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두산아트센터 패키지가 시작됐다
어떤 이유로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그 중에 하나로 이것을 꼽고 싶다. 바로 2016년 #두산인문극장 (테마: #모험) 이다.
처음에는 반복되는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두산아트센터 패키지 공연권을 끊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영감을 주었던 건 사실 공연보단 강연이었다. 모험을 테마로 한다지만 인문학에서 우주과학까지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대단히 깊이있는 강의가 이어졌다. 나는 덕분에 매주 해당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각종 상상이 풍성한 머리칼처럼 자라나는 느낌이었다. 초빙된 강사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지적) 탐험가들이었고 그들은 매 강연마다 나의 시야를 넓혀주고 내게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퇴근 후 종로5가까지 청계천을 걸어가는 시간. 시간에 쫓겨 뛰어가다시피 하면서도 오늘은 어떤 강연을 듣게 될까 두근거리는 마음에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심지어 영화를 보기 위해 몇 주 내리로 반차를 쓰고 회사를 나서는 길은 눈치가 보이면서도 일상에 여유를 찾자며 마음을 편히하려 애썼다. 그렇게 애쓴 것이 지금 보면 별 것 아닌데 그땐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홀로 강연을 듣는 '나를 위한 시간', 두산아트센터라는 '나를 위한 공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주는 그 자체로 즐거웠던 것 같다.
공연과 강연을 듣는 시간에서 한발 더 나아가 꾸준히 공연 및 강연 리뷰를 기록했어야 했다. 하지만 게으른 나는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후회되지만, 지금 한줄이라도 대략 복기해본다ㅡ (지난 프로그램 보기 https://goo.gl/Fs2cCQ)
홀로공연: 매니아 패키지
1. 멜리에스 일루션 에피소드
이따금 저녁에 홀로 현대미술관을 가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다. 하지만 마음만 한량이었을 뿐이지 막상 나에게 문화생활은 누리기 힘든 사치였다. 콘서트는 회사행사로 딱 한 번 가본 게 전부고 뮤지컬은 작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고 그나마 내가 좋아하던 전시회도 티켓을 끊어놓고 가지 못하거나 심지어 영화조차도 한 달에 겨우 한 번 보는 정도였다. 일상 속에서 문화충격은 커녕 문화에 발가락도 담그기 어려운 형편이라, 박복하고 건조한 나날들을 영위하며 머리도 마음도 텅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문화생활도 부지런해야 한다. 수시로 매거진을 보거나 메일링 서비스를 받으면서 좋은 공연을 찾아내는 정보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한정된 기간 안에 예매해야 하기 때문에 민첩성, 경제력까지 모두 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때그때 괜찮은 전시, 공연, 강연을 챙겨서 듣는 건 귀찮기도 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만 탓하고 있을 순 없었다. 도저히 이렇게 일상이 텅 빈 상태로 살 수 없었다. 강제로라도 뭐든 보려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큰맘먹고 구입한 것이 두산아트센터 Doosan Art Center 2016년 공연 패키지였다. 가까운 곳에서 1년 동안 8편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간편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연극 작품들이고 게다가 두산아트센터 특유의 실험정신으로 구성된 #스페이스111 (젊은 창작자 인큐베이팅 극장) 작품들이었기에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살짝 고민되었다. 용기가 부족해 같이 볼 친구들을 찾다가 나조차 긴가민가한 실험연극을 1년 동안 보라고 권유하기 미안해서 '에라이 모르겠다, 혼자서 일단 한번 보자' 하고 질렀다. 이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숙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홀로 공연' 첫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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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에스 일루션_에피소드' (2016년 두산인문극장 '모험'의 첫 번째 공연이자, 몇 년 전 대림동에서 특이한 실험 공연에 참여한 적 있었던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2016년 개막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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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에스 일루션 에피소드? 어렵게 보이는 이름이었지만 알고보니 '멜리에스'라는 19세기 한 마술사를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그는 마술사이자 영화감독이었다. 다양한 피사체와 영상기법을 동원해 환상적인 '일루션'을 보여주는 트릭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멜리에스의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작업하고 어떤 방법으로 실험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시간이었다.
