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DJ와함께하는 영화음악
부쩍 선선한 날씨.. 여름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가을이 성큼 들어섰는데도 지난 계절을 잊지 못하겠네요. 유자차를 먹고 남은 유자청처럼, 잊어버리기엔 아까운 기억인지라 두고두고 곱씹고 싶어요. 달콤쌉싸래한 맛이죠.
오늘은 그래서 진한 여름의 기억을 곱씹어볼까 합니다. 그 느낌, 풍경을 잊을 수가 없는, 별별DJ가 아끼는 영화 한 편입니다.
중경삼림 을 아시나요?
왕가위 감독 또는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한 번 쯤은 봤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번에 이해했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죠. 저도 그렇습니다. 꼭 세 번을 봤는데, 주인공들은 솔직히 말해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 잠깐 잠깐 '우리의 모습'을 보기도 해요. 실연을 겪고 나서 온통 무언가에 집착한다든지, 습관적으로 누가 이걸 좋아한다는 생각에 꼭 사가곤 한다든지(그런데 사실 딱히 좋아한 건 아니었죠), 좋아하는 이를 곁에서 스토커처럼 관찰한다든지, 음악을 틀어놓고 미친 것처럼 흥에 겨운 시간을 보낸다든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든지ㅡ 영화의 말미에서야, 이것들이 실연과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우리가-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걸, 그래서 곧잘 이들의 모습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요, 원래부터 좋아하는데다 특유의 스타일링으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임청하도 물론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저는 왕비를 꼽겠습니다. 그에 한몫한 것은 바로 이 노래입니다.
몽중인
원래 이 곡은 The Cranberries 의 Dreams 라는 곡이 원곡이라고 해요. 하지만 워낙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익어버려 원곡을 들으니 생경한 느낌마저 들더라구요. 특히 3분 30초 쯤에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스캣(이라고 해도 될까요) 등 특유의 분위기를 내는 창법이 놀랍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별다른 대사가 없습니다. 웃는 듯 마는 듯 화난 듯 아닌 듯 그런 표정으로 일관하죠. 하지만 동그랗게 치켜뜬 눈은 뭔가를 분명 말하고 있습니다. 수줍다고 하기엔 좀 낯선 그녀의 캐릭터에 적응하기 힘들더라도,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음악을 통해 영화 속 장면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사실 왕비의 행동은 절도죄, 주거침입죄 등... 현실 속에서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거든요.) 표현에 서투른 그녀를 이해하는 건 오직 음악을 듣고 영상을 따라가는 관객들입니다.
ㅡ
몇 년 전, 이 영화에 나온 장면을 따라 #홍콩 거리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충킹 맨션(중경삼림이란 제목은 바로 홍콩의 유명한 낡고 거대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유래합니다.)은 가보지 못했지만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가보며 양조위의 흔적을 찾기도 했죠.
사실 막상 가보니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미 너무 세련돼졌고 전혀 모르는 행인들로 북적북적한 그저 낯선 곳일 뿐이었죠. 무척 더웠던 기억뿐이고, 적당히 추억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답니다.
작은 후회만 남기고 돌아왔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입니다. 꿈만 같은 여행의 기억을 꿈만 같은 기억을 노래한 음악으로 대신했죠. 아직까지 문득문득 흥얼거리고 있다가 이게 무슨 노래였더라...하면 그게 '몽중인'이곤 했는데, 그만큼 마음 저 어딘가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 속 엔딩장면을 수놓는 이 음악을 따라, 여러분도 여름의 엔딩을 이 음악으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하루, 월요일, 새로운 학기, 9월을 시작하면서 앞이 훤히 보이는 미래를 두고... 아스라져가는 지난 날을 등돌립니다.
모든 게 꿈 같으리라. 꿈같은 미래도 언젠가는 꿈 같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이만 줄일까 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별별DJ 에게 사연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이야기와 함께 음악을 들어요.
신청곡이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또는 별별라디오 페이스북 메시지로 남겨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