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별 Sep 06. 2017

안전한 생리대를 찾아서

생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성의 몸에서 생리란, 건강의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스트레스가 쌓여도 생리 불순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나도 외국에 나와 살면서 가장 먼저 겪은 건강상 문제가 바로 생리 주기가 이 주 정도 늦어진 것이다. (아마 떠나온 곳의 고도가 높아져서일 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사용한 생리대가 엄마께서 쓰시던 '화이트'. 가장 자주 사용했던 생리대는 제일 흡수력이 좋았던 '위스퍼'. 양이 적을 때에는 순면 느낌 나는 '좋은느낌'을 사용했다. 그렇게 한 15년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기사로 위 브랜드들의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해당 제품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 2년 전부터 유기농 순면커버라고 홍보하는 '본 생리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0개월 전 외국에 나오면서부터는 면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내가 현재 쓰고 있는 면 생리대인데'giftri' 브랜드 제품이다. 선물받은 것이라서 딱히 열심히 고르고 찾아본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예쁘고 깔끔해서 만족하며 쓰고 있다.


의도치 않게 면 생리대 입문

면생리대를 처음 사게 된 계기는 내 동생이 생리통이 심했던 지라, 어딘가에서 면생리대가 생리통을 완화시켜준다는 얘기를 듣고 면생리대 세트를 사준 것이 시작이었다. (이때는 검색하면 바로 나오던 '한나패드' 제품) 동생은 그걸로 바꾸고 나서 생리통이 덜하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때 플라시보 효과라고 생각했다. 설마 생리대만 바꿨을 뿐인데 통증이 완화될 수 있을까, 까칠해진 느낌이 덜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던 중 동생이 나에게 면생리대를 선물해주면서 나도 그걸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외국에서는 더 이상 좋은 품질의 한국 생리대를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는데, 지금 이 난리가 터진 걸 보면 참 역설적이다. 생리통이 심하지 않았던 나는 생리통은 잘 모르겠고 다만 확실한 건 생리 외에 분비물이 줄어들어 팬티라이너를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됐다는 게 눈에 띄는 변화였다.



그런데 이렇게 사태가 불거지고 나니, 그나마 얼마 전부터 생리대 사용을 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그런 생리대'에 노출돼 있었고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꺼번에 몰려오는 불안함과 답답함으로 온통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거다. 혹시 모르지. 나중에는 또 면 생리대마저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터질지 어떻게 아는가. 불신이 쌓여갈 뿐이다.


유해물질이 어떤 식으로 몸을 괴롭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직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생리는 할 때 원래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고 돌이켜보았을 때 유별나게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힘들거나 했던 것이 유해물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찝찝함 뿐이다. 친구가 자궁 관련한 알 수 없는 병을 얻었던 것이 혹시 생리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어렴풋이 추측할 뿐이며, 혹시 나도 훗날 그런 병이나 암을 얻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을 떠안게 될 뿐이다.


생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솔직히 말하건대 사실 나조차 생리에, 생리대에 무관심했다. 생리대 그냥 아무거나 쓰면 되지부터 시작해서, 생리를 하기만 해도 귀찮음과 짜증이 솟구치는데 여기에 내 몸을 관찰하고 내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힘들고, 생리휴가를 쓴다던가 여성호르몬에 좋다는 음식과 약을 먹는다던가 좋은 생리대를 쓴다던가 하는, 내 몸을 위한 시간적 물질적 투자를 하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서 말인데 대부분 아무거나 생리대 제일 싸고 흡수 잘 되는 걸로만 사서 썼던 나의 무관심이 후회된다. 생리통이 심하다고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는 동생을 조금은 엄살 부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후회되고 후회된다.


"유해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경로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입이나 점막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 그리고 피부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다. 이중 피부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에는 혈액이나 림프관으로 흡수되기에 장기나 지방에 축적되고 10%만 배출이 된다고 한다. 팔 안쪽 피부 흡수율을 1이라고 할 때, 여성의 성기는 42배에 달한다."
<출처: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7987&section=sc82>


여성의 가장 연약하고 민감한 부위가 어이없게 위험물질에 노출되어버렸다. 같은 의약외품이라 하더라도 피부에 닿는 화장품은 성분 표시 꼼꼼하게 되어 있는데 왜 생리대는 안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좋은 성분 들어있는 얼굴 팩은 올려놓고 흡수가 잘 되길 바라면서 나쁜 성분 들어있는 생리대는 그게 흡수되는 줄도 모르고 그냥 방치한 셈이다.