멜리에스 일루션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었다. (Episode's' 라고 해야 옳지 않았을까?) 그의 작업실과 실험과정을 하나의 단편영화처럼 재구성했다. 거꾸로 돌려감기, 영상 겹치기, 마술과 결합한 영상 만들기, 영상을 편집해서 앞뒤로 갖다 붙이기 등 멜리에스의 독특한 실험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바라 본 카메라가 총 3장의 말 그림을 보면서 찍은 사진이 빠르고 반복적으로 재생되면서 마침내 '움직이는 말', 즉 '영화'가 되는 장면이었다. 의미없어 보이는 한 컷들이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가 될 때, 일상 속에 숨어있는 생명의 불씨를 끄집어낸 무언가를 보는 듯 하여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인상깊었던 것은,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보았던 행동이 알고보니 거꾸로 플레이 된 장면이라는 걸 알았을 때였다. 피묻은 가슴팍을 가리고 입에서 달걀이 나오고 짧은 막대기를 합쳐 긴 막대기를 만드는 일련의 행동이, 알고보면, 긴 막대기를 짧은 막대기 여러개로 잘라내는 것이었고, 중간중간에 달걀을 먹는 것이었고 실수로 가슴팍을 찔러 피묻은 걸 보게 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거꾸로였는지를 알 수 없었을 정도로 두 가지 일련의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사실 무엇이 '진짜 사실'이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이제 꿈인지 이제 처음인지 이게 현실인지 이게 마지막인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의자를 화면에 담고 다른 공간에서는 화면 속 의자를 플레이하면서 허구의 의자를 딛고 앉아있는 장면이라든지, 여자가 수평으로 매달려 있는 장면이라든지, 따라마신 물이 자꾸만 물병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장면이라든지, 나의 눈을 시험하는 무척 많은 에피소드들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일루션 향연'이었다.
특히 이 모든 것들이 맨 처음에 등장하는 마술사 '멜리에스'의 상상과 실험이었음을 알게될 때, 우리는 짜릿한 반전을 선사받는 즐거움마저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는 이 모든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그의 실험에 동참한 즐거운 관찰자였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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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반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이 끝나고나서, 나는 그제서야 이 공연을 이끌어갔던 이가 마술사 이은결이라는 것을 알았다. 헉 대박... 그래 이상하게 너무 마술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여성스러운 아몬드 모양의 손톱과 범상치 않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진작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나의 무딘 감각 덕분에 커튼콜 때 잽싸게 사진을 찍는 신공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지나쳐버려야 했다. 하지만 솔직히 괜찮다,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와 5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매우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기꺼이 '멜리에스'로 분한 그의 연기와 마술을 감상할 수 있었다.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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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나홀로 공연보기(#홀로공연) 그 첫 번째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준 것 같아 정말 뿌듯했다. 1년 패키지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무려 7편의 연극과 수시로 들을 수 있는 강연들이 남아 있다. 2016년 두산인문극장의 주제가 바로 '모험'인데, 내가 바로 모험가가 된 것마냥 무척 신나고 들떴다.
뭐 대단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해줘야만 '아트'인가. 살면서 처음 보는 것들과 처음 해 보는 상상들로 눈과 머리를 가득 채우며, 신기한 충격과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가 원했던 문화생활이란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정말 문화생활 제대로 했다.
2. 게임
[연극의 키워드]
- 하우스 푸어 : 영국의 극작가 마이크 버틀렛은 영국의 심각한 청년 주거난에 분노를 느끼고 작품을 썼다.
-게임의 시작 : 젋은 부부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어떤 사업가가 제안하는 게임에 참여한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그 집에서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
- 게임의 룰 : 언제 어디서든 총에 맞는다.
- 감시 : 섹스를 거부하는 남편
- 잔인함 : 점차 진화해 가는 게임.
- 거부 : "쏘지 마세요"가 적힌 상자 속에 처박힌 아이.
- 무력감 : 부부는 아이를 끄집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왜냐고?
- 게임의 종말 : 부부는 쫓겨난다.
