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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an 12. 2017

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몸을 오해하고 비로소 이해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컨디션이 꽝인 이유... 알고보니 생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평소 주기보다 열흘이나 앞당겨졌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리주기가 확 바뀌어버리니 마음까지 불안해진다. 왜 그럴까, 왜 갑자기 이럴까... 생리 양이나 통증과는 별개로, 생리 주기는 그래도 변함없는 편이었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열흘이나 이르게 생리를 하다니.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몸의 피곤함이 전해지는 듯 하다.




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이때 드는 느낌은 '비로소 나를 이해하는 느낌(또는 이해받는 느낌)'과 비슷하다. 갑자기 식욕이 당긴다거나, 갑자기 예민해진다거나, 갑자기 온몸이 쑤신다거나, 갑자기 너무 피곤해진다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내 몸의 이상징후가 보일 때가 있다. 혹시나 싶어 달력을 확인해보니, 알고보니 생리를 할 때 쯤이란 걸 알게 된다. 또는 와락 빨간 피를 확인할 때, 그걸 보면서 나는 내 몸에게 안쓰러운 마음부터 든다. '그래서 몸이 이랬구나, 그래서...' 나의 몸에게 괜한 오해를 하고 그 오해를 마침내 푼 것과 마찬가지랄까.


아마도 어떤 증상이든 생리를 시작할 때 여자들은 하나 이상의 징조를 보일 것이다. 나처럼 둔한 사람도 생리가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피곤한 느낌이 들곤 했다. 스스로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우리 몸은 그렇게 생리를 준비한다.


내가 내 몸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생각을 착각이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몸은 묵묵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작동하고 있다. 이따금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내 몸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생명체 중 하나라는 경이로운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특히 생리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한 감동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생리를 한다는 건 임신이 가능하다는 말과 동일하다. 얼마 전 가임여성 전국지도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여성으로서 생리를 한다는 건, 가임기라는 건, 여성에게 꽤나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생리를 하는 시기에는 잘 알지 못하지만 폐경기를 겪는 여성들이 겪는 심리적 박탈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나 역시 임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임신 및 출산을 겪은 친구들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가능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하......


잠시 생리하는 내 몸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생리를 한다는 건... 그닥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 성가신 현실세계에 속한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고 때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지긋지긋한 통증을 두고 빨간 피가 묻어나오는 속옷을 두고 온전히 감동을 추구한다는 건 무리다. 솔직히 말해서 생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여자이고 싶지 않다, 또는 폐경이 어서 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해본 적 있다.


'생리'라는 말도 꺼내기 어려운 세상, 사실 생리현상을 줄여 부른 생리라는 단어도 여성들이 겪는 일주일 동안 일련의 신체 변화와 배출현상, 그리고 모든 감정적 파노라마를 포괄하여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생리하는 여성들이 생리한다고 말할 때 (또는 실제로 거의 대부분 생리를 말하지 못할 때), 이는 마치 언어가 없는 원시부족이 된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이 아픔을 설명하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그저 약 먹고 쉬는 것으로 생리하는 모습을 숨기고 가리고 생리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생리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고통도 고통이거니와, 애증이라는 감정적 고통, 그리고 부족한 소통으로 인한 고통을 수반한다. 이런 고통스러움 때문에 생리에 관하여 더욱 더 생각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어쩌면 생리하는 여성들은 생리에 관한 언어가 부족해서, 생리를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능한 많은 대화를 통해, 좀 더 포괄적이거나 구체적이거나, 은유적이거나 직접적인, 가능한 많은 용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생리를 알리고 생리에 관한 이해를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함께 생리란 무엇인가, 생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좀 더 면밀히 골똘히 생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덧글.
다시 돌아가서, 내 몸은 왜 열흘이나 생리를 빨리 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몸아, 얘기해보렴. 많이 힘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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