지금 사태를 보아하면 모든 사람들이 무관심한 것은 물론이고 그냥 나몰라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식약처는 마치 귀찮은 일이 터진 것처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도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생각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이 아니면 네가 책임지라는 투로 다시 말해봐라는 식이다. 언론은 (가습기 사태에서 보인 것처럼 눈에 확 띄는 피해자 사진이 없어서인지) 생리대 기사는 초반에 반짝하고 지금은 온통 다른 자극적인 사건 사진들로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성들은 생리를 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생리대를 착용해야만 하고... 지금껏 사둔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생리대를 보며 도대체 무슨 생리대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 초조한 검색이나 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결과는 오롯이 당사들의 몫인가.


사태의 심각성은 바로 무관심과 무지다. 심지어 당사자인 나조차 너무 몰랐다. 그리고 알기엔 너무 정보가 부족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현재 쓰고 있는 생리대 성분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여성 성기에 닿는 생리대의 특성상 유해물질 허용기준치를 상향할 필요가 있고 좀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대안으로 면생리대와 생리 컵 등을 장려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정보제공과 시판 허용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생리대란,맨몸으로 전쟁터에
가지고 나가는 방패 같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 생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생리대에 대한 여성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말을 안 해줘서 모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말하려고 하는 말인데, 생리대는 생리의 불편함과 아픔을 겪는 여자들이 온전히 의지하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여성들은 생리를 하는 기간 동안 생리혈이 팬티에 새지 않도록, 바지에 비치지 않을까 온통 촉각이 곤두서 있다. 갑자기 훅 하고 물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생리가 쏟아져 나왔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고, 화장실에 생리대를 (감춰) 들고 가면서, 혹시나 새진 않았을까 급한 마음으로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마침내 새지 않고 깨끗한 팬티를 보며 안심을 하며, 피가 흥건하여 눅눅한 생리대를 떼고 피가 흐르기 전에 (얼른) 생리대를 교체한 뒤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생리를 하지만 양이 많은 날은 사흘 정도 된다. 그 기간에는 하루 종일 생리대를 네다섯 번 간다. 생리통도 생리통이지만, 이 생리대가 살에 닿이고 싥히는(사전에는 없는 단어.. '표면이 긁히다' 방언인 듯) 느낌이 굉장히 텁텁하고 아프다. 생리하는 날 쉬지 못하고 계속 활동해야 하는 날이면, 앉아있을 때조차 생리대 때문에 아랫도리가 자꾸 거치적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무조건 흡수가 잘 되는 걸 쓰다가 점점 순면커버를 찾아 쓰게 되었다.


면생리대를 쓰는 지금은 그런 표면에 닿는 아픈 느낌은 없게 되었다. 처음엔 아픈 느낌 때문에 면생리대를 사용했지만 이젠 그것보다 더 심각한 암을 유발하진 않을까 걱정하며 선택의 여지없이 면생리대를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면생리대의 단점이 생리 흡수율이 일반 생리대보다 부족해서 자주 확인하고 갈아줘야 한다는 점, 매일 부지런히 핏물을 쭉쭉 빼면서 생리대를 빨아줘야 한다는 점 때문에 성가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나마 생리양도 적어서 일상생활에서 면생리대 사용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안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 생리대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   




저소득층을 위한 생리대 이슈부터 시작해서 요즘 생리대가 난리다. (나만 난린가?) 생필품으로서, 그것도 '안전한 생필품'으로서 믿고 사용할 수 있도록 생리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여성들의 기본적인 인권- 건강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몇몇 개인만의- 특정 제품-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 대부분의 제품에 축적된 위험이라는 점에서, 상존하는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사회가 부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리대는 사회적 이슈여야만 하고 우리는 함께 생리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안전한 생리대를 찾아내야만 한다.


야심한 새벽에 생리대 단상이 길어져 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이십 대 여성이 서울에 산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