- 죄책감 : 그리고 남은 한 사람, 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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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며 드는 질문]
1. 부부는 왜 그 집에 살 수밖에 없는가?
집을 너무너무 구하기 어려운 현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부부와 같은 조건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질문하길, 도대체 어떤 조건이었길래 이 부부는 게임을 기꺼이 택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조건이었든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고도 살 수도 있다'고 한다. 감시 때문에 겪는 박탈감, 자유를 상실한 자의 괴로움은 날이갈수록 옅어지고 인간은 무력해지는 것이다. 나는 다급해졌다. 이게 설마 진짜는 아닐 것이다. 극작가의 이러한 상상은 단지 하우스푸어의 삶이 얼마나 절박하고 아이러니한지 깨닫게 하려는 구성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니,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할까? 설마, 인간이 자유를 포기하고 진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시모를 가능성 때문에?
2. 사람들은 게임을 계속 할까?
과연 한 발에 100만원을 하는 총을 쏘며 사람들을 맞히는 게임을 할 수 있을까? 연출가(전인철)가 말하길, 직접 물어봤더니 몇 사람이 "나라면 그 돈을 주고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공연 속에서도 점점 더 험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은 너무나 당당하고 뻔뻔하다. 심지어 고객 중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도 있었는데, 그는 아이를 총으로 쏘는 것을 막는 관리인에게 "가식적이"라고 쏘아붙이며 뺨을 갈긴다. 금전을 제공한 고객의 정당한 권리라는 말로 변명하며 아이를 쏘지 못해 안달난 그녀야말로 가식적이고 분노유발자였다.
3. 사냥 영상의 의미는?
중간중간 장면이 바뀔 때마다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는 사냥 영상이 나온다. 전쟁터에서 총 맞는 장면, 각종 게임 캐릭터가 총의 과녁에 잡히는 장면, 개와 사슴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 등... 관객들은 이 일상적인 장면이 처음에 재현될 땐 낯설게 느껴지게 된다. 비로소 인간의 잔인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웃기게도 연극이 진행될 수록 점점더 그 장면은 이상야릇한 감정이 들게 한다. 처음에 토끼눈을 하고 보던 나도 나중에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연극 속 게임의 잔인함을 접하면서 우리는 잔인함을 습득해버린 것이 아닐까.
4. 관리인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관리인은 아이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나가라'고 한다. 그것은 그 집에 사는 부부에게 하는 말, '집'으로 표상되는 어떤 무엇이든 '자유가 박탈된 공간'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우리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집'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집'이라는 어떤 강박관념, 또는 물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그 부부의 무력감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무력감을 질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유로울 권리와 나아가서 나를 이루는 '나다움'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이 게임을 끝까지 지켜보던 관리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속한 게임의 현실을 직시하라, 그리고 선택하라. 결론은,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지 말고 자유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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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포인트]
1. 무대
이 연극의 무대는 매우 특이하다. 관객을 사방에 배치하고 모두의 시선은 가운데에 놓인 '집'에 집중된다. 시네토크에서 연출가 전인철이 고백하길, 관객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카메라가 되길 의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관객은 게임 속에 참여하게 되는 것. 내가 그 끔찍한 게임에 개입하고 있었던 것이란 사실이 뒤늦게 섬뜩해졌다.
2. 작가
한편 이러한 극작가의 작품은 그가 본래 의도했던 하우스 푸어 문제를 넘어서 매우 근본적인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를 건드린 것이었다. 1980년생이라는 그는 아마도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번역가
이 극본을 번역가는 어제를 떠올리며 이 "가만히 있지 말고 나가라"는 말이 세월호와 연관되어 읽혔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와 생명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4. 모험 시리즈
#2016두산인문극장 의 주제 #모험.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대박이다. 모험 시리즈를 한번이라도 접하길 추천한다. 공연/강연/전시/영화 무엇이든 좋다!http://www.doosanartcenter.com/space111/perform.asp…
(※참고로 본인은 두산아트센터 홍보지기가 아님. 저는 제돈 주고 패키지권 구입한 사람입니다. 그냥 너무 좋아서 공유!)
