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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an 08. 2019

"싫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의 의미

그는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뼈아픈 결론이었다.


혼자 결론을 내리기 전에 그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의 대답은 애매모호했다.

싫지 않습니다.


과연 '싫지 않다'는 게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예를 들면 떡볶이.

좀 단순한 예이긴 하지만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물론 순대도, 어묵도 잘 먹는다. '싫지 않다'.

하지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떡볶이를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건 떡볶이니까.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이 친구도 만나고 저 친구도 만나고 그들 모두 내게 좋은 사람들. 싫지 않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라고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단숨에 떠오르는 단 한 사람.

그게 바로 '좋아한다'는 감정이 아닐까.


단순하게 결론 내리기로 했다.

'싫지 않다'는 말은 곧 '좋아하지 않는다'와 똑같은 말,

싫다의 반대말이 좋다인 것처럼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


하지만 이게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얼핏 듣기에

싫다 < 좋지 않다 < 싫지 않다 < 좋다

이런 식의 감정의 단계가 있을 것만 같아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아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싫지 않다는 말에 무한한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좋아한다'는 건 나에게 중요한 기준이었다.

사귀는 건 차후의 문제다.

어쩌면 사귀는 건 불필요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그와 사귀고 싶었던 게 아니다.

나는 그와 서로 좋아하고 싶었다.


세상에 좋아하는 것만 해도,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도 시간이 아까운 인생.

감정에 확신 없이 좋아하는 걸까 고민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도움이 안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속사포처럼 내가 생각했던 장황한 결론을,

내가 하는 말을 그는 찬찬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생각하는 것처럼, 그게 아니라면요?"


나는 말했다.

"가끔 감정이 불확실할 때, 그걸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는 끝까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단지 내 말의 단호함을 걸고 넘어지는 것 뿐이다.

그는 자기감정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그가 알았으면 좋겠다.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찾지 말고

그냥 이게 '좋아한다'는 감정이라는 것을,

또는 이건 아마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왜 그래야만 하냐고?

그래야 좋아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으니까.

그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멀리멀리 떠났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진심이다.




그를 좋아하는 나를, 또다른 내가 꺼내보지 않기로

그렇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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