께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마음을 핑계로 마음이 급해지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 마음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다.


소위 말하는 '기쁜 소식'.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논문을 쓰고 책을 내고, 이직을 하고 취업을 하고... 요즘 내 나이 또래에는 기쁜 소식이 쌓여가는 시점이다. 풋풋한 기쁜 소식밖에 없는, 때 묻지 않은 한창 때다.


그런 한창때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습관적인 괴로움임을 고백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때에 2년이란 세월을 '썩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혼, 학업,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에, (과연 모두 이룰 수 있는지는 차치물론 하고)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는 타국으로 날아왔으니 말이다.


부담감.


그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러 왔음에도 꼭 어떤 '결실'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할 때가 많다. 꾸준히 일기를 써라는 주변의 당부, 언어를 배워오는 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주변의 기대 등... 많은 사람들이 내 걱정을 해주시고 기대를 해 주신다. 감사하기도 하지만, 사실 일기도 요 근래 제대로 못 쓰고 있고 언어 공부도 스트레스는 엄청 받으면서 열심히 하진 못하고 있고, 게으른 천성을 탓하며 이래저래 핑계 대는 모습이 꼭 옛날과 그대로라 민망하고 답답하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갈 것만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봉사활동 그 자체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한국에서 단순히 일과 외 시간을 내서 참여하기만 하면 됐던 이전의 봉사활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교육에 관한 아무 경험도 없는 내가 오롯이 수업을 계획하고 어쩌면 백여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 수업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적응해야만 하고, 또는 없으면 있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보잘것없는 내가 오기만을 무척 고대하셨다는 현지 학교와 학생들. 어쩌면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놓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기회에 내가 헛되이 시간을 쓰고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하거나 별 볼 일 없는 기억을 남기면 어떡하나 조바심이 난다. 이 모두가 봉사활동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뭘 그렇게 잘 해야 한단 말인가. 뭘 그렇게 이루어야 한단 말인가. 뭘 그렇게 주위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해 불안해한단 말인가. 또는 뭘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지 못해 안달이 났단 말인가. 속세는 더러워서 내가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여전히 목을 빼꼼히 내밀고 속세를 바라보고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나를 보노라면 많이 안쓰럽다. 그리고 아직 한참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봉사활동이 꼭 고상한 이상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이곳 봉사단원들도 각기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온 이는 (나를 포함해) 아무도 없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든, 경력을 단절하지 않기 위해서든, 현실에 도피하기 위해서든, 무수한 생각과 바람들 속에, 하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떠나온 사람들이다. 그 의미를 돈보다는 경험에 비중을 두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봉사활동은 너무 거창했나 보다. 그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떤 삶을 살든 의미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너무 손쉽게 '항상' 또는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찾으려 했다. 일상 속에서는 꽤나 찾기 힘들고, 이따금 찾을 수 있던 의미 있는 시간이, 봉사활동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고, 함께 희망을 꿈꾸고, 물질적으로나 물질적이 아닌 모든 면에서 도움을 주고, 새로운 시각에서 다가간 내가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 그리하여 매일같이 기쁨을 느끼고, 사소한 감동이 하루하루 쌓일 것이라는 나의 꿈과 이상. 그렇게 손쉽게 이상에 가까이 가고 싶다던 나의 욕심은, 다만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부족한 용기와 마음가짐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힘든 것이 당연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 모두가 봉사활동이란 거창한 타이틀 때문이란 생각에 심지어 더 힘들고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책임감이 때론 너무 성가시게 느껴지는 바람에, 정반대로 벗어던져버리고픈 무책임함이 엄습할 때도 있다. 나에겐 숭고한 봉사정신 같은 건 너무 부족해 보인다 - 진중한 책임감이나 인생에 대한 고뇌도 별로 없다 - 나는 그저 일을 벌여놓고 수습하기에 바쁜 인간인 것 같다 - 자기 하나 어찌할 줄도 모르는 인간이 무슨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 라며 끝내 자기 비하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꼭 한 가지는 바라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나는 왜 지금 이곳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어떤 결실을 바랄 수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물론 이 물음은 진작에 나를 설득할 이유가 되었어야 하지만, 아주 먼 훗날에 나를 다독여줄 구실이라도 되어줬으면 한다.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건만, 나는 어쩌면 답이 없는 내 인생에 답을 내려달라는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을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고 스스로를 긍휼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언제쯤 이 낯설고 불안한 기색을 떨쳐낼 수 있을까. 언제쯤 이 무거운 마음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내면에 존재하는 이 부정적인 마음들을 가래를 뱉어내듯 기어이 끄집어 올리고야 말았다. 시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보는 마음은 개운치 않다. 겉으로 보는 나의 무심함과 생각 없이 보이는 활달함(?)과 달리, 내 원래 모습은 이토록 징글맞다.




아직은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나는 이곳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사람들 속에 행복한 순간도 많지만 무척 찰나처럼 느껴진다. 아직 이게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무엇이든 한국과 오버랩하며, 한국의 기억을 되살린다. 지금 내가 나인가 나비인가 싶을 정도로 장주지몽을 말하자면, 아 이게 그런 말이었구나 하며, 딱 지금의 내 모습이다.


아직 4개월 동안 현실에 발 디딜 준비만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도저히 실감할 수 없고 아직은 모든 게 상상 속에 희망과 실망이 공존하고 있어서 그렇다. 어서 빨리 임지에 파견됐으면 좋겠고 어서 빨리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똑똑히 보았으면 좋겠다.



설워라! 올해가 이렇게 가고 만다.


나의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을 견뎌내는 내 모습은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올 연말 따뜻하게 마음을 데워줄 좋은 소식들이 넘쳐난다. 말하자면 나를 버리면 온전히 따듯한 세상이다. 다시 한번, 늦었지만, 그 소식들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겨우내 황량하기 그지없는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저 나무에서 어떻게 잎이 날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의구심이 가득하지만, 봄이 오면 분명 찬란한 연둣빛 새싹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세상은 내게 거창한 이상을 말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끊임없이 두려워하되, 끊임없이 믿고 끊임없이 살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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