3.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
불필요한 움직임, 불필요한 대사가 너무 많았던 것 같은 오버 씨리어스 플레이. 브로슈어가 없었다면 감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스토리.
4. 진화론 - 극단 몸꼴
춤으로 형상화하는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하여. 춤을 느껴야하는 줄 모르고 줄거리를 탐색하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몸의 기운은 무척 생생하다. 유일하게 함께 관람한 연극.
5. 글로리아
갈등의 기억은 어떻게 뒤틀린 현실로 남게되는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갈등의 확대재생산을 보면서 굉장히 혼란스럽고 또한 섬뜩하다. 뻔뻔한 인간상,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회, 화제성만 추구하는 일부 언론, 이것이 바로 현실이기 때문에.
---------------------------------------이하 한국을 떠나오면서 아쉽게도 관람 불가.
6.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7. 썬샤인의 전사들
8. 위대한 놀이
홀로강연: 두산인문극장 '모험'
1. 다카노 히데유키 - 왜 나는 계속 탐험하는가
정신의 휴식이 필요한 저녁. 퇴근 후 부리나케 찾은 곳은 또다시 두산아트센터였다. 모험을 주제로 한 두산인문극장 강연 시리즈. (솔직히 공연이 아니라 강연이라서, 재밌을 것이라곤 기대하진 않았다.)
다카노 히데유키. 웬 일본 아저씨였다. 그는 이번 강연 주제가 재밌다며, 자기를 첫 번째 강연자로 선택한 것 자체가 '모험'이라고 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그 경험을 재미있게 쓴다"는 모토 아래 인생을 사는 인물이란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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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탐험의 차이를 아는가?
그가 내린 정의가 무척 신선해서 메모해 뒀다. 모험이란, 위험을 무릅쓴 행위 그 자체이다. 반면 탐험이란, 호기심에서 탐구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험은 그저 낯설고 위험한 지역을 몸이 다녀온 것이고, 탐험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생각의 여정 또한 충분히- 보고서로 기록하고 글쓰기로 전달하는 것을 포함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모험가라기보단 탐험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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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는가?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그의 탐험 동기는 대략 이런 식이다.
- 콩고의 신성한 호수에서 출몰한다는 '괴수 무벰베'는 진짜 존재하는 것일까?
- 내전으로 황폐한 소말리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소말릴랜드'는 도대체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 전 세계 마약의 70%가 생산되는 미얀마 지역 '골든 트라이앵글' 사람들은 모두 다 악의 무리인가? 그들의 생활은 어떨까?
그는 꼭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직접 가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직접 살아보았다. 그 결과, 그는 '상식'과 배치되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 콩고의 습지에서 발견한 고릴라, 텐트 밑에서 깔고 잔 거대한 뱀은 이론상 있을 수 없다고 일본의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분명 존재한 사실 아니었던가!
- 소말릴랜드에서는 씨족 사회끼리 분명히 합의된 규칙이 있었고 이들은 무정부상태임에도 화폐를 유통시킬 정도로 매우 안정적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잘 살고 있다'는 현실을 확인했다.
- 마약을 생산하는 골든 트라이앵글 사람들은 매일같이 고된 노동으로 농작물(양귀비)을 재배하는 농사꾼에 지나지 않았으며, 문명과 고립된 그들로서는 양귀비가 유일한 치료약으로 통했다.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었으며 '악'의 편견은 우리의 기준과는 분명 또다른 것이었다.
결국 그는 어느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직접 확인한 사실'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으며,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 어느곳에서나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선악의 기준도 마찬가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건 호기심을 직접 확인함으로써 얻은 값진 탐험의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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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끊임없이 탐험하는가?
그는 모험심이 본래 어린 남성(수컷)의 본능이라고 했다. 어디까지가 위험인지, 호기심에서 실제로 시도해 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모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을 지나 30년이 지나서도 계속 탐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의아할 때도 있단다. 하지만 왜 그런지 조금은 알겠다. 그는 탐험을 할 때마다 뇌 속이 쾌감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탐험하는 것은 일종의 중독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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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최후의 탐험지는 어디인가?
어떤 질문자가 '최후의 탐험지'는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이젠 오지 어느 곳을 가리키더라도 이미 눈앞에 훤히 그려질 정도이기에, 더이상 가고싶은 오지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한국을 방문한 것이 이번이 세번째 정도 되는데, 이렇게 가깝고 누군가에게는 매우 익숙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한국이야말로 너무 낯설고 새로운 곳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낯설고 새로움, 호기심은 개인적인 경험의 유무에 달린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꼭 오지를 탐험할 것이라는 거창한 계획이 없더라도 호기심을 품고 있는 무언가- 어느곳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먼 곳이 아니더라도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속 '최후의 탐험지'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탐험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에 처음으로 겪는 일들로 가득찬 인생을 산다. 누구나, 조금만 용기를 내면 '도전'이라고 부르는 탐험을 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인생을 탐험하는 탐험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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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나는 강연을 듣기 전 며칠 전부터 한비야의 '1그램의 용기' 책을 읽는 중이었다. 한비야도 둘째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탐험가 아닌가. 그 책에서 말하는 도전은 더이상 지구여행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또다른 도전을 겪으며 용기를 북돋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카노 히데유키의 강연을 들으며, 그리고 또 집에 오면서 한비야의 책을 읽으며, 약간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요즘 나의 주변에서 모험과 도전, 용기를 북돋는 메시지를 많이 듣는다. 우연 아닌 우연 같아서 신기하다. 이건 아무래도 탐험을 할 때라는 신의 계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2. 박상진 -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단테의 신곡은 인간의 모험을 기록한 대표적인 문학작품.
3. 윤신영 - 최초의 인류는 모험을 했을까
네안데르탈인과 구별되는 현생 인류의 모험심.
4. 이정모 - 진화 이론을 만든 탐험
진화이론에 관한 기독교인 과학자의 해설. 호쾌한 강연이었으나 역시나 답이 없는 종교와 과학이었음을.
5. 이두갑 - 낭만주의적 모험과 자연의 정복 그리고 근대세계
모험심의 부정적 발로, 식민주의로 인한 근대세계의 탄생. 우리 모두는 식민주의에 빚진 것일까?
6. 정인철 - 상상, 모험과 지도
모험의 결과물이자 모험을 자극하는 동기부여가 된 지도에 대하여.
7. 전치형 - 모험하는 로봇, 방황하는 인간
갈수록 발달하는 인공지능은 또한 인간의 모험이라 할 수 있을까?
8. 김용대 - 만물에 대한 해킹과 보안: 인터넷 시대의 모험
앞으로 우리세대가 맞이할 새로운 문제들에 대하여. 인공지능의 절대악을 구별할 수 있을까? 뇌 해킹을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9. 이관수 - 몸의 모험, 마음의 팽창: 우주 탐험
역시 지리적 모험을 넘어선 우주탐험에 대하여. 우주탐험은 또다른 식민주의적 모험일까?
홀로영화: 두산인문극장 '모험'
1. 베르너 헤어조크 - 잊혀진 꿈의 동굴
고고학 탐사 여정은 인내심 그 자체라는 걸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
2. 이호재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청춘, 방황이란 키워드를 대단히 현실적이지만 유쾌하게 보여준 로드 무비.
3. 숀 펜 - 인투 더 와일드
인간의 자연에 대한 경외와 호기심의 끝. 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적이다.
그리고... 2017년 두산아트센터 패키지
정말이지 두산아트센터 큐레이터가 누굴까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공연기획 및 큐레이션이 마음에 들었다. 아트랩, 스페이스111을 운영하며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또 얼마나 멤버십 프로그램을 알뜰살뜰 아기자기하게 운영하는지... 이런 이유로 꽤 난해한 공연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니아층이 두꺼운 것 같다.
2017년에도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패키지가 나왔다. 관심있는 분들은 꼭 신청해보길. 추후에 나올 두산인문극장도 노려봄직 하다. (아참, 공연은 유료지만 강연은 모두 무료다!) 한 가지 주제로 이어지는 깊이있고 '괜찮은' 공연 및 강연을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